돈 빌려 투자하는 韓기업... 두둑한 정부 지원금 받는 中기업 ['돈 먹는 하마'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민권 2024. 8. 15.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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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D 4조·LGD 2조 OLED 투자
차입 등으로 기술우위 지키기 총력
BOE, 12조 투자 韓OLED 맹추격
투자금 상당수가 중국 정부 지원금
국내 첨단산업을 이끌고 있는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들이 업황악화와 실적부진에도 미래 먹거리 직접투자를 홀로 떠안으면서 보조금을 허용하지 않는 국내 투자 지원정책의 기조 변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외부차입이나 관계사 자금 대여 등 비상수단을 총동원하면서 기술우위를 지키는 데 총력을 쏟고 있다. 특히 최근 세계 주요 국가들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직접보조금 지급을 통해 한국 기업들의 기술 초격차를 빠르게 따라잡아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투자세액공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국내 지원책만으로는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주도권을 중국에 내준 디스플레이의 전철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업황 침체 속 투자금 마련 사활

1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올해 매 분기 영업이익보다 많은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올해 2·4분기 시설투자에 1조8000억원을 투입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1조1000억원)을 7000억원가량 웃돈다. 지난 1·4분기에도 삼성디스플레이는 분기 영업이익(3400억원)의 3배를 훌쩍 넘는 1조1000억원 규모의 시설투자를 집행했다.

LG디스플레이도 올해 2조원대 연간 설비투자를 계획 중이다. 핵심 투자분야는 노트북·태블릿·스마트폰 등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중소형 OLED 사업이다.

지난해부터 지속된 실적부진에 따라 현금곳간이 마르고 있지만 미래 먹거리를 위한 투자의지를 확고히 드러냈다. 2023년(3조5000억원)보다 총설비투자 규모는 축소됐지만 수천억원대 분기 적자가 지속되는 걸 감안하면 미래 투자의지를 꺾지 않는 것이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부터 △LG전자로부터 1조원 차입 △1조3000억원 규모 유상증자 △6500억원 규모 신디케이트론(공동대출) 계약 체결 등 차입금을 늘려 투자금을 마련했다. 중국 광저우 소재 TV용 대형 LCD 패널 생산라인 매각을 통해 마련되는 1조∼2조원대 매각대금도 중소형 OLED 사업에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돈을 빌려 시설투자를 단행한 사례는 반도체 업계에서도 벌어졌다. 지난해 글로벌 수요침체로 역대급 불황을 겪은 삼성전자는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SDC)로부터 운영자금 20조원을 단기 차입했다. 자금의 대부분은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이 홀로 부담을 감당하는 한국과 달리 세계 주요국들은 막대한 자금을 퍼부으며 '칩워'를 벌이고 있다. 자국 기업 지원을 넘어 해외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반도체 보조금 지급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73조원, 중국 70조원, 일본 50조원, 유럽연합(EU) 64조원 등 전체 시설투자금의 40∼50%를 직접보조금으로 지원하고 있다.

■中 정부 등에 업고, OLED 맹추격

국내 기업들이 첨단산업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투자에 사활을 거는 반면 정부 지원은 미온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국 추월을 목표로 자국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천문학적 보조금을 쏟아붓고 있는 중국 정부와 대조적이다.

중국 1위 패널업체 BOE가 청두에 건립을 추진 중인 8.6세대 OLED 생산라인 투자금은 630억위안(약 12조원)으로, 삼성디스플레이의 3배에 육박한다. 해당 투자금 상당수는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BOE는 지난해에만 중국 정부로부터 38억위안가량 보조금을 수령한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해 BOE 연간 순이익(25억위안)을 뛰어넘는다.

이와 달리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는 연구개발(R&D), 시설투자 등에 대한 세제혜택 수준의 한정적 지원만 받고 있다. 그마저도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대기업 시설투자 시 15%의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올해 말 일몰이 도래하는데도 아직 입법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R&D 및 인력 양성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는 것과 달리 반도체에 비해 대우가 떨어지는 국내 디스플레이 인력들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자국 투자 유치, 첨단산업 생태계 구축 등을 위해 한국 정부가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검토할 때"라고 말했다.

mkchang@fnnews.com 장민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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