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기시다 따라 하는 윤석열 정부의 밸류업, 한물 간 신자유주의 프로그램
인위적으로 주가 끌어올리겠다는 밸류업
요즘 증권시장 주변에서는 "밸류업"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기업의 가치(Value)를 높인다(up)는 의미일 터이다. 그런데 이 용어가 적절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은 기업의 실물 가치가 아니라 주식 가격을 높이는데 강조점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얘기하는 밸류업은 사실은 '프라이스업'(Price-Up)으로 고쳐 쓰는 것이 맞다. 엄밀한 의미에서 주식은 가치를 갖는다기보다 가격만을 갖는다. 어쨌든 이 말이 갑자기 유행하게 된 데는 정부가 올해 초에 발표한 밸류업 프로그램이 놓여 있다.
정부는 올해 1월에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라는 민생토론회를 개최하고 국민의 자산 형성을 지원한다는 여러 정책을 발표했다. 거기에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소득에 대한 세금혜택 확대, 상장사의 기업 가치를 높이는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 등이 들어 있다. 이 가운데 밸류업 프로그램은 다음 달에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으로 구체화한다. 5월에는 가이드라인(안)의 마련으로 이어진다. 이 프로그램은 주가를 높이는 일차적인 책임이 상장기업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상장기업은 이사회를 중심으로, 각 기업의 특성에 맞게 기업의 주가를 올릴 수 있는 중·장기적인 계획을 자율적으로 수립하고 공시해야 한다. 투자자들은 기업들의 그러한 계획을 평가하여 투자금액 배분에 활용할 것이다.
밸류업 프로그램에 따르면 정부의 역할은 주주가치 중심의 기업경영 문화가 정착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잡아주는 것과 주식 가격을 높이려고 노력하는 기업들에 과감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인센티브에는 주주 환원을 늘린 기업에 대한 다양한 세금 혜택, 밸류업 우수기업에 대한 표창과 그 기업들에 대한 기관투자가들(연기금 등)의 투자 확대 등이 포함된다. 기관투자자들이 어떤 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면 그 기업의 주가가 올라 주주들이 이익을 얻게 된다.
주주 자본주의 문화를 확산하는 데에서는 특히 기관투자자들의 역할이 강조된다. 기관투자자들은 주주 자본주의에 대한 충실성을 기준으로 투자자금 배분을 조절함으로써 전체적인 기업 문화를 주주가치 중심으로 이끌어가는 데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기관 투자자들이 그러한 역할을 더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금융위원회는 스튜어드십 코드의 개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란 기관투자자들이 수탁자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지켜야 할 일종의 원칙이다. 이 원칙 가운데에는 수탁자가 투자자산의 가치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투자 대상 회사를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를 활용하여 투자 대상 회사들을 주주가치 중심의 경영 문화로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에는 현재 4대 연기금, 125개 운용사 등을 포함하여 222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정부는 연기금과 함께 외국자본을 더 적극적으로 주식시장에 끌어들이는 것을 자기의 역할로 설정하고 있다. 밸류업 프로그램에는 외국자본의 유치를 위해 상장 기업들의 영문공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한편, 외국인투자자 등록제를 폐지한다는 계획이 들어 있다. 그밖에도 정부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불편하게 느끼는 여러 제도를 그들의 요구에 맞게 바꿔나간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밸류업을 추진하는 이유로 기업의 자본효율성이 낮다는 점과 주가가 주요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어 있다는 점을 든다. 우리나라 주가의 상대적인 저평가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있다는 것이 정부의 인식이다. 그렇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은 무엇인가? 정부는 그 원인을 미흡한 주주환원과 같은 주주 자본주의의 부족에서 찾는다.
일본이 부러웠나?
이 밸류업 프로그램은 금융위원회의 설명자료에도 나와 있듯이 일본 사례를 참조한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일본을 따라하는 이유는 아마 겉으로 드러난 일본 주식시장의 상승세일 것이다. 일본 니케이 지수는 2023년 1월에 2만6,000엔 선을 유지하고 있다가 연말에 36,000엔 선에 이른데 이어 올해 7월에는 4만엔 선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주가는 2023년 연초의 2,500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 동안 재투자를 고려한 총수익지수가 일본은 297% 상승할 때 우리나라는 61%밖에 상승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주가지수가 급격하게 상승할 무렵 일본 정부는 여러 가지 주가 부양 정책을 내놓았다. 지난해만 해도 "자본비용과 주가를 의식한 경영 실천 방안"이라는 자본시장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금융위원회는 아마 일본의 주식시장의 상승세에 이러한 정책들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파악한 듯하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일본을 벤치마킹한 것인데, 금융위원회는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주식시장도 상승세로 돌릴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밸류업이 일본 정책을 본떴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의 성격을 좀 더 분명히 이해하기 위해 일본의 최근 주식시장 정책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주가지수 상승 배경에 좀 멀리는 아베노믹스 성장전략이 놓여 있다. 1990년 자산가격 거품 이후 일본의 주식시장은 아베정부 제2기에 들어설 때까지도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1990년에 3만8,000엔 선을 넘어섰던 니케이지수는 아베정부가 들어선 2012년 말에 겨우 1만엔 언저리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아베 정권은 자산가격을 띄우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성장전략을 짰다. 이 전략은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 "부(富)의 효과"로 소비가 늘고 이것이 투자로 이어져 결국 성장률이 회복된다는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일본에서는 당시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문제가 되고 있었는데, 아베 정권은 그것의 원인과 대책을 화폐현상에서 찾았다. 아베 정권을 뒷받침하는 연구자 그룹인 이른바 "리플레파"는 화폐수량설에 따라 화폐 공급량을 늘림으로써 그러한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날 수 있고 나아가 자산 가격도 띄울 수 있다고 보았다.
물론 자산 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실제로 "부의 효과"가 생긴다는 보장은 없다. 금융 부문의 "부의 효과"는 실물 부문의 "낙수효과"와 짝을 이루는데, 둘 모두 이를 증명할 경험적 증거가 별로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부의 효과가 생길지 의문이다. 예를 들어 건물 가격이 오르면 건물주는 부의 효과 때문에 소비를 늘리겠지만 임대료를 지급하는 세입자는 오른 임대료를 마련하기 위해 소비를 줄여야 한다. 사회 전체로 봐서 어느 쪽이 클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자산 가격이 오른다고 해도 부의 효과가 실제로 생긴다는 보장이 없다.
그럼에도 아베 정권은 주가와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는 정책을 폈다. 여기에는 주가상승을 연출해냄으로써 국민 생활 향상과 경제 성장에 아베 정권이 기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정치적인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베노믹스는 금융화가 "자본주의의 가을"을 나타낸다는 얘기가 나올 무렵에 오히려 금융의 성장을 인위적으로 이끌어냄으로써 주주자본주의에 생명력을 부여하려는 뜬금없는 정책이었다. 이러한 정책에 대해 일본 안에서도 이것이 대기업, 부유층, 투기꾼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방향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아베노믹스의 주가 정책은 기업의 주주 구성 변화, 곧 외국인 주식 소유 비율의 증가와 신탁은행 비율 증가를 반영한 측면도 있었다. 일본 기업들의 주주는 전통적으로 상호보유가 많아서 주주배당 유인이 크지 않았다. 기업의 대주주들은 배당을 하기보다 내부 유보를 늘려서 계열사를 키우거나 신설하는 쪽을 선호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생긴 불량채권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외국인과 신탁은행의 지분율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주가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기업 경영을 바꾸라고 압력을 높여 나갔는데, 아베노믹스는 이를 받아서 실행하는 면이 있었던 것이다.
아베의 주가 정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2013년에 내각 결의를 통해서 일본부흥전략(日本再興戰略)을 마련한 바, 여기서는 주주가치를 우선하는 문화를 강조했다. 둘째, 2015년에는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제도인 사외이사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회사법을 개정했다. 셋째, 같은 해에 기관투자자들에게 주가 상승에 대한 역할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도쿄 증권거래소 "상장규칙"과 스튜어드십 코드를 개정했다. 이제 기관투자자들은 기업에 고주가, 고배당 등의 주주 환원 확대를 촉구해야 하는 의무를 떠안았다. 넷째, 기업들이 자기자본 수익률(ROE)을 글로벌 수준에 맞게 달성하는 것을 경영의 최우선 목표로 삼도록 기업 거버넌스를 바꿨다.
자기자본 수익률은 당기순이익을 분자로 하고 자기자본을 분모로 하는 비율을 나타낸다. 자기자본은 자본금과 내부 유보금으로 구성된다. 이 자기자본 수익률은 글로벌 투자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지표이며 보통 자본 효율의 척도로 간주된다. 따라서 자기자본 수익률 강조는 외국자본을 배려한 면이 있다고 봐야 한다. 이 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분자를 키우거나 분모를 줄여야 한다. 분자를 키우기 위한 수단으로는 구조조정, 임금인하, 고용의 비정규직화, 더 엄격한 하청기업 관리, 법인세 인하 요구 등이 있고 분모를 줄이는 수단으로는 배당의 확대와 자사주 매입의 증가 등이 있다. 거버넌스의 개혁은 기업들로 하여금 이런 수단을 사용하게끔 강제할 터였다.
다른 한편 일본은행은 주식 가격을 끌어올리기 위해 이른바 "추가 완화"를 통해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직접 매수하는 정책을 폈다. 일본은행은 2016년 정책결정 회합에서 상장지수펀드(ETF) 매입을 매년 6조 엔으로 대폭 늘리기로 결정한다. 상장지수펀드(ETF)는 증권회사가 주식으로 운용하는 투자신탁에 투자자가 출자(ETF 수익증권 구입)해서 배당을 받는 투자신탁상품이다. 일본은행이 상장지수펀드를 매입한다는 것은 다수 종목의 주식을 일괄해서 구입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일본은행은 이미 2013년부터 2016년까지 9.7조 엔의 ETF를 매입한 바 있는데, 이것을 더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한국은행 동경사무소 동향분석 자료에 따르면 일본은행의 ETF 보유가치는 2023년 말 기준 70조 엔으로 추정된다.
아베 정권은 연기금의 적극적인 주식시장 참여 계획도 좀 더 구체화한다. 일본은 독립행정법인(GPIF)을 통해 연기금의 적립금을 관리하는데 2014년 10월 이후 연금 적립금의 운용자산 구성에서 주식의 비율을 50%까지 점차 올려나간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실제로 연기금들은 주식 운용의 비율을 점차 높여나간다. 아베정부는 또한 외국인의 주식매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정책도 펴기로 한다.
아베정부에 이어 2021년에 출범한 기시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아베 정부의 주식시장 정책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 기시다 정부는 "새로운 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자본시장 개혁을 추진했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첫째, 외국자본 투자를 늘리기 위한 자본시장 환경 개선, 상장기업과 외국투자자의 적극적인 대화 권장, 영어로 행정을 처리하는 자산운용특구 설립, 기업지배구조 개편, 둘째, 개인투자자의 예금을 자본시장으로 유인하기 위한 자산운용업의의 고도화 등이 있다.
2023년 3월에는 "자본비용과 주가를 의식한 경영 실천 방안"을 마련하는데, 상장회사들에 대해 기업 주가가 낮은 이유를 분석하고 개선방안을 수립할 것을 요청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같은 해 6월에는 "기업지배구조 개혁 실천을 위한 액션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과 투자자의 의식개혁을 촉구했고, 12월에는 자산운용입국론을 내세우면서 "자산운용 입국 실현 계획"을 발표했다. "자산소득 배증"이라는 구호를 내건 이 "자산운용입국론"은 결국 2,000조 엔에 달하는 개인들의 금융자산(예금과 적금 중심)을 주식시장으로 돌리겠다는 의도의 표현이다.
아베에서 기시다로 이어지는 주식시장 정책을 압축해서 정리하면 뒤늦은 신자유주의의 강화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신자유주의의 쇠퇴를 얘기하는 마당에 일본은 뒷북을 치면서 이를 강화하는 정책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런데 금융위원회는 이걸 뒤따르겠다고 밸류업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우리의 경우는 여기에다 일본의 정책들에는 들어있지 않은 대규모 세제 혜택까지 곁들였다.
밸류업, 경제 성장에 보탬 안 되고 불평등만 키운다
일본의 정책을 베낀 밸류업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주식이 오른다고 경제가 성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주식 가격은 사업에 투자되어 실제로 운영되고 있는 자본에 대한 소유권을 나타낸다. 이 소유권은 그 기업이 생산한 이윤에 대해 주식 소유 비율에 따른 배당 청구권이다. 이 청구권 증서는 상픔으로서 거래되는데, 이를 소유한 사람들 사이에서 매매가 일어나더라도 그것이 기업의 실적에 무슨 본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이 청구권의 가격은 현실의 기업 사정뿐만 아니라 예상 상황 변화까지 반영하여 결정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투기적이다.
주식 가격은 이 주식이 대표하는 기업 실물가치의 움직임과는 전혀 무관하게 결정될 수 있다. 주식의 가격은 현실의 기업 실물가치를 훨씬 뛰어넘을 수 있다. 현실의 기업 실물가치에 대비한 주식의 가격을 주가순자산비율(PBR)이라 하는데, 이론적으로는 이것이 1에 가까워야 한다. 그러나 이 비율이 기업에 따라서는 1을 넘기도 하고 1 아래로 내려가기도 한다. 1보다 낮은 PBR은 주식 가격이 자기자본의 주당 장부가치, 곧 청산가치보다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위원회 설명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의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04이다. 이 비율이 선진국 평균은 2.50이다. 곧, 선진국들에서는 일반적으로 실물자산에 비해서 주가가 훨씬 높게 형성되어 있다.
문제는 주가가 기업 실물가치에 비해 높게 형성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그 나라의 경제 사정이 더 좋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주가순자산비율이 미국은 높지만 독일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그렇다고 독일 경제가 미국경제보다 더 나쁜 상태에 있다고 얘기하기는 어렵다. 1950년대에서 1970년에 이르는 이른바 자본주의 황금기에 비해 신자유주의 시기에는 이 비율이 크게 높아졌다. 그렇다고 신자유주의 시기의 경제가 자본주의 황금기 때보다 낫다고 얘기할 수 없다.
주식이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되더라도 그것이 경제 사정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식 가격이 낮아지더라도 한 나라의 국부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바와 같이, 주식 가격 거품이 터진다고 하더라도 국민은 조금도 더 가난해지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주류의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미국 연준의 의장을 지낸 밴 버냉키는 <21세기 밴 버냉키의 통화정책>이라는 저서에서 2003년에 발표된 프레더릭 미슈킨과 유진 화이트의 연구를 인용하는데, 이에 따르면, 주가 하락이 경제에 미친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았다.
밸류업 프로그램의 본질은 기업 실물가치에 대비하여 주가가 높게 형성되도록 유도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기업에게 스스로 주가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책임을 주는 것, 정부가 이를 뒷받침하는 많은 인센티브를 주는 것, 그러고 여러 제도와 정책을 주가 상승에 친화적인 방향으로 바꾸는 것 등이 제시된다. 그러나 이렇게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주가 상승이 주주들에게는 이익을 가져다줄지 모르지만 기업의 구성원인 노동자나 하청기업, 고객, 지역사회 등 이른바 이해관계자들에게는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그 반대다.
인위적인 주가 상승은 배당의 증가에 따른 임금 인하 압력, 하청업체에 대한 단가 인하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민경제적으로도 인위적인 주가 상승은 경제 발전에 좋은 영향을 주기는커녕 금융불안정만 키운다. 그런 점에서 관이 주도하여 인위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겠다는 밸류업은 주주라는 특정 계층에게는 틀림없이 이익을 가져다주겠지만 국민 절대다수에게는 오히려 큰 짐을 지운다.
둘째, 자기자본을 줄여서 주가순자산비율을 높이겠다는 정책은 성장 잠재력을 떨어트릴 수 있다.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 내용에는 배당을 높이는 것과 자사주 매입을 늘려 자기자본을 줄이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정책은 단기적으로 주식 가격을 높이는 유력한 수단일 수 있다. 실제로 미국 기업들은 주가를 끌어올리는 수법으로 이 자사주 매입을 널리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내부 유보자금을 배당의 확대나 자사주 매입에 돌리는 것은 투자 재원의 감소를 함의한다. 물론 어떤 기업의 기업 실물가치가 주가에 비해 높다는 것은 내부자금의 투자 수익률이 일반 이윤율보다 낮다는 것을 나타낼 수도 있다. 그러나 배당으로 환원된 돈이 투자로 향한다는 보장은 없다는 점에서 이런 논리로 고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합리화 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투자 기금의 감소가 장기적으로 기업 성장을 방해하여 주가를 떨어트릴 수도 있다.
성장성이 낮은 기업의 경우 유보자금을 주주에게 환원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기업 이윤율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기는 하다. 환원된 자금이 이윤율이 더 높은 새로운 투자처를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주주자본주의 문화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주주 환원이 과도하게 이뤄진다면 결국은 자원 배분의 비효율로 이어질 것이다. 일본에서도 자사주 매입과 배당의 확대가 투자의 감소 쪽으로 민감하게 반응하자 유리한 투자 기회가 있는 기업은 형식적으로 PBR 기준을 채우기보다 투자를 우선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기도 했다.
셋째, 밸류업 프로그램은 기업에 대한 세제지원, 그리고 제도와 정책의 변경을 통해 사회의 자원을 주식시장에 몰아준다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삼는다. 이러한 사회적 자원의 분배 방식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주식의 소유가 매우 불평등하게 분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주식은 극소수가 압도적인 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KB 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23년 한국 부자보고서>에 따르면 주식을 포함한 금융자산의 경우 총인구의 0.89%가 전체의 59%를 차지하고 0.02%가 41.1%를 차지한다. 이 수치들은 주식을 포함한 금융자산의 분포가 얼마나 불평등한지를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주가가 자산 불평등에 어떤 효과를 낼지는 따져 볼 필요도 없다.
넷째, 밸류업은 나라 살림에도 불리한 영향을 줄 것이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그나마 실행되기 위한 조건은 기업들에 대한 인센티브이다. 그리고 그 인센티브 가운데 핵심은 세금 지원이다. 이미 정부는 밸류업 프로그램을 금융투자세의 폐지의 근거로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다 주주 환원 금액에 대한 법인세 세액공제, 주주에 대한 배당소득 분리과세, 최대주주 상속세 감면 등의 혜택을 추가해주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주식시장을 지원하기 위한 이러한 세금 감면은 당연히 나라 살림을 축내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한물 간 신자유주의 헛되이 되살리려 하나?
밸류업의 원형은 아베노믹스라 할 수 있다. 아베정권은 일본 경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의 돌파구를 임금의 인상, 실물부문의 투자 증가와 같은 쪽에서 찾지 않고 자산 가격의 상승에서 찾으려 했다. 자산 가치가 상승하면 그것이 부의 효과에 의해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고 그러면 일본 경제의 어려움이 극복된다는 것이 아베 정권의 기본적인 인식이었다. 아베 정권은 자산 가격을 끌어올리기 위해 화폐 가치를 떨어트리는 정책을 폈는데, 이에 따라 명목금리가 낮아지고 엔의 가치도 덩달아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정책들은 실물 경제에는 별로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금융시장에는 큰 영향을 주었다.
아베 정권은 자산가격을 끌어올리기 위해 거시적으로는 화폐 가치를 떨어트리는 정책을 펴는 것과 동시에 주주 가치 중심의 기업 경영, 사외이사제,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와 같은 저물어 가는 신자유주의 제도를 강화하는 방향의 변화를 꾀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쇠퇴가 얘기되는 때에 아베 정권은 오히려 자산 가격 팽창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이념적인 헌 칼을 꺼내든 셈이다.
그러나 아베와 기시다 정권에서 추진된 아베노믹스는 인위적인 주가 상승에는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는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질 임금은 상승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낮은 임금상승률이 경제 성장에 걸림돌 역할을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임금을 올리려는 시도가 나타나는 듯했지만 결국은 유야무야로 끝났다. 임금이 정체하자 소비도 증가하지 않았다. 투자도 별로 증가하지 않았다. 한국은행 동경사무소 동향분석 자료에 따르면 일본기업의 유형, 무형자산에 대한 투자액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크게 감소했는데, 코비드 위기 이후 약간 개선되었지만 2023년에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아베노믹스가 별로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얘기다.
다만 아베노믹스는 기업 이익에는 유리하게 기능했는데, 이는 기업들의 유보이익 증가로 나타났다. 또한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이것이 대주주들에게도 큰 이득을 가져다주었다. 그렇지만 임금 상승률은 정체하고 자산 가격만 오르면서 임금소득자와 자산소득자 사이의 불평등은 더욱 심해졌다. 일본 사회의 고질적인 "격차 사회" 문제는 더욱 커졌다.
이처럼 소수 계층에만 특혜를 주는 정책을 그대로 베낀 것이 밸류업 프로그램이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자산 가격을 끌어올리는 데 분명히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주식 가격을 세제 지원이나 제도 변화를 통해 인위적으로 끌어올린다고 해서 그것이 대주주나 외국인 투자자에게는 이득을 가져다줄지 모르지만 경제 발전이나 국민들의 삶의 질 개선에 무슨 도움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정책을 왜 베껴다 따라하겠다는 것인가?
<도움 받은 자료>
금융위원회, "상장기업의 자율적인 밸류업 노력을 적극 지원합니다", 금융위원회 보도자료, 2024.2.26.
금융위원회, "연기금 등 주요 기관투자자가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에 동참할 수 있는 구체적 근거를 마련하고, 기관투자자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금융위원회 보도자료, 2024.3.14.
금융위원회, "상장기업의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계획' 수립·공시를 지원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안)을 마련했습니다", 금융위원회 보도자료, 2024.5.2.
이보미, "일본의 자본시장 개혁 노력과 우리나라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시사점". <금융브리프 논단> 33-16, 2004.8.3.
자본시장연구원, "일본 자본시장 개혁의 성과 동인 및 시사점", 2024.8.9.
한국은행 동경사무소, "동향분석", 2023.4.
日本 內閣府·金融廳 발표 자료들.
[임수강 금융평론가(lins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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