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역사관 논란에 갈라진 광복절…통합 대신 이념만 남았다

유새슬 기자 2024. 8. 15.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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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야당 불참 속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
윤 대통령 경축사, “반자유 세력” 갈라치기
한·일 관계 언급 않고 ‘자유 통일’로 대북 압박
윤 대통령, 경축식 전 육영수 여사 묘역 참배
야당 “내부 통합도 못 이루면서 남북통일 운운”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이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경축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정부가 세 번째로 맞이한 광복절은 분열된 한국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드러냈다. 독립기념관장 인사로 촉발된 윤석열 정부의 친일 역사관 논란은 국회의장과 야6당이 정부 기념식에 불참하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역사관 비판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를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흡수통일 방식의 통일비전을 제시하고, 정치적 반대세력을 향해선 “반자유·반통일 세력”이라고 공격했다. 야당은 “친일 매국 정권” “경축사가 아니라 분열사”라고 비판했다.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정부 주관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정부·여당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매년 참석하던 광복회장과 입법부 대표인 우원식 국회의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야7당 중에서는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만 참석했다.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이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자들과 만세 삼창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 대통령의 경축사에서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비판과 반성 촉구는 한 마디도 찾을 수 없었다. 김형석 관장 임명으로 촉발된 뉴라이트 논란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었다. 윤 대통령은 대신 8·15 통일 독트린이라는 남북통일 구상 소개에 연설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윤 대통령은 “한반도 전체에 자유 민주 통일 국가가 만들어지는 그 날 비로소 완전한 광복이 실현되는 것”이라며 ‘자유’라는 단어만 50차례 언급했다. 그는 “우리 국민이 자유 통일을 추진할 수 있는 가치관과 역량을 확고히 가져야 한다”며 ‘반자유 세력, 반통일 세력’을 소환했다. 그는 “사이비 지식인들은 가짜 뉴스를 상품으로 포장해 유통하며 기득권 이익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며 “선동과 날조로 국민을 편 갈라 그 틈에서 이익을 누리는 데만 집착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야당과 시민단체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가 일본의 식민지배를 비판하고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위한 반성을 촉구하는 대신 실체도 없는 반자유 세력을 소환해 사회를 갈라치기 하고 보수 세력을 집결하는 데 집중한 것이다. 야7당 중 유일하게 정부 주관 경축식에서 참석한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한 번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며 “경축사가 아니라 ‘분열사’였다.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라 ‘반쪽 대통령’이라고 세상에 천명했다”고 밝혔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치켜세워 임기 내내 이념 편향성 논란을 빚고 있는 윤 대통령은 이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육영수 여사 서거 50주기를 맞아 육 여사 묘역을 참배했다. 윤 대통령은 방명록에 “국민들의 어진 어머니 역할을 해주신 육 여사님을 우리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적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과 소속의원들이 15일 서울 용산 백범기념관앞에서 열린 친일반민족 윤석열정부 규탄성명발표를 한 후 ‘만세3창’을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대부분의 야당 인사들은 이날 정부 주관 경축식 대신 광복회가 백범기념관에서 개최한 기념식에 참석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기념사에서 “최근 왜곡된 역사관이 버젓이 활개 치며, 역사를 허투루 재단하는 인사들이 역사를 다루고 교육하는 자리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며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논하는 역사로 덮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회장에 이어 축사를 한 김갑년 광복회 독립영웅아카데미 단장은 윤 대통령을 향해 “지금까지 친일 편향의 국정 기조를 내려놓고 국민을 위해 옳은 길을 선택해달라”며 “그것이 후손들과 국민 모두가 사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럴 생각이 없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시라”고도 말했다.

박찬대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행사 참석에 앞서 규탄 성명 내고 “지금이 일제강점기인지 아직도 우리가 해방을 하지 못한 것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라며 “제2의 내선일체가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광복회 주최 기념식 참석 후 광화문 광장에서 ‘윤석열 정권 대일 굴종 외교 규탄 및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일제 치하에서 광복된 지 79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일제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며 “친일, 종일, 부일, 숭일분자들이 판을 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정부와 광복회 중 어느 쪽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참배하고 오후에는 용산역 광장에서 강제동원노동자상에 헌화했다.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 등 야당 의원 5명으로 구성된 ‘사도광산 진실수호 대한민국 방일단’은 이날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사도광산을 항의 방문하기 위해 출국했다. 이들은 오는 17일까지 일본에 머물며 ‘강제노역’ 사실 적시와 전시 공간 이전 등을 일본 정부에 요구할 계획이다.

야당은 윤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를 “친일 매국”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내재된 친일 DNA를 숨실 수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광복절 경축사가 이 지경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여권 내에서도 유승민 전 의원은 “지난해 광복절에 이어 오늘도 대통령의 경축사에서 일본이 사라졌다”며 “참으로 이상하고 기괴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광복회와 야당의 정부 주관 광복절 경축식 불참 배경에는 뉴라이트로 지목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거취 문제만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역사관에 대한 반발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한·일 과거사 문제 외면, 자유주의 이념에 기반한 편가르기가 광복절마저 분열의 계기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종찬 광복회장이 79주년 8·15 광복절인 15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광복회 주최 광복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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