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 추상의 거인' 서세옥…장남이 그리고 차남이 짓다

김보라 2024. 8. 1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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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즈서울 2024'
LG 대형 미디어월서 재탄생
서도호 작가, 父작품 재해석
LG 투명OLED 설치 작품
수묵화의 무한한 우주·공간
2차원 평면서 3D로 재탄생
서을호 건축가의 절제된 공간
겹겹이 구성해 새롭게 펼쳐내
서세옥, 사람들, 1996-1997, 닥종이에 수묵, 163.5 x 256cm, 성북구립미술관 소장, 전시 이미지 LG전자 제공


점 하나가 무리 지어 춤을 추고, 선 하나는 빗물이 됐다. 산정(山丁) 서세옥 화백(1929~2020)이 창시한 한국 수묵 추상의 단면이다. 서예와 시에 대한 산정의 깊은 조예는 70여 년에 걸쳐 3290여 점의 작품으로 남았다. 점과 선으로 우주의 근원을 탐색하던 산정은 1970년대 후반 ‘사람’으로 귀결됐다. 태초의 인간이라는 주제를 단순한 점과 선으로 다채롭고 역동적으로 담아냈다. 그의 기념비적 ‘인간 연작’은 인간의 내면을 표현해 시대를 초월하는 영원미와 절대미로 남았다.

산정이 온몸으로 그려낸 수묵 추상이 두 아들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다. 오는 9월 4일부터 7일까지 열리는 ‘프리즈서울 2024’의 LG OLED 라운지에서다. 그의 장남이자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서도호(62), 그리고 동생인 서을호 건축가는 아버지의 작품을 재해석한다. LG전자가 올해 초 발표한 투명 OLED TV인 ‘LG OLED T’를 최초로 활용한 디지털 콘텐츠와 설치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서세옥 화백의 원작이 함께 펼치는 이번 전시는 LG OLED로 구성된 대형 미디어 월을 통해 서 화백의 육성과 작업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도 같이한다. 서을호 건축가는 이 모든 작품을 아우르는 전시 공간을 연출했다.

두 아들은 아버지가 한 획 한 획 기운을 쏟아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을 보며 자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디지털 영상 시리즈는 아버지가 인간의 형상을 제작해 가던 과정을 각각의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서세옥 화백이 가장 강조한 개념은 동양화론에서 기본이 되는 ‘기운생동’. 서도호 작가는 아버지의 작업 과정은 일종의 행위예술과 같은 움직임의 연속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림은 그 움직임의 결과물이자 궤적과 같은 것이었다고.

서도호 작가는 “아버지는 수묵화를 하시며 항상 무한한 우주와 공간을 자주 언급하셨다”며 “LG OLED의 스크린이 투명해지는 순간,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공간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또 “수천 년 동안 볼 수 없었던 그림의 뒷면을 볼 수 있게 된 것 같은 경험이었다”고 했다. 서을호 건축가는 “여백의 단순미와 먹과 붓의 강렬한 움직임이 여러 층을 이루는 서세옥 화백의 수묵화, 서도호 미술가가 재해석한 영상이 교감할 수 있도록 절제된 공간 안에서 겹겹이 공간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선 설치미술로 세계를 누비는 서도호 작가의 작품 세계를 떠올리며 감상해보는 것도 좋겠다. 1987년 서도호 작가가 서울대 동양화과 대학원을 졸업하며 제출한 졸업 작품은 ‘작업’이라는 중성적 제목에 수목과 채색, 유화와 아크릴 등 다양한 안료를 사용한 설치 작품이었다. 마치 추상화와 구상화를 병풍처럼 여러 겹 이어 붙인 형태였다. 당시 서도호는 “먹이 종이 안으로 스며들었는데, 내가 보는 형상은 과연 표면에 있는 걸 보는 건가, 아니면 종이 속에 들어 있는 걸 보는 건가”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2차원적 표면 너머의 다른 차원으로 확장하는 지필묵의 특성은 서로 다른 집을 옷처럼 지어 중첩되게 만든 ‘집 속의 집’ 작품의 원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서도호와 서을호 형제가 LG전자의 투명 OLED TV와 아버지 산정 서세옥의 그림 사이에서 찾은 접점도 이 부분에 있다. ‘투명한 매체의 본질’이 비슷했다. 글자 그대로 스스로 빛을 만들어내는 유기발광 소자가 픽셀 수만큼 들어 있는 LG OLED 디스플레이는 백라이트가 없어 잔상 없이 완벽한 블랙과 투명한 화면을 구현한다.

이번 전시의 또 하나의 키워드는 ‘흐르는 시간’이다. 먹은 작가가 붓을 든다고 바로 멈추는 법이 없다. 어디서 멈춰야 어디까지 번지는지 예측하거나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창조의 영역에 우연과 자연의 이치가 접목된다. 투명한 캔버스 위를 유유히 흐르는 산정의 작품들은 그런 시간성을 반영한다.

서세옥, 행인(行人), 1978, 한지에 수묵, 81.4 x 74.8cm, 성북구립미술관 소장, 전시 이미지 LG전자 제공


2021년부터 프리즈의 글로벌 파트너로 함께해온 LG전자는 지난해 프리즈서울에 공식 헤드라인 파트너로 이름을 올렸다. LG OLED TV의 혁신 기술로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고(故) 김환기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오혜원 LG전자 HE브랜드커뮤니케이션 담당은 “완벽한 검정(퍼펙트 블랙)을 구현할 수 있는 OLED TV의 특징은 먹으로 그린 수묵 추상을 보여주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했다”며 “예술과 기술의 융합 무대를 통해 대를 이은 한 가족의 예술 세계를 고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시장에서는 서세옥 화백의 주요 시기 원작 회화 7점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즐거운 비’(1976), ‘행인(行人’(1978), 2점의 ‘사람’(1979), ‘춤추는 사람들’(1987), ‘사람들’(1996), ‘사람들’(1996~1997)이다.

서세옥 화백은 2014년 자신의 주요 작업을 선별해 국립현대미술관에 100점을 기증했고, 그의 타계 후 유족들은 전체 작품과 컬렉션을 서울 성북구립미술관에 기증해 더 많은 이가 오랫동안 산정의 예술 세계를 기억할 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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