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끼시마마루호 고철만 인양' 日에 "너희들은 돈벌이만" 항의문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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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광복 후 폭침된 강제 징용자를 태운 제1호 귀국선 '우끼시마마루(浮島丸)' 선체를 인양할 때 다이너마이트로 폭발시키고 고철만 인양토록 한 일본 정부에 대한 재일 조선인 항의 문서가 발견됐다.
김 소장은 "왜 미군이 기뢰를 깔아 놓은 곳에 들어갔을까. 기뢰에 터졌다면 즉시 폭발할 것인데 왜 3시간 머물다가 폭발 소리 3번이나 났나(기뢰 폭발은 한 번에 끝난다). 입항 후 3시간 동안 선원 다수는 고무보트로 하선했다"면서 "1975년 일본 유학해 처음 연구해 1987년 귀국했다. 일본문화 강의 때 우끼시마마루 강의 후 국화꽃 한 송이 놓고 일부 학생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30여 년 추모·위령제를 올렸다. 부산의 한 시민단체가 시 예산을 얻어 위령제를 지낸 후 지금도 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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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뉴시스] 조현철 기자 = 8·15 광복 후 폭침된 강제 징용자를 태운 제1호 귀국선 '우끼시마마루(浮島丸)' 선체를 인양할 때 다이너마이트로 폭발시키고 고철만 인양토록 한 일본 정부에 대한 재일 조선인 항의 문서가 발견됐다.
15일 한일문화연구소(소장 김문길 부산외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맥아더 장군이 강제 징용자를 귀국시키라고 일왕에게 명령하자 우끼시마마루호는 8월 22일 오후 10시 홋카이도 오미나도(大港)에서 출항했다. 부산에 도착해야 할 배는 8월 24일 오후 5시20분께 교토후 마이즈루(京都府 舞鶴)항에서 폭침당했다.
일본 정부는 3500여 명이 탑승해 525명(일본 군무원 250명 포함)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사실은 8000여 명이 탑승해 적어도 5000여 명이 희생됐다는 게 김 소장의 주장이다.
일본 군속(군무원) 등 귀국선원들은 사고 날 것을 미리 알고 우끼시마마루호가 출항 못 하도록 일왕에게 요구(大海令 52호)했다. 일본 군무원 250명은 출항하자마자 승선 거부 운동까지 벌였다. 일본군 참모부에서 출항 금지 전보를 쳤으나 출항하고 말았다.
일본 정부는 1950년 2월 우끼시마마루호를 인양하기로 하고 공개 입찰을 봤다. 6·25전쟁을 앞두고 모든 무기는 일본에서 공급하도록 미·일 간 준비 중에 고철이 필요해지자 고철회사끼리 인양 응찰했다. 오사카 이노 중공업(飯野 重工業會社)에 낙찰돼 인양 작업했다.
이노 중공엽은 당연히 유해를 건져 올리는 데 혼신을 다해야 했으나 다이너마이트로 배를 폭발, 건져 올린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제일 유족과 조선인들은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그때 시위를 한 홍보문건(찌라시)을 보면 '일본 정부여! 너희들은 돈벌이 고철이 중요한가. 우리 아버지 유해, 억울하게 죽은 조선인들 유해가 중요하니 안전하게 인양하라. 비인간적이다'라고 분개했다.
그러나 유해는 중요시하지 않고 고철만을 건지는 데 열을 올렸다. 일부 고철에 걸려 올라온 유해는 화장해 야스쿠니(전장에서 죽은 일본군인 유해)가 잠들어 있는 우천사(佑天寺)에 보내져 귀국도 못 하고 지금도 보관돼 있다.
김 소장은 "한 많은 영혼, 강제로 끌려가서 돌아오지 못한 영령들. 일본은 지금도 유해마저도 돌려주지 않고 미군들이 묻어둔 기뢰에 폭발, 불가항력의 침몰이라 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지금도 마이즈로 항은 일본 해군 사령부가 있다. 당시 미군이 매설한 기뢰 620개나 있었다. 우끼시마마루는 원래 전쟁 때 무기를 운반하던 배다. 선장 도리 카이(鳥海)는 일류 항해사였다.
김 소장은 "왜 미군이 기뢰를 깔아 놓은 곳에 들어갔을까. 기뢰에 터졌다면 즉시 폭발할 것인데 왜 3시간 머물다가 폭발 소리 3번이나 났나(기뢰 폭발은 한 번에 끝난다). 입항 후 3시간 동안 선원 다수는 고무보트로 하선했다"면서 "1975년 일본 유학해 처음 연구해 1987년 귀국했다. 일본문화 강의 때 우끼시마마루 강의 후 국화꽃 한 송이 놓고 일부 학생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30여 년 추모·위령제를 올렸다. 부산의 한 시민단체가 시 예산을 얻어 위령제를 지낸 후 지금도 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김 소장은 "매년 '우끼시마마루 진상 규명회' 모임 때마다 강사로 참여하지만 진정으로 영혼들을 위한 행사인가 의문이 든다. 억울하게 희생됐으나 해방 79년 광복의 기쁨도 모른 채 잠들어 있다. 이런 사회에선 밝은 미래 역사는 없다"고 토로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jhc@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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