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경영땐 급여 환수·합병무산까지···'독한 법안'에 정부도 당혹

조지원 기자 2024. 8. 15.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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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지배구조 흔드는 野···거세지는 기업옥죄기
'분리선출 감사' 되레 3명 확대
M&A 규제는 시행도 전에 강화
독립이사 과반 등 전방위 '칼날'
정부도 지배구조 개선 공감 불구
야당 입법 폭주에 타협점 고심
[서울경제]

정부가 기업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추진하는 법안을 우려하는 것은 규제 강도가 너무 세기 때문이다.

현재 발의돼 있는 상법 개정안을 보면 이런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니라는 게 드러난다. 경영 부실의 책임 범위에 상응하는 이사 보수에 대해 지급을 제한하거나 환수해야 한다는 개정안(오기형 의원 대표발의안)부터 회사가 불공정한 합병 비율을 정해 주주에게 불이익이 발생할 때 합병을 막을 수 있는 권한을 주자는 법안(박상혁 의원 대표발의안)도 있다. 야당이 정부보다 강하게 이런 법 개정에 나서는 것은 1400만 명에 달하는 이른바 개미, 개인 주주의 표심을 우선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야당이 정부보다 훨씬 더 강하게 기업을 옥죄는 대표 사례는 분리 선출 감사위원 확대다. 2020년 상법 개정에 따라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는 감사위원이 될 이사 중 최소 한 명을 다른 이사들과 분리해서 뽑아야 한다. 과거 일괄 선출 방식일 때는 이미 선임된 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을 정했기 때문에 이해충돌을 막기 위해 감사위원 선임 과정에서 최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룰’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나 감사위원 한 명을 별도로 뽑기 시작하면서 3%룰이 효과를 발휘하자 최대주주가 아닌 주주들이 낸 후보가 감사위원이 되는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감사위원 분리 선출 도입 당시부터 대주주 재산권 침해, 경영권 불안 등을 이유로 반대했다. 최근 정부가 밸류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분리 선출 감사위원을 활용하는 방안 등을 검토한다는 소식에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문제는 민주당이 준비 중인 개미투자자보호법에서는 분리 선출 감사위원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3명까지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기업도 이사회가 5명 정도로 구성되는데 그 중 감사위원 3명을 분리 선출하라는 건 지나치다”며 “이미 많은 논의를 거쳐 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제도를 다시 뜯어고치겠다는 건 국가 전체적으로 소모적인 일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야당은 정부가 입법 예고까지 마친 인수합병(M&A) 제도 개선안도 시행하기 전에 더 강한 규제부터 도입하자는 입장이다. 앞서 정부는 인수합병 공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투자자를 보호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합병 추진 배경이나 상대방 선정 이유, 진행 시점 등을 구체적으로 공시만 해도 투자자 보호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반면 김현정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이른바 ‘두산밥캣방지법’으로 합병 등 가액이 불공정하게 결정돼 투자자가 손해를 입으면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이외에도 개미투자자보호법에는 이사회 절반 이상을 독립이사로 구성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에 가뜩이나 사외이사에 대한 결격 사유가 많은데 독립성이라는 조건까지 내걸면 전문성 있는 이사를 구할 수 없게 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 집중투표제 의무화도 논란 대상이다. 집중투표제는 각 주주는 1주마다 선임할 이사 수와 동일한 의결권을 갖는다. 주주총회에서 이사 5명을 선임한다면 1주당 의결권 5개가 발생해 한 명에게 집중하거나 여러 명에게 분산 투표하는 방식이다. 현행 상법에 규정돼 있으나 기업들은 정관을 통해 적용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지배주주가 모든 이사를 선임하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구상이다.

정부 내부에서는 야당이 지나치게 규제 중심적이라고 보면서도 기업 역시 명분을 제공하지 말고 소액주주 보호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정부 관계자는 “(최근 기업 합병과 관련해) 소액주주 이익 침해 논란 발생 이후 야당에서 법안이 굉장히 세게 나오고 있다”며 “야당이 추진하는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더 힘들 수밖에 없는 만큼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재계의 한 임원은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확대만 해도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주주 이익을 모두 만족시키기 어려운 문제가 있고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이사회를 통해 의결된 기업의 중요 경영 활동에 대해 유한책임만 있는 주주에게 이를 전면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놓고 정부·여당과 야당 간 주도권 쟁탈전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상법 개정에 신중히 접근했던 정부는 주주가치를 존중하는 경영 문화를 확산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갖고 관련 논의에 돌입했다. 정부는 특히 야당의 개정안이 기업 경영의 안정성을 저해해 기업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는 만큼 수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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