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공사비 갈등’ 함정에 빠진 정비사업

김상용 기자 2024. 8. 15.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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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용 건설산업부장
정부, 촉진법으로 정비사업 속도전 예고
공사비 갈등에 핵심 비켜간 해결책 제시
진행 사업장에 수익성 제고 방안 내놔야
기부채납 축소·상한제 완화 등 대책 절실
[서울경제]

정부가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에 대한 지원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정부 지원책은 크게 정비사업 기간 단축과 용적률 인센티브 확대에 집중됐다. 우선 정비사업 기간을 줄이기 위해 사업 과정에서 순차적으로 수립하는 단계별 계획을 통합 처리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정비사업의 기본 계획과 정비 계획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인허가 기간을 줄여 정비사업이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또 향후 3년 동안 역세권 정비사업의 용적률 추가 허용 범위를 기존 법적 상한의 1.2배에서 1.3배로 확대한다. 이를 통해 3종 주거지역의 용적률은 기존의 최대 360%에서 390%까지 높아지게 된다. 아울러 일반 정비사업도 법적 상한 용적률의 1.1배까지 허용해 3종 주거지역 용적률을 기존 최대 300%에서 330%로 높인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이 같은 정비사업 지원책의 법적 근거를 만들기 위해 가칭 재건축·재개발 촉진법(특례법)을 제정한다는 계획이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후계획도시를 6년 만에 재건축하고 일반 아파트는 8~9년 만에 할 이유는 없다”며 서울 정비사업의 속도전을 예고했다. 그동안 정비사업에 대해 규제 위주로 접근했던 정부가 민간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지원으로 정책 선회를 알리는 대목이다. 정부가 이처럼 특례법 제정까지 추진하고 나선 것은 서울 도심에 신축 아파트를 공급하는 방안이 재건축·재개발 외에는 없다는 현실적 고민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정비사업 지원책이 서울 도심의 재건축 활성화를 이끌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 서울 도심의 재건축 사업장은 공사비 상승에 따른 조합과 건설사 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더욱이 사전 청약 당첨자까지 확정해 놓은 상황에서 원자재 가격과 공사비 상승 등을 이유로 사업을 취소한 건설사가 속출할 정도다. 심지어 건설사들은 수익성이 높은 정비사업 현장 중심으로 선별 수주에 나서면서 공사비가 낮은 수도권 외곽 등의 재건축·재개발 사업 현장은 시공사를 찾지 못해 발을 동동거리고 있을 정도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개포 5단지 재건축 조합도 올해 두 차례 시공사 선정 입찰을 시도했지만 1개 건설사만 단독 응찰해 유찰됐다. 원자재 가격 등을 비롯해 공사비 전체가 상승했지만 조합이 제시한 가격이 낮자 건설사들도 외면한 결과다.

공사비 상승에 따른 수익성 악화가 재건축 등 정비사업 추진의 가장 큰 걸림돌인데도 정부는 건설사의 공사비 증액 요청 발생 시 공사비 내역 등을 지방자치단체에 제출해 검증을 받도록 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여기에 사업장에 공사비 갈등이 불거지면 현장 갈등을 조율할 수 있는 전문가 파견을 의무화하겠다는 보완책도 제시했다. 정부의 정비사업 지원책이 핵심을 비켜나가 변죽만 울린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면 정부의 정비사업 지원책은 공사비 인상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보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앞으로 추진할 정비사업장에 한해 3년 한시적으로 용적률을 높여주고 임대주택 비율을 차등 완화하는 방안만 제시했다. 이미 지자체로부터 용적률과 기부채납을 확정받은 후 공사비 상승과 수익성 악화 때문에 갈등이 격화하고 있는 사업장에 대한 해결책은 내놓지 못한 것이다. 조합 수익성을 높여 민간 부문의 주택 공급량을 확 늘리기 위해 이미 확정한 기부채납을 줄여주는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강남 3구와 용산 등에만 적용 중인 분양가상한제 해제나 완화 방안도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 1기 신도시의 재건축 현장은 상한제를 적용받지 않아 분당 일부 아파트는 자체 시뮬레이션을 통해 일반 분양가로 3.3㎡당 5000만 원을 책정했다고 한다. 전용 84㎡형의 분양가가 17억 원을 웃돌고 입주 때 22억 원에 달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마저 나온다. 집값을 잡기 위해 1기 신도시 재건축을 활성화한다면서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지 않은 채 서울 일부 지역에만 여전히 ‘개발 이익의 독점 불가’를 외치는 정부의 입장은 모순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디테일에 숨어 있는 악마를 제거해야 부동산 공급 대책이 시장에서 통할 것이다. 조합 수익성을 높여야 정비사업 기간이 단축된다. 이것이 바로 최고의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이다.

김상용 기자 kim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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