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숙 '폭탄 돌리기'···건설업계 유동성 위기 새 뇌관 되나

김민경 기자 2024. 8. 1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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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불가'에 수분양자 이탈
손배소·중도금 미납 등 속출
시행사 자력으로 상환 못하면
책임준공·채무인수 계약으로
시공사가 수백억 대출 떠안아
사진 설명
[서울경제]

아파트 대안으로 주목받던 ‘생활형숙박시설’이 건설업계의 또 다른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의 ‘주거 불가’ 방침에 수분양자들의 소송과 분양대금 미납 사태가 잇따르면서 대규모 현금이 묶였기 때문이다.

15일 부동산 개발업계에 따르면 고려자산개발은 지난달 준공한 ‘힐스테이트 송도 스테이에디션’ 대주단과 105억 원 규모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의 만기 연장을 논의 중이다. 계약 해지를 요구하며 소송을 진행 중인 수분양자들이 중도금 및 잔금을 내지 않아 수백억 원 규모의 분양대금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기도 안산에 개발 중인 '힐스테이트 라군 인 테라스 2차'도 마찬가지다. 2022년 5월 착공과 함께 분양을 시작했지만 계약금을 포기하고 이탈하는 수분양자가 속출하고 있다. 시공사인 현대건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책임준공과 채무인수 계약을 한 만큼 당장 공사비 회수가 어려워진 것은 물론 시행사의 재무상황이 열악해질 경우 대신 돈을 갚아줘야 한다. 현대건설이 두 곳 사업장에서 신용보강한 PF자금 규모는 약 5500억 원에 이른다.

생활숙박시설은 2018년 부동산 규제정책이 발표된 이후 새로운 주거용 투자상품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다주택자 취득세 등 주택 관련 세금이 강화되고 주거용 오피스텔도 취득세를 중과하는 등 부담이 커지자 이를 회피할 수 있는 대체투자상품으로 떠오른 것이다. 2017년 한 해 동안 6881실 준공됐던 생활숙박시설은 이후 △2018년(10만 2441실) △2019년(10만 4301실) △2020년(10만 4627실) △2021년(10만 7182실) 등 연간 10만 실이 넘는 물량이 공급됐다.

그러나 2021년 1월 건축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주택용도로 사용이 불가하다는 정부의 방침이 내려진 이후 시장 분위기는 반전됐다. 아파트처럼 전세 세입자를 들여 잔금을 치르려던 수분양자들의 자금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고 2022년 이후 금리까지 크게 뛰면서 숙박업 운영 수익률도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정책 사각지대에서 ‘거주가 가능하다’는 분양대행사 말을 믿고 계약한 수분양자들은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레지던스연합회에 따르면 현재까지 준공을 앞둔 생숙 수분양자들이 중도금을 내지 않고 분양계약 취소를 요구하며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1000건을 훌쩍 넘긴 상태다.

하반기부터 준공을 앞둔 곳이 늘어나는 만큼 은행 대출이 어려워 잔금을 내지 못하는 사례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일례로 이달 말 준공을 앞둔 마곡 롯데캐슬 르웨스트는 새마을금고와 잔금 대출을 진행하기로 했지만 금리·대출 한도 등을 최종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한 수분양자는 “분양 당시 안내했던 것과 달리 잔금대출이 감정가의 30~40% 수준에 불과해 자금을 마련할 길이 막막한 상황”이라며 “대부분 계약자들이 비슷한 상황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파산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사태가 건설업계의 또 다른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분양대금이 들어오지 않으면 시행사가 자력으로 PF대출과 수분양자들의 중도금 대출 등을 상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카시아 속초'를 시행한 마스턴PFV는 지난 6월 금융권에 수분양자들의 중도금 약 1200억 원을 대위변제했다. 만약 영세한 시행사가 돈을 구하지 못하고 파산하면 공은 시공사에 넘어간다. 대부분 사업장에 신용공여를 한 건설사들은 이미 투입한 공사비를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대규모 대출금까지 떠안아야 한다.

주차면적 확보 등 오피스텔 전환 여지가 있는 사업장들은 지자체에 용도변경을 요구하고 있지만 극소수다. 주택산업연구원과 한국레지던스연합 등에 따르면 이달 기준 전체 592개 단지, 10만 3820실 중 오피스텔로 변경된 단지는 1173실(1.1%)에 불과한 상태다. 개발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차면적이 완화돼 도심 내 비싼 땅에 생숙을 지을 수 있었던 건데 이제 와서 기준을 맞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가뜩이나 금리와 공사비가 치솟은 가운데 자금회수도 어려워져 퇴로가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민경 기자 mk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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