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두쪽 난 8.15 경축식… ‘불참’ 이종찬 광복회장 "피로 쓴 역사, 혀로 논하는 역사로 못 덮어"

김승환 2024. 8. 1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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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친일 매국 정권”… 여당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적 선동”

‘뉴라이트 성향 의혹’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으로 촉발된 윤석열정부 역사관 논란에 제79주년 8·15 광복절이 끝내 ‘두 쪽’ 났다. 김 관장 사퇴 요구에 윤석열 대통령이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힌 데 대해 반발한 광복회 등 독립운동 관련 단체가 정부 주관 경축식에 불참하고 별도 행사를 진행하면서다. 광복절에 정부 주관 행사와 독립운동단체 행사가 따로 열린 건 1965년 광복회 창설 이래 최초다. 국가 의전서열 2위이자 3부 요인인 우원식 국회의장도 정부 경축식에 불참했다. 정부 행사 대신 광복회 행사를 찾은 야당 인사들은 윤석열정부를 겨냥해 “친일 매국 정권”이라며 공세를 쏟아냈고, 여당은 야당을 향해 “정치적 선동을 중단하라”고 맞섰다.

광복회 등 56개 독립운동 단체가 포함된 독립운동단체연합은 25일 서울 용산 백범김구기념관에서 79주년 광복절 기념식을 열었다. 같은 시각 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선 정부 주관 행사가 진행됐다. 

이종찬 광복회장이 15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최상수 기자
이종찬 광복회장은 이날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기념사를 통해 “79주년 광복절 경축식을 이 자리에서 광복회만의 행사로 치르고 있다”며 “진실에 대한 왜곡과 저열한 역사의식이 판치며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독립운동가 후손이 모여 독립정신을 선양하고자 하는 광복회는 결코 이 역사적 퇴행과 훼손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했다. 정부 주관 행사 불참이 불가피했단 뜻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건 분열의 시작이 아니라 전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광복의 의미를 기리는 진정한 통합의 이정표를 세우기 위함”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논하는 역사로 덮을 수는 없다”며 “망령처럼 살아나는 친일사관을 뿌리 뽑아야 한다. 독립운동을 폄훼하고 건국절을 들먹이는 이들이 보수를 참칭하고 있다”고 했다. 기념사 낭독을 마친 그는 “한 마디만 더 하겠다. 제가 내년에 90살로 이승만 대통령부터 윤석열 대통령까지 역사를 봐 왔다. 긴 역사 속에서 역사는 권력의 편이 아닌 정의의 편”이라고 강조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행사 중 “타도 윤석열”을 외치며 정치적 구호를 던지기도 했다. 특히 김갑년 광복회 독립영웅아카데미 단장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십시오”라고 말하자 청중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독립운동단체연합 관계자 등 약 450명이 태극기를 손에 들고 이날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79주년 광복절 기념 독립운동가 후손 초청 오찬에 참석하며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종찬 광복회장. 뉴스1
정부 주관 경축식에 불참한 우 의장은 이날 이종찬 광복회장·백범 김구 증손인 민주당 김용만 의원 등 독립운동가 후손과 오찬을 진행했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이같은 사실을 전하며 “79주년 광복절은 큰 갈등이 있어 매우 안타깝다. 하루 속히 이 혼란함이 잘 정리돼 독립선열과 그 유가족들이 다시는 상처받는 일이 없도록 저 또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우 의장은 독립운동가 김한의 외손자다. 

정부 행사를 불참한 야당 지도부 인사들은 윤석열정부를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윤석열 정권은 역사의 전진을 역행하고 있다”며 “우리 국민의 민생에는 ‘거부권’을 남발하면서 일본의 역사 세탁에는 앞장서 ‘퍼주기’만 한다”고 비판했다. 박찬대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백범김구기념관 앞에서 윤석열정부를 향해 “제2의 내선일체가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민주당 내 ‘윤석열 정권 역사 쿠데타 저지 TF(태스크포스)’ 구성 계획을 밝히고 “독립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법안을 신속히 처리하겠다”고 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친일, 종일, 부일, 숭일분자들이 판을 친다”며 “귀하는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이냐, 아니면 조선총독부 제10대 총독이냐”고 했다. 

야당 대표 중 유일하게 정부 경축식에 참석한 개혁신당 허은아 대표는 이날 행사장에서 윤 대통령과 악수하며 “눈높이 인사를 아십시오. 국민과 소통하십시오”라고 말했다. 허 대표는 통화에서 이 발언에 대해 “윤 대통령이 경축사에 남북대화의 문을 열겠다고 했는데 당장 국회와도 대화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그런데도 ‘반통일세력’, ‘사이비 지식인’ 등 이런 말을 하면서 막 투쟁하고 싸우라고 하는데, 그게 말이 되는 거냐. 그래서 국민 눈높이에 안 맞고 소통하시라고 한 것”이라서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퇴장하며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여당은 야당의 공세에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적 선동”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이날 정부 주관 행사가 끝난 뒤 기자들을 만나 불참한 우원식 국회의장과 이종찬 광복회장에 대해 “이견이 있으면 여기서 말씀하실 수도 있는데 불참하면서 나라가 갈라지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건 너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독립기념관장 임명 논란에 대해서는 “인사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만 해 직접 평가는 삼가는 모습이었다. 

용산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출신인 강승규 의원은 이날 SBS 라디오에서 광복회와 야권의 독립기념관장 사퇴 촉구에 대해 “광복회장께서 본인 기준에 따라 적절하지 않다고 해서 인사 철회를 하라고 하면 대통령이 인사 철회를 해야 하냐”라며 “그게 나라냐. 그럴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승환·김병관·박수찬·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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