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신종근의 'K-리큐르' 이야기…천년 역사의 문배주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이에 연합뉴스 K컬처 팀은 독자 제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신종근 전시기획자. 저서 '우리술! 어디까지 마셔봤니?', '미술과 술' 칼럼니스트.
문배주는 고려시대부터 전해져 왔다고 알려진 평양 지방의 술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04년 발간한 단행본 '문배주-중요무형문화재 제86-가호'에 따르면 문배주는 문배주가 평양의 대동강변에서 빚어졌다는 구전이 있다고 한다. 고려 태조 때 신하들이 왕에게 앞다퉈 좋은 술을 진상해 벼슬을 얻었는데, 그중 문배주를 진상한 신하가 가장 높은 벼슬을 얻었다는 내용이다.
고려시대 중엽에 문배주와 관련한 설화가 있는데 시인 김기원과 관련한 내용도 있다.
내용인즉슨 김기원이 대동강변 '연광정'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문배주를 놓고 시주풍류(詩酒風流)를 즐겼다고 한다.
그가 문배주로 흥을 돋우다가 시를 짓게 됐는데, '대동강 동쪽으로는 끝없는 산이 이어지고, 성 한쪽으로는 강물이 질펀하게 흘러가는데(大野東頭點點山 長城一面溶溶水)'라고 운필하고, 한숨을 돌리기 위해 옆에 앉은 기생에게 문배주를 따를 것을 명하고 붓을 멈췄다고 한다. 문배주의 술맛이 워낙 좋았든지 동석한 시인 묵객들이 서로 다투어 문배주를 다 마셔버려서 술이 다 떨어졌다고 한다. 이에 김기원은 '술이 떨어지고 없으니 시흥도 일어나지 않는다'면서 붓을 던지고 말았다는 내용이다.
고려시대의 다른 역사 문헌에 문배주 관련 내용이 추가로 기술된 게 없어 아쉽긴 하지만 어찌 됐든 1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술임에는 틀림이 없다.
문배주라는 이름은 '술에서 문배 향기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 시대부터 왕이 마시는 술로 알려졌고, 현대에도 귀한 외국인 손님의 환영연에서 문배주를 대접하는 전통이 있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등이 한국을 방문해 문배주를 즐겼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만찬주로 쓰였는데 당시 문배술이 나오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문배술은 평양 주암산 물로 만들어야 제맛"이라고 말했다.
그 후 2018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만찬주로 쓰였다.
현대의 문배주는 1995년 문배주 기능보유자로 선정된 이기춘(82) 명인의 4대조 박씨 할머니에 의해, 전주이씨 평장사공파 가문의 비주(秘酒)와 가양주(家釀酒)로서 전해 내려오게 됐다.
이기춘 명인의 조부 이병일이 평양 감흥리에 '평천양조장'을 설립하면서 문배주를 본격 생산했다. 그의 아들인 이경찬 옹(1915-1993)이 이어받아 양조장을 키우며 문배주와 감홍로를 빚었다.
이경찬 옹은 한국전쟁 때 남한으로 내려와 미아리 근처에서 대동양조장을 차리고 '거북선'이라는 문배주를 만들었다.
양곡관리법 때문에 생산이 중단됐다가 1982년에 문화재위원회가 전통민속주를 조사하기 시작해 최종적으로 문배주를 포함한 면천 두견주, 교동 법주 등 3종의 술이 1986년 말에 무형문화재 86호로 지정됐다.
이경찬 옹은 평안도 특유의 소주 맛을 어떻게 만천하에 알릴 수 있을까 하던 차에 무형문화재 지정을 계기로 1990년부터 연희동 자택에서 다시 문배주를 빚었다.
이후 이경찬 옹은 첫째 아들 이기춘 명인에게 문배주를 전수했으며 감홍로는 둘째 아들인 이기양 명인에게 전수했다. (하지만 이기양 명인이 별세해 감홍로는 이경찬 옹의 막내딸인 이기숙 명인이 전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3년에 이경찬 옹이 세상을 떠나자 당시 대기업에 근무하며 술 빚기를 배우던 이기춘 명인이 회사를 그만두고 문배주를 이어서 만들기 시작한다.
그는 좋은 물을 찾아 김포에 문배주 양조원을 설립하여 문배주를 만들고 있으며 그의 아들인 이승용 씨가 5대째 가업을 잇기 위해 열심히 배우고 있다.
문배주 명칭의 기원은 야생 배의 일종인 문배나무의 과실인 문배의 향이 난다고 해서 문배주라 이름이 붙은 술이다. 하지만 배는 넣지는 않고 우리나라 전통주로서는 특이하게 쌀을 쓰지 않고 수수와 조, 통밀로 만든 누룩만으로 빚은 술이다.
문배주를 만드는 법을 보면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들어감을 알 수 있다. 우선 '주모'(酒母 밑술)를 만든다. 누룩가루를 물에 잘 풀어 '수곡'을 만들고 고슬고슬하게 잘 지어진 메조 밥을 넣어 주모를 만든다.
5일 동안 발효된 주모에 찰수수를 잘 익혀 덧술을 하고 하루가 지나면 두 번째 덧술을 안친다.
두 번째 덧술을 안치고 열흘 뒤 술을 증류해 문배주를 만든다. 하지만 문배주는 증류 후 바로 마시지 않고 25도 정도 되는 서늘한 곳에서 1년 정도 숙성시켜야 진정한 향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문배주는 역사를 내세우며 전통만을 고수하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원래 문배주는 40도였지만 도자기 병이 아닌 투명유리 병에 23도와 25도의 술을 담아 일반 마트에서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술을 좋아하던 장욱진 화백(1918-1990)의 그림과 문배주를 협업하는 시도도 있다.
박수근과 이중섭, 김환기 등과 함께 근현대 미술사를 대표하는 2세대 화가인 장욱진 화백의 작품 '일일 시호일 '(나날이 좋은 날)은 하루하루가 즐거움이 된다는 의미다.
5대째 술의 맛과 향을 지키려는 노력을 담은 문배주와 그 누구보다 심플한 삶을 살아왔던 장 화백의 작품 '나날이 좋은 날'의 모습이 매우 잘 어우러진다.
그래서 최근에는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과 문배술양조원이 손을 잡고 1만병의 문배술 아트 패키지 리미티드 에디션을 선보였다.
장 화백은 특히 집, 가족, 아이, 나무, 새 등 가정적이고 일상적인 소재를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대담하고 간결한 구도와 자신만의 독특한 색감으로 표현해 '동심의 화가'로도 불린다.
또한 그는 술을 사랑했다. 장 화백은 생전에 남긴 에세이에서 "40년을 그림과 술로 살았다. 그림은 나의 일이고 술은 휴식이니까. 사람의 몸이란 이 세상에서 다 쓰고 가야 한다.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이니까.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 다 써버릴 작정이다. 남는 시간은 술을 마시고 난 절대로 몸에 좋다는 일은 안 한다. 평생 자기 몸 돌보다간 아무 일도 못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소주를 좋아했던 그의 작품이 사후 30년 만에 우리나라 최고 전통주인 문배주와 만나 서로의 가치를 더더욱 높인 것이다.
<정리 : 이세영·성도현 기자>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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