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 답하다] 거야, 왜 방통위에 집착하는 걸까… 본질은 방송영향력

전혜인 2024. 8. 15.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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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이진숙 취임 하루만에 탄핵
주요방송 재허가·재승인권한 등
공영방송 통제 가능성에 '역공'
지난 14일 오후 국회에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불법적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선임 등 방송장악 관련' 2차 청문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22대 국회는 개원 석 달도 안 돼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민생은 뒷전인 채 극단적인 여야 대결로 치닫고 있어서다. 여야 갈등이 극심한 상임위 중 한 곳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갈등의 가장 한 복판에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있다.

방통위를 둘러싼 갈등은 윤석열 정부의 출범 직후 촉발돼 22대 국회가 '여소야대'로 구성된 이후에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방통위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모든 갈등의 핵은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있다. 바로 5인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가 2인 이하 체제에서 의결을 내리는 것이 정당성을 갖느냐 여부다.

◇5인 방통위는 왜 윤석열 정부에서 2인 체제가 됐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3월 야당 몫의 방통위원으로 추천된 최민희 당시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거부한 게 발단이 됐다. 상임위원 5인으로 구성된 대통령 직속 기구인 방통위는 위원장과 위원 1명을 대통령이 지명하고, 남은 3인 중 1명을 여당교섭단체가, 2명을 야당교섭단체가 추천한다.

윤 대통령은 같은 해 5월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한상혁 방통위원장에 대해 검찰로부터 기소를 당해 직무 수행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면직시키고 대통령 추천 몫으로 이상인 위원을 지명했다. 이후 여권 2인(김효재·이상인)과 야권 1인(김현)의 3인 체제로 운영하던 방통위는 3개월 만인 8월 김효재 직무대행과 김현 위원이 임기 만료로 퇴임하고 윤 대통령이 이동관 위원장을 임명하면서 사실상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장과 부위원장만 있는 상태가 됐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의 반발이 격렬해졌다. 당시 국민의힘은 김효재 직무대행의 후임으로 이진숙 현 방통위원장을 여당 몫 상임위원으로 추천했으나, 야당의 거부로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이 이뤄지지 못해 취임이 무산됐다.

야당은 이동관 위원장 취임 3개월만인 지난해 11월 탄핵안을 제출했다. 위원장과 부위원장만으로 이뤄진 2인 방통위가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 불법적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이동관 위원장이 탄핵 소추 전 자진 사퇴하면서 공석이 된 자리는 지난해 12월 말 김홍일 위원장 임명으로 2인 체제로 복귀했다. 야당은 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한 달도 채 안 된 지난 6월 말 김홍일 위원장에 대한 탄핵안을 제출했고, 김 위원장 역시 탄핵 소추가 이뤄지기 전 자진 사퇴했다. 한때 야당 몫의 방통위 상임위원 후보였던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국민소통위원장이 22대 총선에서 당선돼 방통위의 소관 상임위인 과방위원장을 맡게 된 후폭풍이었다. 그러자 윤 대통령은 한때 여당 몫 상임위원 후보였던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을 새로운 방통위원장으로 지명했다.

국회 과방위는 장관급 후보자에게는 이례적으로 이진숙 후보자에 대한 사흘간의 인사청문회를 진행하며 압박을 가했다. 청문회 와중에 이상인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에 대한 탄핵안을 제출했다. 이 직무대행 역시 전임 위원장과 마찬가지로 탄핵 소추 전 자진 사퇴를 선택하면서 방통위는 한동안 상임위원 제로(0)의 상태에 놓였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을 대통령 몫 상임위원으로 임명했다. 이들은 임명 당일 회의를 열고 공영방송 이사 선임의 안건을 의결했고, 그러자 야당은 앞선 위원장 탄핵 추진과 마찬가지로 2인 체제의 불법성을 이유로 이 위원장에 대한 탄핵 절차에 돌입했다. 헌정사상 취임 단 하루만에 공직자에 대한 탄핵안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위원장은 사퇴하지 않았고, 야당 주도로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직무가 정지된 상태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2인 방통위에 대한 불법성 이유로 탄핵을 시도하기 전에 국회 몫의 상임위원을 추천해 방통위를 정상화해야 한다며 민주당에 목소리를 높이지만, 민주당은 이 문제의 시작이 윤 대통령의 임명 거부에 있다는 점을 들어 여당의 주장을 무시하고 있다. 정상적인 5인 방통위가 구성되면 여권 인사가 3명, 야권 인사가 2명이 되기 때문에 지금 국회에서의 행태와 같이 다수결식 민주주의로 흘러간다면 야당 측이 '정당한 파행'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야당 입장에서는 방통위가 정상화되지 않은 채로 이같은 상황에 대한 책임론 공방을 이어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해결 방안 없는 방통위 파행 언제까지

이번 정권과 거대 야당의 대결로 국회가 방통위에 대한 '역대급' 파행을 이어가고 있다. 이건 비단 이 정부만의 얘기는 아니다. 역대 정부 역시 방통위에 대해서는 늘 '잔혹사'가 되풀이 돼왔다. 방송위원회에서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방송통신위원회로 개편된 이 조직은 현재까지 총 9명의 위원장이 있었지만, 이 중 본인의 임기를 채우고 퇴임한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임기를 마친 최성준 위원장 단 한 명뿐이다. 초대 위원장인 최시중 위원장과 문재인 정부의 한상혁 위원장이 각각 3년의 임기를 마친 후 연임에 성공했으나 최 위원장은 측근의 비리 연루 의혹으로 사퇴했고, 한 위원장은 정권 교체 후 검찰 기소를 사유로 면직됐다. 최성준 위원장 역시 퇴임 1년 후 방통위의 자체 감사를 통해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위원장만이 이런 일을 겪는 것은 아니다. 2017년에는 황교안 당시 대통령 직무대행이 대선 한 달 전인 4월 김용수 당시 미래창조과학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을 대통령 추천 몫의 상임위원으로 임명하며 이른바 '알박기' 인사라는 비난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는 방통위 구성에서 대통령 몫의 위원 둘 중 하나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김용수 상임위원을 두 달 만인 6월 미래창조과학부 차관으로 임명해 자리를 만드는 방법을 썼다.

방통위의 최대 기능은 주요 방송에 대한 재허가·재승인권과 공영방송인 한국방송공사,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한국교육방송공사의 이사를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이다. 지금 이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다. 방통위는 지난해 5월 한상혁 위원장의 면직 이후 김효재 위원장 직무대행 체제부터 지속적인 '공영방송 이사진 개편'을 진행해 왔다. 22대 국회에서 야당이 김홍일 위원장, 이상인 위원장 직무대행, 이진숙 위원장에 대해 연이어 탄핵을 추진한 것 역시 방통위의 공영방송 이사 선임 절차를 최대한 늦추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진숙 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은 취임 첫날 유일한 업무로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진행했으나, 이후 기존 방문진 이사진이 해당 방통위의 이사 선임 과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집행정지 신청과 처분 무효 소송을 내고, 법원이 이를 잠정 인용하면서 효력이 이달 말까지 중단된 상태다.

대통령 직속 기구인 데다가 대통령과 여당이 손쉽게 과반을 점유할 수 있는 방통위가 공영방송을 제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왔다. 윤석열 정부 들어 이같은 갈등이 폭발한 것은 정권과 거대 야당이 한 치의 양보 없이 자신의 주장만을 관철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 본질은 방송장악이다. 야당은 윤 정부가 방송장악을 하려고 한다고 비난하고 있어 여권은 거대 야당이 특정 방송을 장악한 기득권을 지키려한다고 역공을 펴는 게 이를 뒷받침한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며 '여소야대'로 전환된 21대 국회는 이들 공영방송의 이사 숫자를 대폭 늘리고, 이사 추천 권한을 외부 단체, 학회, 직능단체로 확대하는 한편, 사장 후보를 일반 시민이 추천해 지배구조를 바꾸는 내용의 '방송 3법'을 야당 주도로 통과시켰지만, 윤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 국회 본회의 재표결로 사실상 폐기시켰다.

22대 국회는 이미 폐기된 방송3법에 더해 방통위의 의결 정족수를 2인에서 4인으로 늘리는 내용을 담은 방통위법 개정안까지 더해 '방송 4법'을 통과시켰고, 이 역시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며 국회로 돌아온 상태다. 법안 재의결을 위해서는 재적 의원의 과반이 출석해 출석 의원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범야권은 현재 국회에서 192석을 보유하고 있어 재적 의원 3분의 2(200석)에 8석 모자라다. 여당과의 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여당 이탈표는 기대하기 어렵다. 앞으로도 소모적인 대결은 계속 될 가능성이 높다.

전혜인기자 hye@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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