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제정 이번엔 될까…'도끼' 들었던 의사들, 제 발등 찍나
지난해 의사들의 강렬한 저항 끝에 버려진 간호법이 이번 국회에서 부활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여야가 오는 28일 국회 본회의를 열고 간호법안을 처리해 전공의 공백을 메꾸겠다고 예고해서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지 않는 한, 간호법안이 통과되면 전공의 업무를 불법적으로 대신해온 'PA(Physician Assistant)간호사'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첫 법망이 나온다. 의사들이 환자 곁을 떠나면서 이들의 공백을 메울 간호법 통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단 평가다. 의사들이 '도끼'로 제 발등을 찍은 격이란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간호법안이 시동을 걸자 의사들 사이에선 분노가 들끓는다. 지난 14일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보도자료를 내고 "간호법안을 통해 PA 합법화 획책을 시도하는 정부와 여야 정치권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면서 "PA간호사가 단독으로 기도삽관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응급의료에 대한 이해부터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협은 지난 9일 국민의힘 김상훈 정책위의장이 한 라디오프로그램에서 PA간호사 업무 범위에 대해 언급한 내용에 대해서도 문제 삼았다. 당시 김 정책위의장은 "현재 의료공백 상태가 너무 장기화하니까 PA간호사라고 수술보조 간호사, 환자의 목에 간단하게 삽관 정도만 할 수 있는 수술보조 간호사제도를 정식으로 도입하자는 내용이 (간호법안의) 주된 내용"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의협은 "간호사가 환자의 목에 간단하게 삽관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망언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의료지식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국회의원 수준에 깊이 개탄한다"고도 날을 세웠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환자 안전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의료행위인 '기관 삽관'은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숙련된 의사들도 어려움을 겪는 의료행위"라며 "응급 의료 현장에서 이와 같은 의료행위를 간호사가 단독적으로 수행한다면 환자의 생명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기관 내 삽관이 쉽기에 간호사들도 할 수 있다'는 식의 망언으로 의료에 대한 정치인의 무지함이 드러났다"며 "국민 건강과 생명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는 사고방식을 가진 정치인과 행정 관료에 의해 현재 간호법 제정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현실이 참담하다"고 분개했다.
하지만 간호법 입법화가 탄력을 받자 의사들 사이에선 내분이 격화하는 모습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제2차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 협의회 회의'가 열린 지난 10일, SNS에 "의협 임현택 회장, 박종혁 이사, 채동영 이사도 참석했는데도 불구하고 업무보고에는 '간호법'이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며 "나만 심각한가"라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임현택 의협 회장은 같은 날 SNS에 "현안인 의료농단, 전공의·의대생 지원책, '간호법' 등에 대해 집행부가 노력하고 있는 부분을 설명드렸고 시도의사회장님들의 여러 조언을 듣고 협력을 요청했다"는 글을 올리며 반박했다. 한 사직 전공의는 "대전협 비대위원장, 의협 회장, 시도의사회장 등이 해결보다 각자 분열된 모습만 보인다. 밥그릇 싸움밖에 안 된다. 함께 모여 어떻게 하면 현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노력하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간호법은 지난해 야당의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입법이 불발됐다. 하지만 전공의 91.1%(1만3531명 중 1만2321명, 13일 11시 기준)가 사라진 현재로서는 윤 대통령이 간호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의사 A씨는 "정부가 상급종합병원을 '전문의 중심병원'으로 바꾸겠다 했지만, 결국 '간호사 중심병원'을 만드는 꼴"이라며 비판했다.
지난 3월 정부가 발표한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에선 가칭 전담간호사(PA)의 업무 범위에 △환자 문진 △검체 체취 △수술 부위 봉합 △동맥혈 채취 등을 포함했다. 간호법이 통과하면 한시적으로 허용한 이들의 업무가 항구적으로 굳어질 것이란 게 의사들의 우려다. 의사 B씨는 "사실상 의사의 모든 업무를 간호사가 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의도를 대놓고 드러낸 것"이라며 "미래 세대 의사들이 대한민국에서 행복하게 진료할 환경을 만들려면 정부가 은근슬쩍 진행하려는 이런 악법을 저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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