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기획서 70번 퇴짜 맞은 지방대생, 연 매출 50억 원 출판사 대표로[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
[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
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 창작자들은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베스트셀러가 되길 꿈꾸지만,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 희귀한 확률을 뚫고 베스트셀러가 된 콘텐츠가 탄생한 과정을 들여다본다. 창작자의 노하우를 비롯해 이 시대 사람들의 욕망, 사회 트렌드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책을 내고 싶은 지방대생이 출판사에 기획안을 보냈다. 거절당했다. 내용을 고쳐 다른 출판사에 냈고 결과는 같았다. 매번 다르게 기획안을 썼지만 거절, 또 거절이 이어졌다. 그렇게 퇴짜를 맞은 게 70번. 하지만 출간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 책을 낼지 고민하다 개인의 후원을 받아 자금을 모으는 ‘크라우드 펀딩’을 알게 됐다. 그렇게 첫 번째 책 ‘사람 소리 하나’가 2016년 나왔고 3만 권이 팔렸다. 책에는 그가 소셜 미디어에서 사람들의 고민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답한 내용을 담았다.
그리고 그해 직접 출판사를 차렸다. 그는 꾸준히 책을 냈고 2022년 출간한 에세이 ‘당신은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은 2년 3개월간 20만 권이 판매됐다.(국내 출판계의 베스트셀러 기준은 책 판매량 1만 권이다.) 그의 책을 포함해 여러 베스트셀러를 낸 이 출판사의 연간 매출은 50억 원이다. 필름 출판사 대표인 김상현 작가(31)의 이야기다. 그는 ‘카페 공명’도 운영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 홍대앞, 합정까지, 세 지점에서 올리는 매출은 연간 20억 원이 넘는다. 올해 10월경 가로수길에 4호점을 낼 예정이다.
“제가 표현하는 것을 좋아해요. 글쓰기와 출판은 생각을 표현하는 거고, 카페는 사람들이 여유롭게 즐길 수 있게 저만의 방식으로 공간을 표현하는 거니까요. 좌충우돌했고 고비도 많았어요. 갈피를 잡기 어려울 때도 적지 않았고요. 하지만 꾸준히 글을 쓰다보니 스스로를 타인의 시선으로 보듯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됐어요.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지 않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법도 찾게 됐습니다.”
‘당신은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에는 지방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가 갖가지 시도를 하며 느끼고 깨달은 바를 담았다. 대학생 때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어 공모전에 30번이나 응모했지만 모두 탈락한 경험, 사람들과 고민을 나누는 글을 쓰고 싶어 소셜 미디어에 무작정 글을 쓰기 시작한 것, 카페를 열었지만 두 번이나 문을 닫아야 했던 과정 등을 썼다.
연이어 벽에 부딪히면서도 계속 행동하며 결국 무언가를 해 낸 건 어떻게 가능했을까.
“많은 실패를 했지만 그 과정이 다 괴로웠던 건 아니에요. 글을 쓰는 게 좋고, 사람들이 카페에 와서 즐기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어요. 실패해도 이상하게 좌절이라는 감정은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했습니다.”
공모전만 해도 말이 30번이지, 한 번 카피를 만들 때마다 적어도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이 걸렸다. 출간 기획서도 매번 다르게 써서 70번이나 낸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원래 집요한 성격이냐”고 묻자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어릴 때 눈물 많고 관심 받는 거 좋아하고 소심한 성격이었어요. 부모님도 안정적인 일을 권하며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라고 하셨죠. 취미도 없고 주변 사람들의 부정적인 반응에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저는 악바리와 거리가 먼 줄 알았어요. 그런데 ‘네가 무슨 책을 내냐’는 말을 들으니 ‘될 때까지 해볼 테니 두고 봐라’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한 가지는 자신할 수 있었어요. 공모전이든 글쓰기든 제가 이에 대해 진짜 고민하고 생각을 많이 했다는 걸요.”
그는 여섯 번째 책인 ‘당신은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을 출간할 때 여러 전략을 세웠다. 우선 이해하기 쉽게 썼다. 가령,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때는 그대로 놓아주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유연함을 지니게 되면 그 사이로 생각하지 못한 행복이 들어올 수 있다는 것. 그는 명상을 하며 생각의 폭을 넓히고 감정의 기복을 다스리려 애쓴다고 한다. 일상에서 겪었던 에피소드도 넣었다. 그리고 책에 담긴 글의 양을 일반 책보다 줄였다. 총 207페이지인 이 책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게 한 것.
“책은 선물하는 경우가 많은데, 선물을 하려면 자기가 책을 먼저 읽어야 하잖아요. 책 한 권을 다 읽어야 한다는 부담이 적지 않은데, 이 책은 수월하게 읽을 수 있으니 호응이 컸던 것 같아요. 내용을 압축하기 위해 처음 썼던 원고의 반 이상을 덜어냈어요.”
“첫 표지는 그 자체로는 예쁜데 서점 매대에 놓으니 묻혀버리더라고요. 요즘 알록달록하고 다양한 그림을 활용한 책 표지가 엄청 많으니까요. 서점을 찾은 이들의 눈에 더 잘 띌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다 아무 디자인 없이 꼭 필요한 글만 넣기로 했습니다.”
실제 서점에서 보면 화려한 색상의 책 표지들 사이에서 이 책이 오히려 도드라져보인다.
사진 찍기 좋도록 주요 문구를 큰 글씨로 넣은 페이지도 새로 넣었다. ‘찾아온 불행은 그대로 두고, 내가 할 일을 찾는다. 그럼 어떻게든 된다. 불행은 가끔 찾아오지만, 행복은 계속 찾아낼 수 있는 거니까.’, ‘어차피 불안할 거라면 인생 한 번뿐이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라. 용기가 기회를 만들고, 고민이 결과를 낳는다.’ 등이다. 이들 페이지의 사진을 찍어 올리는 독자도 적지 않다. 책을 단순히 읽는 대상에서 더 나아가 특별한 선물과 소셜 미디어에 활용할 수 있는 소재로 확장시킨 것이다.
필름 출판사는 김 작가의 책(2019년 낸 에세이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도 20만 권 판매됐다) 외에도 베스트셀러를 여럿 냈다. 현재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만 해도 ‘아이가 없는 집’(알렉스 안도릴 지음·유혜인 옮김), ‘일류의 조건’(사이토 다카시 지음·정현 옮김), ‘치즈덕이라서 좋아!(나봄 지음)가 있다.
“추리소설 ‘아이가 없는 집’은 직원들이 강력 추천해서 들여오게 됐어요. 제가 책, 영화,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보는데요, 추리물만 못 보거든요. 절판됐던 ‘일류의 조건’은 몇 년 전 중고책방에서 구해 본 적이 있어요. 20년 전에 쓴 책이라고는 믿기지 않았죠. 그러다 뇌과학 전문가인 박문호 박사가 적극 추천하신 걸 보고 출간하기로 결정했어요.”
기존 출판사들도 힘겨워하는 상황에서 신생 출판사가 이처럼 눈에 띄는 성과를 내는 비결이 뭘까.
“우선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책을 발굴하려 합니다. 마케팅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 종류별로 이용하는 사람들의 성향이 미묘하게 달라요. 서점 이용자, 포털 사이트별로도 그렇고요. 매체에 따라 세분화해서 각기 다른 마케팅을 해요. 당신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메시지를 친근하게 전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을 찾는 겁니다. ‘안 되면 망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결과가 좋으면 그 원인을 분석하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왜 그런지 파악합니다. 어떻게 했어야 더 효과적이었을지 다시 분석해 성공할 확률을 높이려 해요. 이 과정에서 직원들과 논의를 정말 많이 합니다.”
일각에서는 필름 출판사가 ‘사재기’를 한다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저와 직원들 모두 크게 상처받았어요. ‘필름 출판사 편집자는 좋겠다. 대표가 알아서 사재기 해주니 히트작 포트폴리오가 쌓이니까’라고 했대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마케팅 비용은 다른 출판사보다 0이 하나 더 붙는다고 할 정도로 많이 씁니다. 사재기 할 돈이 있으면 마케팅에 더 쓸 겁니다. 궁금하면 (필름 출판사에) 입사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길지 않은 기간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지만 굴곡도 많았다.
“카페를 두 번이나 접은 후 카페 공명을 연남동에 새로 열었는데 7개월 만에 팬데믹이 닥쳤어요. 월세가 1500만 원인데 매출이 곤두박질하면서 하루 매출이 10만 원일 때도 있었습니다. 한달에 적게는 5000만 원에서 많게는 2억 원씩 적자가 나면서 빚이 16억 원이나 쌓였어요. 무서웠어요.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가 부러지고, 여기저기에서 일이 터졌어요.”
“매출을 올리고 빚을 갚으려면 저부터 중심을 잡아야겠더라고요. 당시 느낀 감정, 생각을 계속 썼어요. 기쁠 때도 글을 쓰지만 힘들수록 글을 많이 쓰게 됩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불안이 보였어요. 이런 것들과 거리를 두고 제3자처럼 스스로를 보게 되자 차츰 차분해 지면서 치유 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런 힘든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 과정은 책에 담아냈다. 글쓰기, 출판사에 카페 운영까지, 버겁지 않을까.
“솔직히 두려움과 불안의 연속이에요. 하지만 버거울 정도로 두렵진 않아요. 성취감이라는 행복도 느끼니까요. 힘들어도 퇴사할 수 없고요.(웃음) 작가로서 아직 정체성은 갖지 못한 것 같아요. 저는 등단하지 않았어요. 제 글을 보고 ‘이것도 글이냐’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가수만 노래 부르고 미술 전공자만 그림 그려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지금까지 주류였던 적이 없어요. 글을 쓴다는 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이들과 고민을 공유하고 공감과 위로를 건네는 글을 꾸준히 쓰고 싶습니다.”
■‘당신은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필름 출판사·2022년)은….
경영학을 전공한 지방대생이 무작정 소셜 미디어에 글을 쓰다 책을 낸 후 출판사를 세우고 카페까지 운영한 경험, 그 과정에서 느낀 삶에 대한 생각을 쓴 에세이다.
저자는 표현하는 것을 좋아해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한다. 글쓰기와 출판은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고, 카페는 사람들이 여유를 즐겼으면 하는 마음을 공간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고등학생 때는 노래방을 좋아해 노래만 부르다 성적에 맞춰 집 옆에 있는 대학에 갔다. 그러다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어 공모전에 30번이나 응모했지만 모두 떨어졌다. 여기에 학점 챙기기, 토익 점수 올리기 등을 하느라 잠도 줄여가며 무리하다보니 건강이 상했고 남은 건 없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만의 속도로 달려야 한다는 것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곰곰이 생각하다 사람들이 보고 듣고 즐기는 콘텐츠를 좋아한다는 것을 파악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알려면 그들의 생각을 알아야 하고, 고민을 들어보면 깊숙한 속내를 알 수 있겠다고 여겼다.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고민을 올려주면 함께 고민하고 들어주겠다’고 했지만 응하는 이는 없었다. 결국 저자는 자신의 고민을 올리고 스스로 답변을 써나갔다. 어느 날 진짜 고민을 담은 사연이 왔고, 답변을 하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됐다. 그는 이를 모아 책을 내고 싶어 출판사에 출간기획서를 보냈지만 70곳에서 모두 거절당했다. 계속 방법을 찾다 후원이나 기부 등으로 개인으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크라우드 펀딩’을 알게 됐고 이를 통해 첫 책 ‘사람 소리 하나’를 냈다.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필름 출판사를 직접 세워 여러 베스트셀러를 냈고,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카페 공명’을 차렸다.
저자는 너무나 어려워보여도 막상 부딪혀보면 생각했던 것만큼 힘들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다. 삶도 조금씩 달라졌다.
그 역시 시행착오를 여럿 겪었다. 카페 공명을 차리기 전 카페를 운영했는데 두 번이나 문을 닫은 것. 게다가 카페 공명이 문을 연 후 7개월 만에 팬데믹으로 매출이 하루 10만 원으로 곤두박질치면서 매달 수천 만 원씩 적자가 났다. 하지만 버티기로 했다. 이유는 전국의 모든 카페가 문을 닫지 않았기 때문. 여전히 사람들이 줄을 설 정도로 잘 되는 곳이 있었기에 그 이유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카페 공명의 문제점을 찾았다. 매장이 쾌적하고 커피가 맛있으며 직원도 친절하지만 빵이 맛있지 않다는 것. 이에 서울, 경기도의 잘 되는 빵집과 잘 되지 않는 빵집을 찾아다니며 그 이유를 분석했다. 그리고 빵의 맛과 종류를 개선했다. 카페는 매출 기준 마포구 상위 1%(2021년 7월~2022년 2월)가 됐다.
저자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계속 방법을 찾아간다. 하지만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치면 화를 내기보다 그대로 놓아주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유연하게 대처하다보면 삶에 틈이 생기고, 그 사이로 행복이나 귀한 사람이 들어올 수도 있다는 것.
정말 힘들고 불행한 순간이 찾아오면 ‘불행은 아무런 힘이 없다’고 생각하려 애쓴다. 불안이나 걱정은 불행이 좋아하는 먹이기에 이를 주지 않으면 불행을 더 키우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다. 고민이 있으면 이를 글로 써보는 것도 좋다고 말한다. 쓰면서 마음을 토해내고 고민의 실체와 크기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실제보다 상황을 더 크게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시작해보라고 당부한다. 저자는 1년 넘게 준비한 프로젝트를 보기 좋게 ‘말아먹은 날’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보며 결국 비는 그치고, 매일 비가 오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확신은 타인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기에 자기만의 생각과 방법으로 나아가라고 말한다. 잘 되어도, 잘 되지 않아도 겪어온 시간이 스스로를 지탱해줄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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