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손흥민, '후배' 양민혁 향한 뼈가 되는 조언 "EPL 쉽지 않아, 내 자리 쉽게 물려줄 생각없어"
[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EPL 쉽지 않아, 내 자리를 100% 물려줄 생각 없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10년째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캡틴' 손흥민(토트넘)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소중한 조언이었다. 14일(한국시각) 미국 매체 '맨 인 블레이저스'는 공식 유튜브를 통해 손흥민과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눈길이 끄는 대목이 있었다. 내년 1월 토트넘에 합류하는 양민혁에 관한 이야기였다.
지난 두어달간 양민혁의 향후 행선지는 국내 축구팬들의 뜨거운 관심사였다. 김 대표는 구단 유튜브에서 스무고개를 하듯, 수수께끼가 가득한 힌트를 남겼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빅클럽의 이름을 주욱 나열했다. 토트넘에 대해선 "관심이 있다" 정도로 표현했다. 올해 프로데뷔해 센세이셔널한 활약을 펼친 양민혁을 품은 팀은 '손흥민 소속팀' 토트넘이었다.
양민혁은 양 구단의 협의에 따라 잔여시즌 강원에서 활약한 뒤 내년 1월에 토트넘에 합류할 계획이다.
김병지 강원 대표이사는 양민혁의 이적료에 대해서 "비밀조항에 포함됐다"고 조심스러워하면서도 "토트넘 18세 레코드, K리그 유럽 직행 최고 이적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적시장 관계자는 양민혁의 이적료가 400만유로(약 60억원)를 훌쩍 뛰어넘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김 대표는 양민혁의 미래, 그리고 국가경쟁력을 위해 향후 아시안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조항을 삽입했다고 설명했다.
양민혁은 올 시즌 강원이 배출한 최고의 히트상품이다. 프로 입단 이전부터 아시아축구연맹(AFC) U-17 아시안컵과 국제축구연맹(FIFA) U-17 월드컵 등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큰 주목을 받았던 양민혁은 고등학생(강릉제일고) 2학년 때인 지난해 12월29일 강원과 준프로 계약을 맺고, 올해 프로 무대에 입성했다. 이어 프로무대에서 곧바로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했다. 1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전부터 선발로 출전해 구단 역대 최연소 출전기록을 세웠고, 도움으로 첫 공격포인트까지 기록했다. 이어 2라운드 광주FC전에는 경기 시작 1분만에 골을 넣어 K리그1 역대 최연소 득점 기록을 세웠다.
현재까지 양민혁은 K리그1 26경기에 나와 8골-5도움을 기록 중이다. 지난 6월 양민혁은 K리그1 사상 최초로 고등학생 신분으로 프로 계약을 맺은 선수가 됐다.
양민혁은 이미 토트넘 팬들에게 첫 선을 보였다. 양민혁은 지난달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토트넘과의 친선경기에 팀 K리그 일원으로 참가했다. 경기가 0-0으로 팽팽하던 전반 11분이었다. 이승우가 볼을 가로채 양민혁에게 건넸다. 양민혁은 특유의 스피드를 앞세워 토트넘의 측면을 흔들었다. 이후 이승우에게 다시 볼을 건넸다. 다만, 이승우의 슈팅은 상대 골대를 빗나갔다.
양민혁은 전반 21분 '절친' 윤도영과의 콤비플레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양민혁은 중원에서 볼을 빼앗아 윤도영에게 롱패스를 건넸다. 중원에서 한 차례 턴을 시도해 로얄을 따돌렸다. 그는 1분 뒤에는 이동경의 패스를 받아 슈팅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경기를 위해 급조된 팀이었던 탓에 선수들 사이의 호흡이 맞지 않았다. 잔실수가 있었고, 몸싸움에서도 다소 주춤한 모습을 보였다. 기대했던 득점포 또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잠재력만큼은 충분히 보여줬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양민혁에 대한 평가는 유보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우리의 경기다. 상대 선수들을 관심갖고 지켜보지 않았다. 우리 선수들에게 집중했다. 양민혁은 K리그에선 좋은 활약을 펼쳤다. 후반기에도 지속적인 활약을 펼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 소속팀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합류한 후 시간이 많을 것이다. 현 소속팀에서 더 좋은 마무리를 하고 합류하는 것이 굉장히 좋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양민혁은 '손(Son)의 아들(Son)'로 불리며 많인 기대를 받고 있다. 손흥민은 현실적인 부분을 강조했다. 그는 '양민혁에게 북런던에서의 삶과 문화 등에 대해 조언할 생각이냐'는 질문에 "힘들 거라는 걸 얘기해주고 싶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EPL은 전혀 쉽지 않다. 최고의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언어, 문화, 피지컬, 인성,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는 것 등 모든 게 완벽히 준비돼야 한다"고 답했다.
손흥민은 EPL이 전쟁이라는 부분을 강조했다. 손흥민은 "겁주려는 건 아니다. 양민혁에게 도움이 될 현실적인 이야기"라며 "K리그에서 잘한다고 느끼겠지만, 여기서는 (양민혁과 같은) 어린 선수들이 매일 같이 기회를 잡고 싶어 한다. 그들이 서로 포지션을 차지하려 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양민혁이 그 세대에서 최고의 선수로 거듭나도록 돕겠지만, 내 자리를 100% 물려줄 생각은 없다. 그대로 계승하게 두진 않을 것"이라고 미소를 지었다.
손흥민은 의심할 여지없는 토트넘 최고의 선수다. 2015년 여름 레버쿠젠을 떠나 토트넘 유니폼을 입은 손흥민은 첫 해 다소 부진했지만, 이후 매 시즌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하는 등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2021~2022시즌에는 23골을 넣으며 아시아 최초의 EPL 득점왕에 올랐다. 페널티킥 득점 하나 없는 순도 100% 득점왕이었다.
손흥민은 지난 시즌에도 맹활약을 펼쳤다. 17골-10도움 고지를 밟은 그는 10(골)-10(도움)에 성공했다. 2019~2020시즌 아시아 선수 최초로 EPL 10-10(11골-10도움)을 달성했던 손흥민은 2020~2021시즌(17골-10도움)에 이어 세번째로 10-10에 이름을 올렸다. 손흥민은 명실상부한 EPL 레전드 반열에 올랐다. 디디에 드록바, 프랭크 램파드, 에릭 칸토나, 웨인 루니, 모하메드 살라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통계 전문 업체 스쿼카는 '역대 EPL 무대에서 세 차례 이상 10골-10도움을 기록한 선수는 손흥민 포함, 6명뿐'이라며 '쏘니(손흥민)가 레전드의 리스트에 올랐다'고 극찬했다. 루니가 가장 많은 5번의 10-10을 기록했고, 칸토나와 램파드가 4회로 그 뒤를 이었다. 드록바와 살라는 총 3차례 기록했다.
그 어느 때 보다 변수가 많았던 시즌이었다. 셀틱에서 성공시대를 열었다고 하나 빅리그 경험이 일천한, 호주 출신의 엔제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새롭게 토트넘 지휘봉을 잡았다. 여기에 매시즌 20골 이상을 책임졌던 '에이스' 해리 케인마저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났다.
새 시대를 연 토트넘의 중심은 손흥민이었다. 대대적인 리빌딩에 나선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기존 주장단이었던 위고 요리스, 에릭 다이어 등을 정리하고, 새 리더를 찾았다. 고민은 없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손흥민에게 주장 완장을 줬다. 손흥민은 2012~2013시즌 퀸스파크레인저스(QPR)에서 주장 완장을 찼던 박지성 전북 현대 테크니컬 디렉터에 이어 역대 두번째 한국인 EPL 주장이 됐다. 손흥민은 온화한 성품과 책임감으로 토트넘을 바꿔나갔다. 자기보다 동료를 챙기고, 팬들을 우선시 하는 손흥민의 리더십은 영국 내에서도 화제가 될 정도였다.
해결사 역시 손흥민이었다. 히샬리송의 부진으로 최전방이 약해지자,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손톱' 카드를 꺼냈다. 스트라이커로 나선 첫 경기였던 9월 번리전부터 해트트릭을 폭발시킨 손흥민은 득점왕을 차지했던 2021~2022시즌 이후 최고의 페이스를 보이며, 케인의 공백을 완벽히 메웠다. 12골의 기대득점을 훌쩍 뛰어넘는 17골을 기록했다. 손흥민은 득점력 뿐만 아니라 축구도사 다운 면모를 보였다. 손흥민은 올 시즌 경기당 2개의 키패스를 기록하며, 전문 플레이메이커 못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빅찬스 생성만 20개였다. 동료들의 미스로 10도움 밖에 하지 못한게 아쉬울 정도였다.
아시안컵 출전 이후 손 부상 등이 겹치며 페이스가 다소 떨어진 모습이었지만, 올 시즌 토트넘 최고의 선수로 손색이 없는 활약을 펼쳤다. 손흥민은 후스코어드닷컴 기준 시즌 평점 7.30점을 기록했다. 토트넘에서 가장 높았고, EPL 전체 선수 중 12번째였다. 득점왕 시즌(7.52점)에 이어 커리어 통산 두번째로 높은 평점이었다. 손흥민은 10-10 달성을 통해 방점을 찍었다.
양민혁은 이런 손흥민의 존재가 토트넘행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손흥민 역시 양민혁을 돕겠다는 뜻을 전했다. 하지만 이후는 자신의 몫이다. 손흥민이 이야기했듯 EPL은 쉽지 않은 무대다. 자신이 이겨내는 수 밖에 없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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