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단호박이 늙지 않은 '신비의 창고'···석 달 지나도 달콤하고, 부드러웠다[New & Good]

박준석 2024. 8. 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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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첨단저장고 후레쉬센터 가보니
기상이변에 단호박 생산 들쭉날쭉
장마 전 단호박 농가서 대량 매입
산소 농도 낮춰 CA저장고에 보관
노화 억제해 10월까지 판매 가능
작황 '최악' 작년보다 가격 25%↓
7월 24일 경기 이천시 이마트 후레쉬센터 내 단호박이 저장돼 있는 CA저장고 내부 모습. 이천=박준석 기자
'안티에이징(노화 방지)' 기술이 적용됐다고 할 수 있죠.

지난달 24일 경기 이천시 이마트 후레쉬센터. 이마트 관계자가 전남 지역에서 한 달 전쯤 수확한 단호박 800톤(t)이 저장돼 있는 창고를 가리키며 대뜸 이렇게 말했다.

배경은 이랬다. 이곳에 저장된 단호박은 침수 피해를 줄이려고 장마철에 앞서 조기 수확한 물량이었다. 국내산이 자취를 감추는 10월까지 이마트 각 점포에 공급될 터였다. 길게는 석 달 동안 선도를 유지하며 보관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문제는 껍질이 두꺼운 단호박은 생김새와 달리 금방 상하는 채소라는 점이다. 단호박은 트럭에서도, 창고에서도 계속 호흡하며 하루하루 늙어가고 있었다. 그만큼 선도는 떨어졌다. 이마트가 단호박을 나이 들지 않게 하기 위한 '항노화'에 나선 배경이었다.

단호박. 게티이미지뱅크

노화 방지의 핵심은 첨단 저장 기술인 CA(Controlled Atmosphere·기체 제어) 기법. 이는 일반 대기 중 21%를 차지하는 산소 비중을 2~3%대까지 낮추고 이산화탄소 농도를 높여 농작물의 호흡을 억제하는 기술이다. 단호박이 호흡을 적게 하도록 해 신진대사량을 줄이고 노화도 늦추는 방식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단호박은 고온 저습한 환경을 좋아한다. 지금처럼 무덥고 습한 날씨에서는 곰팡이나 세균이 번식해 금방 썩는다. 이에 이마트는 2년 넘는 시간 동안 다양한 실험을 거쳐 단호박 부패를 막는 최적의 온·습도 조건까지 찾아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마트는 6월 말 1,000t의 단호박을 CA 저장고에 넣었다. 미니 단호박 110만 개, 일반 단호박 50만 개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다. 7월부터 이마트 각 점포에서 고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폭염·폭우 등 이상 기후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저렴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단호박을 내놓을 수 있는 유통 체계가 구축된 셈이다. 여기에 최근 단호박이 건강식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이마트의 단호박 매출은 고공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매년 장마철만 되면 단호박에 '혼쭐'

경기 이천시에 있는 이마트 후레쉬센터 전경. 이마트 제공

이마트가 단호박 실험에 착수한 시점은 2년 전쯤. 기후변화 영향이 컸다. 단호박은 주로 7~9월에 수확한다. 그런데 매년 여름 긴 장마와 기록적 폭염이 계속되며 작황이 출렁이는 현상이 반복됐다. 대형마트 1위인 이마트조차도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농가나 도매시장에서 단호박을 샀던 터라 가격 변동에도 그대로 노출됐다. 가격도 비싸고, 점포 메인 매대에 배치할 물량도 없으니 매출이 좋을 리 없었다. 장마 피해가 적은 초여름에 단호박을 사서 보관하는 식으로 유통 구조를 뜯어고치는 수밖에 없었다.

실험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조기 수확한 단호박을 열처리 없이 바로 저장하는 게 맞는지, 온·습도는 어느 수준으로 맞출지 선행 연구가 이뤄진 게 없었다. 최적의 온·습도를 발견해도 개별 단호박마다 선호하는 환경이 달라 일부가 썩는 일도 있었다. 이때 썩은 단호박을 바로 빼내지 않으면 부패가 저장고 전체로 빠르게 번져 나갔다. 저장고와 외부 온도 차가 너무 커 출하 때 결로가 생겨 단호박이 썩는 일도 있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올해 처음 1,000t 규모의 물량을 장기 저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준 후레쉬센터 상품팀장은 “여름철 이마트 점포에서 판매하는 물량의 80~90%를 후레쉬센터에서 책임지게 됐다”고 했다.


두둑한 물량서 나오는 여유? '1+1' 행사하는 이마트

서울 이마트 한 점포에서 고객이 단호박을 살펴보고 있다. 이마트 제공

성과는 기대 이상이다. 올해 여름 이마트 단호박 가격은 2,980원. 장마 피해가 컸던 지난해 여름(3,980~4,280원)보다 30% 저렴한 가격이다. 이달 2~4일에는 2,980원에 '1+1' 행사도 펼쳤다. 과거 도매시장에서 시가(市價)에 단호박을 사오는 방식이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최근 일주일(1~7일)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거래된 '단호박 10kg 상(上)품' 도매가는 평균 1만6,378원으로, 최악의 작황이었던 지난해 같은 기간(1만7,132원)과 비슷하다.

소비자 반응은 폭발적이다. 1~7일 단호박 매출은 1년 전보다 무려 167% 상승했다. 불과 일주일 사이 20만 개 가까운 단호박이 팔렸다고 한다. 이마트 관계자는 "단호박은 연어처럼 웰빙 트렌드에 맞춰 매년 매출이 꾸준히 오르는 품목"이라며 "단호박을 더 오래, 신선하게 보관하는 실험을 계속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후레쉬센터란?

이마트가 1,000억 원을 투자해 2012년 설립한 후레쉬센터는 이마트 과일 및 채소 35%가 거쳐가는 대규모 신선 저장고다. 연면적 4만6,535㎡(약 4만4,077평)로 축구장 7개 넓이다. 사과, 배 등 과일과 고구마, 감자, 마늘, 대파 등 채소를 수확철에 대량 매입해 최대 1년 동안 판매한다.

이천=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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