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조의 아트홀릭] "나의 그림은 추사 김정희에 뿌리를 두고 있다"
■ 글: 정승조 아나운서 ■
"추사 김정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신의 작업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 충북 청주 출신의 한 화백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 추상미술의 대표 작가 '故 윤형근'입니다.
그는 파란만장한 삶을 독특한 예술 세계로 표현한 화백이지요.
'윤형근 덕후', '윤형근 컬렉터'라 불리는 BTS의 RM이 사랑하는 작가이기도 하고요.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환기 화백의 제자이자 사위라는 건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그를 조망하는 특별한 전시가 청주시립미술관에서 열렸는데요.
'정승조의 아트홀릭'은 '정상수 청주시립미술관 학예팀장'에게 기획전 '윤형근 담담하게'에 관해 물어봤습니다.
▮ 한국 추상미술의 대표 작가인 故 윤형근 작가의 기획전 '윤형근_담담하게'에 대한 관람객들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그는 어떤 화백입니까?
윤형근 화백은 1928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참혹했던 시기에 청년기를 보냈습니다. 1950년 6·25전쟁 당시 학창 시절 시위 전력으로 '보도연맹'에 끌려가 학살 위기를 모면했고, 1956년엔 전쟁 중 피난 가지 않고 서울에서 부역했다는 이유로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간 복역을 했습니다.
숙명여고 미술 교사로 재직하던 1973년에는 중앙정보부장의 지원을 받아 부정 입학을 한 학생의 비리를 따져 물었다가 ‘반공법 위반’으로 잡혀가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윤 화백은 이런 난관을 극복하면서 극도의 분노와 울분을 경험하고 1973년 만 45세가 돼서야 본격적으로 작품을 시작했습니다. 한마디로 파란만장한 삶을 담담하게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윤형근이라 하면 김환기 화백의 사위이고, BTS의 RM도 그의 열혈 팬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시에서는 그의 어떤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나요.
어찌 보면 윤형근 화백은 수식어가 많은 작가입니다. 하지만 그 수식어 대부분은 일반시민들이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작가 또한 그 수식어보단 작가 본연의 작품 세계를 느끼길 원할 것입니다.
이번 전시는 한국 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친 지역 출신의 대표 작가 故 윤형근(1928-2007)의 회고전인데요. 청주·청원 통합 10주년을 기념하고 청주에서 처음 열리는 윤형근 전시입니다. 1960년대 초기작품부터 2000년대 대표 작품, 국내에서 미공개된 작품 등 총 24점의 작품이 전시되었습니다. 또한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들을 통해 윤형근의 예술 세계와 삶을 깊이 있게 조망해 볼 수 있습니다.
▮ 작품을 보면 작가 특유의 예술 세계가 느껴지는데요. 윤형근 화백도 그렇습니다. 자신만의 화법을 어떤 방식으로 구축해 왔을까요.
대부분 서양의 유화 작품은 흰색 안료인 젯소(gesso)를 바른 캔버스 위에 물감을 덧칠하여 두터운 느낌의 색채나 질감이 표현합니다. 그러나 윤형근 작가의 작품은 동양화에서 쓰이는 발묵과 선염 효과를 활용해 한국적인 회화 기법을 선보였습니다.
이렇듯 윤형근 만의 고유한 방식과 작품 세계를 관철하고 있으나 시기에 따라 미묘한 특징이 보입니다. 특히 윤형근의 파리 체류 시기는 그가 다룬 소재 중 한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느낄 수 있던 때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1970년대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받은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에서 번진 기법을 접하고 그것에 영향을 받았다고 직접 말한 바 있습니다. 1970년대부터 2007년까지 나타나는 번짐 기법 또한 김환기 작가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특징적인 것입니다.
여기서 김환기 화백은 조형의 기본 요소 중 점을 활용했다면, 윤형근 작가는 선과 면을 적용함을 알 수 있습니다.
김환기 화백은 그림을 시작하는 가장 기본인 조형 요소인 점을 통해서 밤하늘의 별과 혹은 우주의 행성 속에 나를 찾기 위해 표현했다면, 윤형근 화백은 정치, 사회 변혁기를 몸소 겪으며 파생된 고민을 선과 면을 통해 자기의 현 내면을 담아낸 것 같습니다.
▮ 작품 속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사실 저는 이 작품을 보자마자 故 김환기 화백이 떠올랐습니다.
먼저 김환기 화백은 특히 한국의 전통 미술과 자연을 사랑했습니다. 백자에 ‘달항아리’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도 바로 김환기 화백 본인입니다. 한국의 전통적 소재에 대한 사랑은 1956년 파리로 건너간 뒤 더욱 깊어졌습니다.
말씀하신 작품은 1966년작으로 제목은 미상입니다. 크기가 가로65.2cm, 세로91cm 대략 30호 풍경(P) 사이즈입니다. 이 작품은 이번 전시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품입니다.
1960년은 윤형근 작가가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한 시기인데요. 작가의 예술적 탐구와 실험의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1960년대는 밝은 색채로 감수성을 자극하는 이미지 화풍에 느낌의 회화를 추구했고요. 푸른 계열의 바탕칠부터 반복적인 색 점에 의한 장식적인 화면 구성은 스승이자 장인인 김환기 화백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입니다.
▮ 그런가 하면 윤형근 작가에게 '천지문(天地門)'의 등장은 매우 중요한 변곡점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윤형근 화백은 "1973년부터 내 그림이 확 달라진 것은 서대문 교도소에서 나와 홧김에 한 것이 계기였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색채가 싫어졌고 화려한 것이 싫어졌다는 그는 "독기를 뿜어낸 것"이라고 설명했는데요. 미술평론가 오광수(뮤지엄 산 관장)씨는 "그의 언급대로 독기를 뿜어낸 것이 변혁을 이끌었다. 우직할 정도로 하나의 방향을 고수하는 기질이 그의 독자적인 색면을 만들었다"라고 말했습니다.
▮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달라진 겁니까.
이후 그는 스스로 ‘천지문(天地門)’이라고 명명했던 자신만의 작품 세계에 곧바로 진입했습니다.
이때 작품들은 면포나 마포 그대로의 표면 위에 하늘을 뜻하는 청색(Blue)과 땅의 색인 암갈색(Umber)을 섞어 만든 ‘오묘한 검정색’을 큰 붓으로 푹 찍어 내려그은 것들인데요. 제작 방법에서부터 그 결과까지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한 이 작품들은 오랜 시간 세파를 견뎌낸 고목(古木), 한국 전통 가옥의 서까래,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흙의 정취를 느끼게 합니다.
작가는 이렇게 ‘무심(無心)한’ 작품들을 통해 한국 전통 미학이 추구했던 수수하고 겸손하고 푸근하고 듬직한 ‘미덕’을 세계적으로 통용될 만한 현대적 회화 언어로 풀어내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1980년대 이후 윤형근의 작품은 다시 한번 더 변화가 오는데 파리에서의 작품들은 그전 작품들과 비교해 한층 심플하고 간결해졌습니다.
그러나 청년기의 아픈 상처를 겪은 그는 1990년까지 색채를 없애고, 강한 번짐 효과와 여백을 활용한 특유의 천지문(天地門) 양식의 작품들이 등장합니다. 땅과 하늘이 만나 검은색을 이루며 새로운 문을 여는 그림이 바로 그것입니다.
윤형근 화백은 이러한 자신의 패턴을 천지문으로 명명했고 천지문(天地門)은 하늘, 땅, 문을 의미하는 작가의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하늘을 뜻하는 울트라 마린 블루의 '청색', 흙의 색인 번트엠버의 '다색'을 섞은 '청다색'을 린넨, 캔버스, 한지 등의 재료 위에 큰 붓으로 그어 내려 색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한 것입니다.
격동의 시기를 다른 화가들이 겪지 않았던 고통을 작가는 모두 겪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런 현실의 울분을 쏟아버린 듯 검은 기둥의 그림은 마침내 윤형근 작가의 심볼로 브랜드화되었습니다.
▮ 파란만장한 삶을 예술로 담담하게 승화시켰군요. 5.18 광주 민주화 항쟁 소식을 접하고 작업한 작품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윤형근 작가의 작품은 대부분 직접 짠 캔버스 틀 위에 거친 마포 혹은 면포의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암갈색과 푸른색의 유채 물감을 묽게 만든 후, 여러 번의 덧칠을 반복하여 제작합니다.
여러 번의 덧칠을 반복함으로써 물감이 스며들어 겹쳐지면서 점차적으로 순검정에 가까운 색이 화면에 표현되고, 가장자리에는 번진 효과가 그대로 드러나게 됩니다. 재료나 과정은 매우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그 결과물은 매우 깊은 깊이감과 강한 시각적 인상을 전달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다색 연작 중에서도 매우 이례적으로 묽은 물감이 많이 먹은 붓을 캔버스 위에 넓게 바른 후 캔버스째 들어 올려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물감의 흔적을 그대로 살린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화면은 비애에 젖은 눈물짓는 듯 절망적이고 격정적인 감정이 보여집니다.
이 작품의 배경은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으로 당시 국내에서 언론이 차단되어 거의 소식을 듣지 못했지만, 작가는 해외로 나갔던 방송을 통해 진실을 알게 됩니다. 이를 한국에서 전해 들은 작가는 스스로 정부의 부정한 압박을 견뎠던 인물로서 광주항쟁의 비극적 현실을 화면 속에 담아낸 작품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설명 내용 참조)
▮ 전시가 관람객과 만난 지 한 달이 넘었고, 학예팀장께선 윤형근 화백의 어떤 작품에 유독 더 눈길이 가십니까.
전시소개자로서 관심을 두는 작품을 말씀드리자면, 1975년 청다색으로 윤형근 작가가 본격적으로 전업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 몇 가지 실험적인 초기작품들이 나오게 됩니다. 그중 면포도 마포도 아닌, 그보다 훨씬 더 거치 마대 위에다 검게 타들어 간 기둥을 작업한 연작 중에 한 점인데요.
작가는 극도의 분노로 인해 화가 나서 검게 내리그은 형상이라고 말했지만, 이 작품을 바라보면 왠지 모를 편안함과 따뜻함이 느껴져서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은 미적 감흥을 선사합니다.
유독 다른 작품 보다 거치 마대포를 사용한 것이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마대포는 미군 사격장에서 표지를 고정했던 재료였다고 합니다. 이 점에서 저는 고국에 대한 상황과 현실을 그 마대포 위에 검게 타들어 간 기둥으로 표현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설명 내용 참조)
▮ 마지막으로 아트홀릭 독자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윤형근 화백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피상적으로 표피가 알록달록하고 빛깔이 곱고 뭐 이런 게
아름답다고 난 생각 안 해.
진리에 사는 것, 진리에 생명을 거는 거. 그게 인간이 가장 아름다운 거예요.
진실한 사람은 착하게 돼 있고, 진실하고 착한 사람은 내면 세계가 아름답게 되어있어..
그것뿐이에요.
'그림만 잘 그리면 됐지 그 사람 사생활은 어찌 돼도 좋다' 이렇게 볼지 몰라도
인간이 바로 서야.. 작품이란 그 사람의 흔적이니까 분신이니까 그대로 반영되는 거예요.
한 두장은 거짓말해서 이렇게 만들 수 있어도.. 쭉 계속하다 보면 그 사람의 품위가 나타나는 거예요.
가장 높은 품격을 가진 것이 가장 좋은 작품이 아닌가.. 난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윤형근 선생님은 생전에 본인의 화풍이 추사 김정희의 뿌리를 두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작품을 보다 보면 옛 선비 정신이 느껴집니다. 담담하게.
전시가 9월 29일까지입니다.
지역 미술관에서 처음 개최하는 만큼 품격 높은 작품을 꼭 관람해 보시길 바랍니다.
참조
'ART STORY' 청다색(靑茶色)의 울림,
윤형근 : NO.1 문화웹진 채널예스
국립현대미술관 윤형근 소장자료 내용
(사진 제공: 청주시립미술관)
■ 청주시립미술관 기획전 '윤형근 담담하게'
- 전시기간: ~9. 29 (월요일 휴관)
- 전시장소: 청주시립미술관
- 전시시간: 10:00~19:00
#충청 #충북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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