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증류하고 남은 것에 대하여 [기자의 추천 책]

문상현 기자 2024. 8. 15.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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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미술관 같은 작품이다.

증류 과정에 빗대 인간의 삶과 욕망을 증류하고 남은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군가에게는 현실에서 진실을 증류한 예술의 정수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꿈이자 갈등의 씨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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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
이혁진 지음
민음사 펴냄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못 마신다. 한 모금만 마셔도 얼굴이 새빨개지고 쿵쾅쿵쾅 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로 심장이 빠르게 뛰어서 괴롭다. 그 덕분에 즐겨본 적도, 취해본 적도 없다.

〈광인〉은 작품 전체에서 위스키 향이 뿜어져 나온다. 위스키와 예술이 주요 모티프다. 읽다 보면 멀리하는 술을 기꺼이 마시고 싶게 한다. 때로는 화려하고 때로는 고즈넉한 위스키의 맛과 향, 혀끝에 남는 여운에 대한 간결하고 명확한 묘사는 몰랐지만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착각에도 빠뜨린다. 위스키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분명 침이 고일 것 같다.

작품 곳곳에서 챗 베이커, 프랭크 시내트라, 빌 에번스의 재즈 선율이 흐른다. 괴로운 알코올의 맛과 향 대신 좋은 기억을 선물해준 사람들과 함께한 그날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분명 입에도 대지 않았지만 작품을 읽는 내내 위스키를 마셨고, 즐겼다. 미술관 같은 작품이다.

위스키 제조의 핵심은 증류 과정이다. 독특한 맛과 향이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정제하고 분리하는 증류 과정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이다. 증류 과정에 빗대 인간의 삶과 욕망을 증류하고 남은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군가에게는 현실에서 진실을 증류한 예술의 정수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꿈이자 갈등의 씨앗이다.

로맨스와 스릴러, 심리물이 고루 섞여 있다. 특히 사랑의 여러 색깔과 형태가 섬세하고 또 낯설게 그려진다. 사랑을 앞에 둔 주인공의 광기와 진동은 때로 서늘하다. 인간이 사랑을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주인공을 통해 비춰보는 것도 포인트다.

작품은 675쪽이다. 글자가 가득한 이른바 ‘벽돌책’이다. ‘쇼츠’ 시대에 부담스러운 분량 같지만 흡입력이 있어서 짧게 느껴진다. 주인공들이 말이 많다. 다만 그들의 이야기 속에 담긴 통찰과 철학, 해박한 지식을 보는 맛이 있다.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절정으로 치닫는다. 시작과 너무 다른 흐름이나, 준비되지 않은 채 맞이하는 절정, 그리고 결말은 위스키의 끝맛 같은 긴 여운을 남긴다.

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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