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뉴라이트' 반박 못하고 '역사논쟁' 침묵하는 與

CBS노컷뉴스 황영찬 기자 2024. 8. 15.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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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장까지 친일 세력" 野 광복절 기념식 불참 선언
與, 친일 논란 반박 대신 "국가기념일 반쪽 안 돼" 비껴가기
'건국절', 보수 내 입장 차…옹호도 비판도 못하는 與 딜레마
연이은 친일 인사 논란, 섣부른 입장 내면 '역풍' 우려
"여당까지 일일이 입장 밝히며 프레임 휘말릴 필요 없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두고 윤석열 정부를 향해 '친일 프레임'을 씌우며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에 대한 국민의힘의 공식 대응은 김 관장에 대한 적극적인 옹호도 반대도 아니다. 뉴라이트·건국절 논란, 연이은 친일 인사 논란 등을 둘러싼 논쟁에 직접 뛰어들기보다는 야권과 광복회의 기념식 불참으로 인한 광복절 의미 퇴색을 지적하며 비껴가는 양상이다.

이는 김 관장 논란을 옹호하자니 야권의 프레임에서 부담스러운 여론전을 준비해야 하고, 김 관장 비판에 동조하자니 '친일 몰이'에 불편함을 느끼는 보수층을 달래야 하는 딜레마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과 차별화를 주저하지 않는 한동훈 대표가 "여러가지 찬반 의견이 있을 수 있다"는 원론적 입장에 머무는 것도 이러한 상황이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독립기념관도 친일" 野 총공세 "인사는 고유 권한" 與는 원론적 대응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8.15광복 79년, 윤석열 정권 굴욕외교 규탄! 국회-시민사회1000인 선언 기자회견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사회민주당은 14일 오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시민사회와 함께 '광복 79년 윤석열 정권 굴욕외교 규탄대회'를 진행하고,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를 요구했다.

민주당 박찬대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윤석열 정권은 임기 내내 집요하게 친일 행적으로 일관했다"며 "독립기념관은 국민의 피 같은 성금으로 문을 연 곳인데, 독립기념관장까지 친일 세력이 차지했다"고 질타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도 "이종찬 광복회장 말씀처럼 '밀정'이 용산을 장악하고 있다"며 "밀정을 임명하는 자가 바로 왕초 밀정"이라고 지적했다.

참석자들은 공동 선언문에서 "신임 독립기념관 관장의 취임 첫 일성이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사들 가운데 억울하게 친일로 매도되는 분이 없도록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했다니, 기가 막힌 일"이라며 "독립기념관의 존재 이유와 설립 취지를 생각한다면 이런 후안무치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탄하기도 했다.

이날 백범 김구 선생의 증손자인 김용만 의원 등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독립기념관을 직접 방문해 김 관장 임명 과정을 공개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또 야권은 정부 주도 광복절 경축식에 불참하고 광복회가 주최하는 별도 행사에 참석하겠다고 밝히는 등 '친일' 논란을 두고 전방위 공세에 나서는 상황이다.

반면, 여당인 국민의힘의 공식 입장은 김 관장을 둘러싼 논란을 적극 옹호하지도 공감하지도 않는 중립적 입장에 가깝다. 곽규택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독립기념관장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며 "독립기념관 내부 임원추천위원회에서 적법한 절차를 거쳐 임명됐다"고 밝혔다.

대신, 국민의힘은 뉴라이트 의혹과 현 정부의 건국절 추진 의사를 문제 삼으며 광복절 행사 불참을 선언한 이종찬 광복회장의 언행을 문제 삼고 있다. 곽 수석대변인은 "광복회장이 현재 정부가 추진하지도 않는 '건국절 제정'에 대해 철회를 요구하고,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인사 문제에 대해 의견 제시를 넘어 그 뜻을 관철하려는 것은 과도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또 곽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의 '친일 프레임'에 대해서도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광복절의 의미를 퇴색시킬 뿐인 국민 갈라치기"라고 하는 등 역사 논쟁에서 비껴가는 모습이다. 그러면서 "광복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한다면, 국가기념일까지 반쪽 내선 안 된다"며 "광복회와 야당의 대승적 결단을 촉구한다"는 원론적 메시지에 집중했다.

보수 내에서도 '뉴라이트' 주장에 이견…중도 이반 우려도 

이러한 애매한 스탠스는 국민의힘 지지층 내 넓은 스펙트럼을 고려할 때,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 전문에 수록된 임시정부 법통을 수용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한 모든 선열을 제대로 기리는 것이 보수의 기본이라는 주장부터, 임시정부는 국가로서의 여건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법통을 부정해야 하고 1948년 8월 15일이 진정한 '건국절'이라는 주장까지 모두 보수 세력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당내 일부 인사가 임시정부 법통을 두고 "1919년에 건국이 됐으면 일제강점기가 딱 9년이다. (…) 이종찬 회장이야말로 일본 극우의 기쁨조 역할을 하고 있다(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 14일 YTN 방송)"고 논란에 참전하고 있지만, 보수 진영 내에서도 이견이 존재하는 주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건국절을 더 적극 주장해 달라는 지지층도 있지만, 건국절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지지층도 많다"며 "윤 대통령의 말처럼 먹고살기 힘든 국민들에 도움도 안 되는 주제인데, 판을 키우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언급했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류영주 기자


여기에 김 관장의 뉴라이트 논란은 대표 사례일 뿐, 지난달 30일 임명된 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이 식민지 근대화론에 입각한 역사 서술로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켰던 책 '반일 종족주의'의 공저자이고,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내정자도 "상해임시정부는 건국행위였다고는 할 수 있어도 그 자체가 건국의 완성인 건국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취지로 발언한 과거 영상이 공개되며 논란을 빚었다.

이처럼 친일 인사 논란의 빌미도 커진 상황이기에, 당이 공식 참전하면서 사태를 키우는 것은 오히려 독(毒)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국민의힘 소속 한 의원은 "보수 내에서도 이견이 있는 극우적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이 연이어 발탁되는 것이 문제"라며 "섣부르게 옹호하려다가는 여론이 더 악화될 수 있기에 당은 손을 떼는 편이 맞아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나서고 있는 한동훈 대표에게 친일 논란에 대한 입장 표명은 또 다른 차별화 포인트가 될 수 있지만, 한 대표가 "여러가지 찬반 의견이 있을 수 있다"는 원론적 언급에 머무는 것도 이러한 딜레마를 고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광복절 행사 자체에 "대통령실에서 건국절을 추진할 계획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기에 당까지 건국절에 대해 일일이 입장을 밝히면서 야당 프레임에 휘말릴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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