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 캡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논쟁하니’ 아홉번째 주제는 ‘안락사 캡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입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이른바 ‘안락사 캡슐’이 사상 처음 스위스에서 사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캡슐 내 산소를 질소로 바꿔 저산소증으로 사망에 이르게 방식으로 비용도 매우 저렴합니다. 안락사 캡슐은 조력 사망에 대한 오랜 논쟁에 다시 불을 붙였습니다. 행복하게 삶을 마감할 수 있다는 찬성론과 인위적으로 생명을 끊는 것은 사회적 타살이라는 반대론이 팽팽합니다. 찬반 논쟁을 게재합니다.
이래서 ‘찬성’ 입니다
“말기환자들 존엄한 죽음 선택할 권리”
스위스가 안락사 단체인 더 라스트 리조트의 안락사캡슐 ‘사르코(Sarco)’의 첫 사용을 공식화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우리 사회에 다시 한번 안락사에 관한 이슈를 중대한 논쟁거리로 부각시키고 있다. 자발적 의사에만 한해 질소투여 방식으로 생의 마감을 선택케하는 이 기구의 사용료가 불과 18스위스프랑(약 2만8천원)이라는 점은 특히 논란을 낳고 있다. 이런 지엽적인 내용이 자극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안락사 찬반에 대한 지점을 다시 한번 정확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022년에 이어 이번 2024년 국회에서 일명 ‘조력존엄사 법’을 다시 한번 발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는 안락사 논쟁을 다시 가열시키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6년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 일명 ‘웰다잉법’이 국회를 통과해 2018년도부터 시행 중이다. ‘웰다잉법’은 죽음을 앞둔 환자가 자신이 더 살기 위한 치료를 계속할지 또는 중단할지에 관해 환자 스스로 또는 가족의 동의에 의해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법을 의미한다. 이는 엄격한 기준 하에서 임종환자에 한해 연명치료 연장 여부를 선택하게 함으로써, 안락사 영역에서는 가장 소극적인 단계의 법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소극적인 형태의 안락사 관련법의 단계를 지나, 죽음에 임박한 말기환자에 대해 약물투약이나 캡슐 이용에 의한 자발적인 조력존엄사망을 허용케 하는 적극적 안락사의 필요성은 우리 사회에서도 더는 논쟁을 외면해선 안될 것이다.
‘조력존엄사법’에 대한 국회 재발의 시기여서인지 미디어를 통해 등장하는 ‘안락사’에 관한 다양한 논쟁거리들은 더욱 눈길을 사로잡는다. 75살의 나이에 이르러 국가적으로 안락사를 권장하는 가상의 캠페인을 다룬 일본 영화 ‘플랜 75’, 네덜란드의 전 총리였던 판 아흐트 부부나 프랑스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의 안락사 소식들은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안락사와 관련된 고민들이다.
‘웰다잉법’ 뒤 적극적 존엄사 필요성 대두
미국 8개주·유럽 일부 ‘조력존엄사’ 허용
가족들이 겪는 간병 등 현실적 문제 넘어
고통에서 해방될 환자의 권리 논의 필요
실제로 안락사에 대한 논쟁들에 수많은 나라들이 취하고 있는 방식들은 눈여겨 볼 만 하다. 미국에서는 오리건 주와 버몬트 주를 비롯한 총 8개 주에서 엄격한 기준 하에 적극적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 독일 등이 소극적 안락사를 인정하고 있다. 또 네덜란드, 스위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 포르투갈 등 유럽국가들과 캐나다, 콜롬비아, 호주, 뉴질랜드 등 기타 지역들에서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인간생명의 존엄함은 환자의 가족들이 겪는 간병 부담이나 비용 지출과 같은 현실적 문제를 훨씬 넘어서는 가장 고귀한 가치임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세계 평균 기대수명이 73.4살로 계속 고령화가 가중되는 환경 속에서 ‘돌봄 복지’에 관한 정책을 꾸준히 고민하는 우리나라도 ‘조력존엄사’의 영역에 관한 각 나라의 정책을 눈여겨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말기 질환으로부터 오는 극도의 고통에서 스스로 해방되게끔 하는 결심, 단지 이를 윤리적 테두리로만 구속시키는 관점에서 분리해서 바라볼 수 있는 노력 또한 조심스럽지만 필요한 국면이다. 조력존엄사법 발의에 찬성한 국회위원들의 비율이 87%라는 정량적 수치가 아니어도 분명히 필요한 시대적 고민임에는 틀림없다.
2005년 아카데미상 4개 부문 수상작인 미국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는 조력사망에 대한 중요한 대목이 등장한다. 링 위에서 당한 큰 사고로 전신마비와 욕창으로 생사를 오가는 여자복서 매기의 운명을 놓고 그녀의 매니저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 연기)는 생명연장에 대한 의지를 스스로 중단한 매기의 선택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조력존엄사의 선택은 영화의 후반부를 숙연하게 만들었지만, 평온한 생의 마감에 대한 성숙된 해답으로서 영화의 존엄함을 배가시켰다.
조력존엄사를 받아들인 주인공 프랭키가 생전의 애제자 매기에게 선사했던 게일어(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쓰이는 켈트계 언어) 애칭을 풀이하며 영화는 차분히 마무리한다. “모쿠슈라, 나의 사랑, 나의 혈육이라는 의미야”.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싸우다 추한 모습으로 죽느니 편안하고 깨끗한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안락사, 사회의 성숙함으로 이 문제를 다시 바라보자.
이래서 ‘반대’ 입니다
“사회적 약자들 ‘생명 포기’ 내몰릴 위험”
권오성ㅣ서울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
안락사란 생명 유지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이나 동물을 고통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의도적 행위를 말한다. 국내에 ‘안락사 캡슐’로 알려진 ‘사르코’는 해외에선 대체로 ‘자살기구’나 ‘조력자살캡슐’로 소개된다. 장치를 발명한 니취케씨가 안락사 운동가이며 그가 장치에 붙인 이름이 돌널(석관)을 의미하는 ‘사르코파구스’에서 따왔다는 걸 감안하면 사르코는 ‘이미 죽은거나 다름 없는 사람’을 위한 것이니 안락사 캡슐로 통일시켜 불러도 무방하겠다.
그럼에도 이번 주제처럼 민감한 토론에서 용어 사용은 신중해야 한다. 안락, 존엄, 자살 등 가치중립적이지 않은 표현이 의제에 포함된다면 그 자체로 논쟁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타인의 안락과 존엄을 반대할 수 있겠나. 하물며 그가 영화 ‘밀리언달러베이비’ 속 비운의 복서 매기처럼 끔찍한 불행과 고통을 겪고 있다면, 내 가족이나 연인이라면, 본인이라면. 한편 ‘좋은 죽음’이라는 어원을 가진 안락사, 존엄사, 조력자살 등의 표현은 무분별하게 쓰이고 있으며 더러는 조력사망을 총칭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조력사망 허용의 범위로 논점을 한정하고 이를 다양한 차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법적-의료적 차원에선 조력사망의 판단과 행위에 개입한 이해관계자들의 법적 면책과 그 범위를 검토해야 한다. ‘김할머니 사건’의 판례는 연명치료 결정에 있어 의료진과 가족의 면책을 보장한 바 있으며 이는 ‘웰다잉법’ 등 법적 진전을 가져왔다. 필자 역시 양친을 여읜 경험을 통해 임종 단계의 연명치료 결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의료적 프로토콜 수립에 법적 면책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결국 법적 차원에선 국민적 공감대를 당국이 얼마나 신속, 적절하게 법제도에 반영하냐의 과제만 있을 뿐 논란의 여지는 딱히 없다.
노인·소수자에 배타적인 사회 분위기 속
포기 권하는 사회적 타살로 변질 가능성
조력사망은 법적·의료적 차원 국한해야
지금은 존엄한 죽음보다 존엄한 삶 시급
둘째, 윤리적 차원에서 조력사망은 조력 자체가 정당한지가 쟁점이 되는데 이 경우엔 소모적 논쟁을 경계해야 한다. 사형제도, 낙태, 자살, 동물권리 등 생명과 관련된 논쟁은 대체로 양쪽의 가치관을 변화, 성숙시키기보단 도리어 고착시킨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당위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 서로를 배척하거나 존중하기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생명은 인간만의 전유물도 아니고 정의하기도 모호할 뿐더러, 장차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의 융합은 이를 더욱 난처하게 만들 게 분명하다.
끝으로 사회적 차원의 논의는 국소적, 개별적, 경제학적인 것에서 구조적, 사회적, 정치경제학적인 것으로 관점을 이동시켜 조력사망의 합법화 혹은 유연화가 미칠 사회적 영향에 초점을 맞춘다. “플랜75가 오늘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노인 혐오범죄가 전국에서 이어지는 한편, 심각해지는 고령화 문제에 대처할 방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플랜75는 일본의 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묘수가 될 것입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플랜 75’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플랜75’란 75살 이상 고령자의 자발적 죽음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영화 후반 ‘플랜65’로 확대 시행되기에 이른다. 고령의 노인과 소수자들을 짐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그들에게 은근히 죽음을 권하는 가까운 미래의 풍경이다. 다소 극단적인 상상이지만 조력사망의 유연화가 지독한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는 데 악용될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경고를 담고 있는 것이다.
조력사망의 합법화가 ‘유연화’로 이어질 경우 이는 자칫 저소득자, 미성년자, 장애인, 정신질환자, 이주노동자, 초고령자 등 각종 사회적 약자들에게 ‘포기를 권하는’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조력사망의 허용 범위가 말기 혹은 임종단계의 환자로 제한되지 않고 느슨해지는 것은 우리 사회가 결코 용인해선 안된다. 조력사망은 철저히 법적-의료적 차원에 한해서만 지원해야 한다. 최근 생을 마감한 고다르 감독이나 전 네덜란드 총리 부부처럼 존엄한 삶을 살다 스스로 안락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죽도록 힘들게 살다가 선택지 없는 벼랑 앞에 선 이들도 있다. 누군가 “죽고 싶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살고 싶다”의 간절한 반어일 수 있다. 기괴하리만치 높은 자살률과 양극화 지표가 말해주는 바, 존엄한 죽음보다는 존엄한 삶이 우리에겐 더 긴급한 의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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