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지침 풀리니 우주 개발 길 열려…독일도 우리 정찰위성과 협력 요청 [2020s 스페이스 오페라]

구현모 2024. 8. 15.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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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과학硏 425사업팀 만나다
北 군사시설들 직접 보고 美와 공유
1호기 전력화 성공 후 韓 위상 강화
수년간 표류하던 軍 정찰위성 사업
2017년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돼
탄두 중량·사거리 ‘족쇄’ 풀리며 가속
‘스페이스X’와 일하며 많은 것 배워
불필요한 프로세스 줄여 속도 높여
해상도 높이고 부품 국산화율 제고
AI 활용 사진·영상 더 빠르게 판독
남은 3~5호기 성능 점차 진화할 것
전쟁 나면 위성이 공격대상 1순위
타국 위성 활용하는 우주동맹 필요
北 우주기술 멀어… 韓이 압도 가능
민·관·군 협력해 우주경쟁 선점해야
우주는 새로운 전장이다. 강대국들은 우주공간을 선점해 적국을 감시하고 거대 기업들도 패권을 다툰다. 우주를 과학이 아닌 안보의 관점에서도 봐야한다. 이 시리즈는 우주를 놓고 거대 세력이 벌이는 활극과 아픔을 딛고 날아오르고 있는 우리 군의 정찰위성 프로젝트의 뒷이야기를 연재한다.
 
지난 2023년 1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우주기지에서 우리 군의 정찰위성 1호기를 실은 스페이스X의 팰컨9이 발사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위성이 올라가니 독일 정부에서도 협력하자는 요청이 왔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정찰위성 사업을 총괄하는 김경근 단장은 우리 군에 감시정찰위성이 생기자 독일이나 폴란드 등 국가들로부터 정보협력 요청이 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경사궤도를 도는 정찰위성 2호기의 경우 한반도뿐만 아니라 여러 대륙을 지나게 되니 함께 활용하자는 제안이다. 김 단장은 “유럽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안보 불안으로 정보 교류에 대한 필요성이 커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군사위성 정보를 미국에 상당 부분 의존해오고 있던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다. 이전까진 미국으로부터 군사위성 사진 한 장 제때 받기도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우리 눈으로 북한 핵심시설을 감시할 수 있게 됐다.

10년 전부터 군이 감시정찰위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감시정찰위성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술이 고도화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가장 필요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미래 우주전쟁에서 승패를 가를 핵심 수단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ADD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위성 개발을 놓지 않았다. 세계일보는 군의 정찰위성 전력화를 앞두고 감시 정찰위성을 확보하는 ‘425사업’을 이끄는 김 단장과 나경수 팀장, 최현주 중령, 정재환 선임연구원, 김윤종 선임연구원을 만났다. 

지난 7월 18일 대전 유성구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우리 군의 정찰위성 사업인 ‘425사업’을 이끄는 연구원들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윤중 선임연구원, 정재한 선임연구원, 김경근 단장, 나경수 팀장, 최현주 중령.  대전=최상수 기자
◆아픔을 딛고 일어난 425사업

425사업은 합성개구레이더(SAR) 위성과 전자광학·적외선(EO/IR) 위성을 올리겠다고 해서 ‘SAR, EO(사, 이오)’의 음을 따 ‘425’란 이름이 붙었다.

사업은 오랜 기간 표류했다. 2013년 합동참모본부에서 정찰위성에 대한 장기소요를 결정한 후 ADD 내에 조직이 꾸려졌지만 몇 년간 사업이 승인이 나지 않았다. 개발과 운영권을 두고 정부기관들 간 주도권 다툼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연구원 출신인 나 팀장은 2013년 ADD에 합류했다. 당시 많은 사람이 정찰위성 개발에 대한 부푼 꿈을 안고 뛰어들었고,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이나 미 항공우주국(NASA)을 그만둔 이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연구원들은 앞으로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 팀장은 “위에서 사업이 승인이 나질 않으니 예산을 받을 수 없었다”며 “출장비도 나오지 않았고 비품을 사기에도 빠듯해 A4 용지도 부족했다”고 회고했다.

왜 우주개발을 군에서 하냐는 견제도 끊임없었다. 우주개발진흥법이 만들어진 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우주탐사를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사업이 지지부진하자 연구원들 사기도 꺾였다. 최 중령도 그 중 하나다. 육군 연구개발 장교로 화생방 방어연구소에서 대량살상무기 대응체계 연구를 하던 그는 2017년 ADD에 합류했다. 국방우주체계 개발 현장에 있는 유일한 현역 군인이라는 자부심이 컸다. 우주는 우리 군의 미지의 영역이었고 그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오래 첫발도 못 뗄 줄은 몰랐다. 군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2017년 반전이 일어났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사일지침이 개정돼 최대 500㎏였던 한국 미사일 탄두 중량 제한이 해제된 것이다. 우주기술 개발의 길이 열린다는 의미였다. 무거운 탄두를 실을 수 있다는 것은 더 큰 추진기관으로 중형급 위성을 싣고 발사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어 2020년에는 우주발사체에 대한 고체연료 사용 제한이 풀렸고 2021년에는 아예 한·미 미사일지침을 해제해 최대 사거리 제한까지 해제됐다.

‘미사일 족쇄’가 풀리면서 군 당국은 우주전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저궤도에 초소형 위성을 올릴 수 있는 고체연료 추진 로켓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중형급 정찰위성 확보에도 속도가 났다.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하고 장거리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하며 한반도의 긴장국면이 고조되면서 군에서 위성을 운용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기 때문이다. 

지난 7월 18일 정찰위성 개발사업을 주도하는 국방과학연구소(ADD)의 ‘425 사업팀’이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대전=최상수 기자
◆불필요한 절차보단 실무 중심

425사업은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예산이 투입되며 개발이 시작됐다. ADD에서 미사일을 개발하던 김 단장도 이때 투입됐다. 사업 규모가 갑자기 커진 탓에 큰 규모의 개발 사업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 단장은 “나도 그동안 우주에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최근 군에서도, 방위사업청에서도 미사일 개발하던 분들이 우주로 넘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소련이 미사일을 개량해 스푸트니크 로켓을 개발해 인공위성을 올렸듯 미사일과 우주는 떼려야 뗄 수 없다.

위성체계 요구조건 및 시험평가를 담당하는 김 선임연구원, 사업관리 업무를 맡은 정 선임연구원도 이 무렵 합류했다. 외부 인사 합류로 정부 산하 연구소 특유의 경직됐던 분위기도 변했다. 김 단장은 “처음 팀장으로 합류해 회의를 하는데 젊은 실무자들이 수첩을 들고 뒷자리에 앉아 적기만 했다. 도저히 일이 안 되겠다 싶어 한동안 회의 자체를 안 하고 일만 했다”며 웃었다. 

실제로 군 조직은 민간 조직보다 보고 절차도, 이에 따른 문서 작업도 많아 효율성이 떨어지기 쉽다. 김 단장은 “국방획득절차가 현실과 맞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간기업에서 제작한 위성을 시험발사하는데 납품 조건은 발사 후에 모든 규격이 맞는지 확인돼야 통과된다”며 “이미 우주공간을 돌고 있는데 만약 납품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다시 원상복구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주왕복선으로 위성을 다시 잡아와야 한다”고 했다. 

나 팀장은 “단장님이 오시고 점점 실무자들이 중심이 돼 일도 하고 회의 때도 전면에 나서며 스타트업 같은 분위기도 생겼다”고 말했다. 최 중령은 “군에서 일하다 ADD에 오니 일하는 속도가 정말 빠르다는 걸 느꼈고 특히 우리 위성을 발사해주는 스페이스X와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며 “일론 머스크가 화성에 가겠다고 한 것처럼 스페이스X는 목표와 철학이 확실하고 불필요한 프로세스를 최소화한다”고 말했다. 사업에도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나 팀장은 “실물 형상은 2020∼2022년에 나왔는데 그 전에 STM(구조열모델·시험용 인공위성)으로 극심한 환경의 우주 공간에서도 정상 작동이 되는지 확인했을 때 앞으로 문제없이 진행되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425사업팀은 해상도가 높은 정찰위성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다음 목표는 궤도에 올린 두 대의 위성을 성공적으로 전력화하는 것과 앞으로 쏘아올릴 위성의 성능과 국산화율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김 단장은 “앞으로 정찰위성은 블록 개념으로 가야 한다”며 “미국이 2년 주기로 위성을 업그레이드하듯 우리도 단계별로 위성체 성능이나 형태가 진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반적으로 더 많은 위성을 올려 재방문 주기를 단축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보처리 속도”라며 “위성에서 보낸 사진·영상을 빠르게 판독하고 UAV 등 다른 자산에서 보내준 데이터와 융합해 군 지휘부의 빠른 결심을 도울 정보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선임연구원은 “425사업이 중간지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남은 위성들을 일정에 맞춰 발사하고 적시에 전력화하는 것이 목표”라며 “한국 우주기술과 업체의 역량이 발전해 나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찰위성 이용 심리전도, 우주동맹 필요”

이들은 우주가 새로운 전장이 되고 있고 국방 우주기술의 중요성도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김 단장은 “우주를 더는 평화적인 눈으로만 볼 수 없다”면서 “전쟁이 나면 GPS(위성항법장치)나 통신을 마비시키려는 위성 공격부터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비싼 위성을 몇 대 올려놓는 게 아니라 값싼 위성을 많이 올리거나 동맹국의 위성을 활용해 대응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북한을 압도할 수 있는 영역도 우주라며 “소련이 미국과 우주경쟁을 하다 체제가 붕괴됐듯 우리와 북한의 우주경쟁이 가속화되다 보면 북한 역시 위기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정찰위성을 통한 대북 심리전도 가능하다”며 “우리 위성으로 북한 주요 인사의 차량 사진을 찍어 보여주면 얼마나 스트레스 받겠나”라고 말했다. 국방 분야에서 우주기술, 전략의 중요성이 커진 만큼 최 중령은 민간 용도가 아닌 군 임무에 맡는 우주자산 연구가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중령은 “민·군 협력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정찰위성도 그렇고 군 임무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지난 7월 18일 정찰위성 개발사업을 주도하는 국방과학연구소(ADD)의 ‘425 사업팀’이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대전=최상수 기자
최근 우주항공청이 신설되는 등 국가의 우주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나 팀장은 “우주는 한 기관이, 심지어 한 국가가 독차지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조선 시대 당파싸움 하듯 민, 관, 군이 주도권 경쟁을 할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역할을 하며 협력해야 한다. 우리끼리 협업해도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대전=구현모 기자 li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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