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한·일 관계 위해 日에 성찰 기회 줘야” [차 한잔 나누며]

조성민 2024. 8. 1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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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
국내 유일의 사도광산 전문가
“전시공간 조성·추도식 약속 등
日의 이행조치 얻어낸 건 진전
강제성 명시 못한 점은 아쉬워
세계인 설득할 자료의 힘 키워야”
일제강점기 조선인이 강제동원된 역사 현장인 일본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 문제에 정확한 평가를 기대할 수 있는 국내 유일 사도광산 전문가인 정혜경(사진)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를 14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정 대표는 이날 “현장에 전시 공간 만든 것, 조선인 노동자 숙소 자리에 게시판과 정부 참여 추도식을 약속한 것 등 3가지 실질적 이행조치를 얻어낸건 진전으로 볼만하다”면서도 “강제성이 명시되지 않은 건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5년과 비교해 이번 협상이 더 어려울 것으로 예측했다. 군함도에는 연합군, 중국인, 조선인 등 다국적 강제동원 피해자가 존재했으나, 사도광산은 조선인 밖에 없다”며 “게다가 군함도와 달리 사도광산에는 생존자가 없다. 진상규명 전담기관인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도 2015년에 없어졌기 때문에 대응이 더 어려울걸로 봤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이 새로 뭔가 하게하려면 무척 어려운데 3가지 이행조치를 얻어낸 것에 점수를 주고 싶다”며 “이를 군함도에도 적용하라며 역공을 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 대표는 지난 2015년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산업유산 잠정 목록에 후보로 올라왔을 때 강제동원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렸고, 이후 홀로 조선인 명부 작성 등 연구를 계속해왔다. 그는 “물론 보완해야할 점이 많다. 특히 전시공간 안에 추도할 수 있는 공간 만들어야 한다”며 “전시물에도 부정확한 용어 사용, 조선인 폄하 등 등 역사 왜곡에 대한 지속적 요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제성’이 빠졌다는 지적에 대해서 그는 “한국, 일본이 아닌 제3국에서 봤을 때를 가정한다면 2015년 군함도 등재 당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결정문에 강제성이 들어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다만 한·일정부의 ‘동상이몽’이 문제라고 했다. 그는 “정부가 이번에는 선언적 강제성 인정보다 실질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라며 “그러나 ‘2015년 결정문을 존중한다’ 등 우회적으로라도 강제성을 인정하고 거기에 플러스(+)를 얻어냈어야 했다. 명시적인 전제가 아닌 암묵적 전제로 넘어갔으니 해석 여부에 따라 일본은 두 사안이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정 대표는 “앞으로가 더 문제”라며 “사실과 자료의 힘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이게 없다”고 강조했다. 군함도, 사도광산은 시작일 뿐인데 우리 현재 전문가 그룹도, 전담대응기구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이 추진할 유네스코 등재 근대산업유산군 66개 그룹 가운데 약 40%정도가 조선인 강제동원 지역이 포함된 곳”이라며 “앞으로 최소 수십년은 더 일본과 협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일본의 다음 목표인 구로베가와 전력소는 조선인 강제동원 연구자가 한 명도 없다”며 “후속 전문가 양성에 힘쓰는 일본에 상대가 되겠나”라고 한탄했다.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 일본만 바라보는 시각도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는 “유네스코 등재를 활용해 전세계를 대상으로 역사왜곡을 하려는 일본의 정치적 의도에 말려들어선 안된다”며 “일본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세계시민들을 향해 설득할 수 있는 사실과 자료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강제동원 관련해 영어로 나온 국내 서적이 우리나라에 딱 한 권 있는데 그게 제가 쓴 것”이라며 “이 수준을 벗어나지 않으면 백전백패”라고 단언했다.
정 대표는 “건강한 한·일 관계를 위해 피해국으로서 일본에 성찰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인천 부평 육군 조병창 등 일본이 남긴 전쟁 유산을 우리나라 지자체가 앞장서서 철거하고 있는데 이는 피해국인 우리가 알아서 일본의 식민통치 증거를 없애는 것”이라면서 “강제동원 역사적 장소도, 위원회도 우리가 없애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정 대표는 “일본에서도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에 발벗고 나서서 노력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줬으면 한다”며 “80대의 나이에도 사도광산에서 일어난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고스키 쿠니오 전 사도시의원, 얼마전 작고한 사도섬에 있는 절 ‘쇼코사’의 하야시 미치오 스님 등 외로운 목소리를 내는 분들이 있다”고 전했다.

글·사진=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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