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한국 망친 역적을 쐈다”… 의거 후 첫 신문기록 공개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의거 직후 안중근(1879~1910) 의사를 최초로 신문한 일본인 외교관의 친필 기록이 발견됐다. 국내 컬렉터인 최영호 82갤러리 대표는 “지난 3월 일본 경매에 나온 오노 모리에(大野守衛) 친필 원고와 사진 7점 등 일괄 자료를 구입했다”고 밝혔다. 당시 중국 랴오닝성 잉커우(營口)에서 영사관보로 근무한 오노 모리에는 1910년 3월 원고지에 친필로 쓴 기록 14장과 의거 ‘몇 분 전 촬영한 하얼빈역’ 사진 등을 남겼다.
안 의사는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의거 직후 러시아 영사관으로 압송돼 밀레르 검사가 신문했고, 이날 오후 10시쯤 안 의사의 신병과 취조 기록 원본을 일본 하얼빈 총영사관으로 넘겼다. 당시 가와카미 도시히코(川上俊彦) 하얼빈 총영사도 안 의사의 총탄에 맞아 입원했기 때문에 잉커우 영사관에서 오노 모리에가 하얼빈으로 파견됐다.
오노는 10월 27일 오후 하얼빈 총영사관에 도착해 30일 뤼순에서 미조부치 다카오(溝淵孝雄) 검사가 와서 신문을 시작하기 전까지 안 의사를 먼저 신문했다. 원고는 이듬해인 1910년 3월 쓴 것으로, ‘큰 별이 지다’라는 제목으로 당시 상황을 정리했다.
안 의사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담배를 주자 비로소 입을 열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오노가 이토의 암살 동기를 묻자 안 의사는 “한국을 망친 역적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또 새끼손가락(실제로는 약지) 절단 이유를 묻자 “나는 원래 북한 지역(황해도)의 산 사냥꾼이었는데, 그 당시 토끼를 요리할 때 실수로 손가락을 잘랐다”고 답했다. ‘단지동맹(斷指同盟)’ 동지들을 보호하기 위해 허위로 답한 것이다. 안 의사는 앞서 2월 7일 김기룡·황병길·백규삼 등 11명 동지와 함께 러시아 크라스키노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다짐하며 왼손 넷째손가락(무명지)을 끊었다. 오노 역시 “그 후 상당한 시일이 지났음에도 상처가 생생한 사실로 비추어 볼 때 답변이 엉터리임을 알 수 있었다”고 썼다.
안중근 연구자인 도진순 창원대 교수는 “미조부치 검사가 진행한 10월 30일 1차 신문은 자료가 남아 있는데 그 이전 오노의 취조는 처음 보는 내용”이라면서 “거사 직후인 27~29일의 공백을 메워주는 자료로 의미가 크다”고 했다.
안중근 의사 의거 당시 중국 잉커우(營口) 일본 영사관에서 근무했던 오노 모리에 영사관보는 의거 다음 날인 1909년 10월 27일부터 29일까지 안 의사를 신문한 기록과 당시 정황을 ‘큰 별이 지다’라는 제목으로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으로 정리했다. 기록한 때는 이듬해 1910년 3월이었다.
오노는 10월 27일 오후 하얼빈 총영사관에 도착했다. 그는 “하얼빈시 일대에 주범 안중근의 동료들이 잠복하고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이 들어 전원 일망타진으로 체포해야겠다는 생각하에 전적인 책임을 지고 안중근을 러시아 관헌에서 인계받아 총영사관 지하 구치실에 감금했다”고 적었다.
안 의사는 오노의 질문에 대부분 답하지 않았다. 오노는 “주범 안(安)이라는 자가 조선에서 어떻게 하얼빈으로 잠입해 왔는지에 대해 확인하기 위해 그가 입고 있던 복장과 구두 등을 세밀히 살펴보았으나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했고 규명하려 물어도 묵묵부답으로 응하지 않았다”면서 “생생한 상흔을 드러낸 새끼손가락(실제는 약지)의 절단 이유와 그 밖의 질문에 일절 대답할 기색을 보이지 않아 허망하게 반나절이 지나갔다”고 기록했다.
오노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연기를 내뱉으며, 입을 열게 하는 방법을 모색하던 중 통역을 통해 ‘당신은 담배를 피우는가?’라고 안에게 묻자 ‘매우 좋아한다’며 비로소 입을 열었다”고 적었다. 오노는 이후 상황을 상세히 기록했다.
“(담배를) 좋아하면 한 대 주겠다 했더니 ‘만약 (담배를) 줄 생각이 있으면 쓸데없는 말로 (시간) 낭비하지 말고 빨리 주라’ 하므로 순간 부아가 나서 한 개비를 꺼내 집어 던졌는데 (안이) 받지 못해 마룻바닥으로 떨어졌다. 안은 곧바로 몸을 구부려 수갑을 찬 채 담배를 주워, 궐련 담배 끝을 이빨로 잘라내며 불을 붙여 달라고도 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이를 씹기 시작하더니 ‘생큐’라고 한마디를 흘렸다. 그래서 ‘너는 영어를 할 줄 아냐?’ 물었더니 아니라고 하기에 ‘지금 네가 말한 한마디가 영어가 아닌가?’ 하자 ‘아니, 일본어’라고 한다. 그래서 그 말이 왜 일본어라고 생각하냐고 반문하자 ‘내가 예전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선박의 짐꾼으로 종사하고 있을 때, 동료 중에는 일본인도 많았는데 그들은 서로에게 사의를 표할 때 생큐라고 말했으므로 나는 이 말이 일본어라고 믿고 있다’고 했다.”
자료를 검토한 도진순 창원대 교수는 “안 의사는 일본어를 몰랐기 때문에 뤼순 감옥에서도 일본인 간수들과 필담으로 대화했다”면서 “냉철한 지식인 스타일이기보다는 전격적으로 반응하는 행동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안 의사의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 흥미롭다”고 했다.
오노 모리에의 기록에는 하얼빈 총영사관의 내부 구조도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다. “하얼빈 제국총영사관은 신시가지 고지대에 있으며 지상 3층, 지하 1층으로 된 멋진 서양식 대가옥”이라고 썼다. “1층은 사무실과 영사관에 딸린 경찰서가 있고 2층은 총영사의 사택이며, 3층에는 관원과 경찰관들이 거주하고 있다”며 “지하 증기기관실에 있는 가마솥은 전투함의 엔진룸을 연상케 하는 대규모였다”고 썼다. 당시 하얼빈 총영사관은 현재 초등학교로 바뀌었고, 사진도 외관만 있어 당시 하얼빈 총영사관의 구체적인 내부 환경을 알 수 있는 자료로도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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