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하이텍, 설비에 투자한다던 1807억원 어디로 갔나 보니
[편집자주]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는 정책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벌어들인 과실을 투자자들과 함께 향유하려는 기업의 진정성이 동반돼야한다. DB하이텍은 비금융 상장사 중에서 가장 먼저 밸류업 예고공시를 내놓는 등 전향적 모습을 보였으나 동시에 DB Inc 지주사 만들기에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자들과 소통문제가 덤으로 거론된다. 자본시장에서 DB와 DB하이텍의 진로는 어디일까.
DB그룹의 주력 계열사 중 하나인 반도체기업 DB하이텍의 주가가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며 투자자들의 애를 태운다. 지난해 연말 레거시(범용) 반도체 제조사에서 첨단반도체로 사업방향을 선회한다고 선언은 했으나 이후 설비투자 같은 구체적인 '액션'이 이뤄지지 않자 실망매물이 계속해서 나오면서 올해 주가가 맥을 추지 못하는 상황이다.
DB하이텍 주가는 지난해 4월 연 고점 7만7700원을 기록한 후 약세로 전환, 연말에는 5만8600원으로 마감했다. 현재 주가는 4만2550원으로 더 하락한 상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2022년말 약세를 끝내고 반등하기 시작해 올해까지 2년간 꾸준한 강세를 보였다는 점과 대비된다.
이는 근본적으로 DB하이텍이 연구개발과 설비투자에 소극적으로 나선 탓에 미래 경쟁력을 담보하지 못할 것이라는 실망감이 반영되고 있다는 게 증권가의 판단이다.
15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지난해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 투자비중은 13%에 육박했다. 지난해 역대급 반도체 불황 속에도 엔비디아의 AI반도체용 4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독점 공급할 수 있었던 자양분이 연구개발 투자였다. 막대한 매출 때문에 연구개발비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게 측정된다는 삼성전자도 지난해 10.9%를 기록했다.
반면 DB하이텍은 SK하이닉스의 절반 정도인 7.66%였다. 이것도 2년전보다 많이 늘어난 것인데 매출이 적은 기업은 연구개발비 비중이 크게 계산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쉬운 수치다.
미래를 담보할 기술확보 뿐 아니라 외형과 직결되는 설비투자에도 진한 물음표가 남는다. DB하이텍의 경쟁력 업그레이드를 위한 12인치 파운드리 생산과 전력반도체 사업을 위해서는 천문학적 자금이 필요하다.
당초 DB하이텍은 올해 1807억원의 설비투자에 나선다는 계획이었는데, 6월까지 집행된 자금은 699억원으로 계획의 39%에 불과했다. 이 대신 △신수종사업 진출 △첨단 반도체 사업 보안강화 등을 명목으로 골프장을 운영하는 디비월드 주식을 사들이는데 494억원을 쓰게 됐다. 이 자금을 반도체 설비투자로 돌렸다면 현재 투자율이 66%에 달했을 것으로 계산된다. 반대로 모회사인 DB는 디비월드 주식을 DB하이텍에 넘겨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지배구조 재편에 쓸 수 있는 실탄을 확보했다.
디비월드 주식매매의 문제점이 거론된 배경이다. 그간 DB하이텍은 선단공정인 12인치에 뒤떨어지는 8인치 파운드리(반도체위탁생산)를 주력으로 해 왔다. 웨이퍼는 크기가 커질수록 고성능 반도체를 위한 미세한 회로를 구현할 수 있어 부가가치가 높다. 2020년에 들어오며 대부분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들이 12인치로 생산 공정을 바꿨다.
DB하이텍은 8인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코로나19(COVID-19) 팬데믹 국면에서 스마트폰, 태블릿PC, 노트북 등 IT기기 수요가 급증하면서 일시적으로 8인치 시장이 호황을 입었다. 20~30% 가격인상 효과까지 누렸다. 2019년 3만원대였던 주가가 8만5400원까지 치솟았던 배경이다.
그러나 이후 수요가 급감하고, 미중갈등으로 타격을 입은 중국업체들이 레거시반도체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심화됐다. AI(인공지능) 시장이 커지면서 2년만에 반도체 훈풍이 불었지만, 설비투자에 소극적이었던 DB하이텍은 AI 반도체에 적합하지 않은 8인치 파운드리에 머물른 탓에 혜택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덩치를 줄여 모회사 DB Inc(이하 DB)의 지주사 전환 부담을 덜기 위해 주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DB하이텍의 팹리스(반도체 설계)부문을 물적분할하는 역선택을 했다.,
DB하이텍의 연결 기준 2022년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조6695억원, 7619억원이었지만, 지난해 1조1542억원, 2654억원으로 감소했다. 증권사들이 집계한 올해 DB하이텍의 매출액과 영업이익 전망치는 각각 1조1165억원, 1930억원이다. 수익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ROE(자기자본이익률)는 2022년 40.59%에서 2023년 15.65%, 올해 9.42%로 하락추세다.
계속되는 부진에 DB하이텍은 지난해 말 글로벌 톱10 시스템반도체 회사로 도약하겠다며 주주들을 달랬다. 2030년까지 차세대 전력반도체와 12인치 파운드리에 4조70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비전을 내놓았다. 주력 사업인 8인치 파운드리 분야는 GaN(갈륨나이트라이드)·SiC(실리콘카바이드)를 활용한 차세대 전력반도체 사업을 육성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사업은 부진하고 연구개발과 설비투자는 진척이 더디다. 이익률이 급감하고 보유현금도 충분치 않은 탓에 DB하이텍이 보여줄 밸류업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게 외부 주주들의 판단이다. 소액주주들 사이에선 "DB의 주주가치 밸류업은 대주주가치 밸류업을 말하는 것"이라는 자조섞인 말까지 나온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투자확대가 시급한 시점에 골프장 운영사 지분에 돈을 쓰는 걸 보고 어느 주주들이 끝까지 신뢰를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서 DB관계자는 "물적분할이 논의되던 지난해 초 소액주주연대는 반대를 표명했지만 회사측에서는 파운드리와 팹리스 고객의 이해충돌 문제때문에 팹리스를 분리하여 파운드리사업에만 집중하는 형태로 사업방향을 가져간다는 점을 어필했다"며 "이에 공감한 주주들이 주주총회에서 87%라는 찬성률을 보였던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김창현 기자 hyun1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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