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기숙사 1인실 확대에 반대한다 [조선칼럼 전상인]
사회성 결핍 현상 MZ에 만연
다인실 싫다며 기숙사 외면
권익위도 “1인실 늘려라” 권고
기숙사는 숙식 해결만 목적인가
우리 미래 사회 주역들이
자신만의 새장에 갇히기보다
다양한 계층 두루 경험하게
날씨와 상관없이 날짜는 가는 법. 여름방학의 끝자락에서 대학가는 신학기를 맞이할 준비로 바쁘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학생들의 기숙사 입주다. 원래는 타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대학 시설이었으나 요즘에는 같은 지역 안에서도 기숙사를 찾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장거리 통학난이 주된 이유이지만 당사자와 학부모 공히 ‘분가(分家)’를 원하는 세태 탓도 없지 않다.
얼마 전 국민권익위원회는 대학 기숙사 주거 환경 개선 방안을 마련하였다. 이에 따르면 교육부 및 전국 대학교와 지방자치단체에 현재 3인실 이상 기숙사를 1인실 또는 2인실로 바꿔, 1인실 비율을 절반 이상으로 늘리도록 권고할 계획이라고 한다. 어릴 적부터 독방에 익숙한 대학생들의 생활 특성을 반영한 결과라는데, 이와 관련하여 권익위는 작년 9월, 대학생 1,77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94.3%가 프라이버시, 편안한 휴식 및 잠자리, 집중력 향상 등을 이유로 1인실을 선호했다. 이에 비해 2022년 현재 전국 대학 기숙사 중 1인실은 전체의 7.7%에 불과한 가운데 2인실이 69.9%, 3인 이상 다인실(多人室)이 22.4%를 차지하고 있다. 눈에 띄는 대목은 기숙사 공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 주변 자취방 월세가 기숙사의 2~3배라는데 학생들은 1인실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숙사를 외면한다고 한다. 한국사학진흥재단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기숙사 입사 경쟁률은 사립대학이 0.8, 국공립은 0.9였다.
다인실 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요즘 학생들의 심정을 모르지 않는다. 여유 있는 학부모라면 비용 부담이 크더라도 자식한테 1인실을 안겨주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대학 입장에서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 커뮤니티 조성이라는 명분을 외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을 가르치고 세상을 배우는 과정, 곧 ‘사회화’의 측면에서 이런 식의 접근이 반드시 바람직할까. 더군다나 대학에서 말이다.
요새는 대부분 어린이나 청소년이 외동으로 자란다. 동기간 우애가 낯설 뿐 아니라 살가운 또래 친척도 별로 없다. 소꿉친구라는 말 또한 생소해졌다. 대신 각방(各房)을 쓰고 독상(獨床)을 받으며 TV나 컴퓨터, 스마트폰 등을 벗 삼아 집에서 혼자 큰다. 자가용 등하교와 학원 버스 셔틀이 확산하면서 아이들이 삼삼오오 동네 길을 걸어 다니는 풍경 역시 보기 어렵다. 그 연장선에서 요즘 대학생들은 대개 ‘혼삶족’이다. 태생적으로 디지털 세대인 데다 코로나 시대의 원격 학습을 뉴노멀로 경험한 터라 혼자 강의실로 이동하거나 혼자 식사하는 정도는 하등 이상하지 않다. 학내 구내식당에 다인용 식탁 대신, 합석을 피할 수 있는 바(bar) 형태의 테이블이 많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싫어하고 어려워하는 게 MZ세대의 특징이라, 소통력 감퇴에 따른 사회성 결핍 현상이 전반적으로 만연해 있다. 최근 ‘잡코리아’ 조사에 의하면 신세대 직장인들은 동료들과의 대면 업무 자체로부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사내 ‘친목’을 싫어하는 분위기도 역력하다. 전자 스크린 터치와 무인 기계음의 설치 확대 이후 인간의 육성조차 부담스러워하기도 한다. 지난해 ‘알바천국’ 조사에 따르면 MZ세대의 1/3 이상이 ‘콜 포비아(call phobia·통화 공포증)’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선호한 것은 이메일이나 문자 등 텍스트 소통이었다.
이런 마당에 최근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이른바 ‘공감 학원’이 성업 중이다.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 말문 트기)이나 스몰 토크(small talk·가벼운 얘기), 리액션 등 대화를 시작하고 이어가는 데 필요한 각종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돈 받고 가르치는 곳이다. 하지만 이런 사교육 방식이 얼마나 효과적일까? 워낙 이런 것들은 책이나 수업이 따로 필요 없다. 어릴 때부터 가정이나 이웃, 학교 안팎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말하자면 ‘하다 보면 배우는(learning by doing)’ 것이다.
기숙사는 단순히 숙식만 해결하는 곳이 아니다. 대학이 학점 따는 곳만도 아니다. 그런 만큼 학생들의 ‘권익’을 앞세워 대학 기숙사의 1인실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권익위 판단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미래 사회 주역들이 자신의 새장에 갇혀 살기보다, 다양한 계층, 지역, 인종, 언어, 가치관 등을 두루 경험하게 만드는 것은 대학 및 대학 기숙사의 또 다른 존재 이유다. 그게 우리보다 개인주의가 훨씬 발달한 구미 선진국 대학의 전통이고, 사회 통합을 중시하는 중국 명문 대학들의 교육철학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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