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간신열전] [247] 김안로(金安老)가 권간이 된 까닭
김안로(金安老·1481~1537), 조선 중종 때의 대표적인 권간(權奸)이다. 권간이란 처음에는 임금에게 기대어 권력을 휘둘러 대다가 점점[漸] 세력을 키워 뒤에는 임금도 쥐락펴락하는 간신배를 가리킨다. 조선 역사에서는 광해군 때 이이첨(李爾瞻)이 그런 경우였다.
권간들은 대체로 천수를 누리지 못했다. 어느 순간 임금의 역린(逆鱗)을 건드렸다가 주살되기도 하고 임금을 잘못 이끌어 정권이나 나라를 무너트려 삶을 마감하기도 했다. 후자는 중국에서 진나라 2세 황제를 무너트린 환관 조고(趙高)가 대표적이고 이이첨 또한 여기에 속한다. 김안로는 전자에 속하는 경우이다. 우리 현대사에서는 차지철 경호실장이 이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김안로는 젊어서 사림이었고 연산군 말년에 문과에 장원 급제한 엘리트였다. 때마침 중종반정이 일어나 사림 엘리트 김안로는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1519년 기묘사화로 조광조(趙光祖) 일파가 몰락하자 이조판서에 올랐다. 마흔 살도 되기 전이었다.
이 무렵 아들 김희(金禧)가 효혜공주와 혼인해 중종 부마가 되자 김안로는 날개를 다는 듯했다. 그러나 1524년 영의정 남곤과 심정 등 또 다른 친위 그룹의 견제로 유배를 간다. 그는 문집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에서 막상 유배를 가고 보니 임금의 권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절감했다고 적고 있다. 1527년 남곤이 죽자 재기를 모색하던 그는 1531년 조정으로 복귀하여 말 그대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1535년에는 좌의정에 올랐다. 정광필, 이언적 등이 축출되었고 이황도 압박을 받았다. 권력에 눈이 먼 1537년 문정왕후 폐비를 시도하다가 ‘역린’을 건드려 사약을 받았다.
사람마다 김안로의 씁쓸한 인생사를 읽으면 누군가를 떠올리겠지만 야권에서 이해찬 전 총리 자리를 이을 만한 인물로 김민석 의원 말고 누가 있을까? 과거 노무현 후보를 배신하고 정몽준 후보에게 달려갔을 때 못지않게 요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선거를 지켜보자니 이런 생각을 더 굳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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