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이승만 미화 선전도구, 보수 정부 KBS '흑역사'
MB정부 '건국절' 추진과 함께 이승만·백선엽 미화 다큐 제작
朴정부 땐 친일파·이승만 비판적 방송 불방되거나 폐지
뉴라이트 인사가 KBS이사장·방심위원장 맡아 제재 주도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보수정부가 들어서면서 방송판 '역사전쟁'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띄우며 임시정부 수립일이 아닌 '건국절'에 의미를 부여하고 친일 인사를 재평가하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의 방식이 다시 반복될 전망이다. KBS가 다시 역사왜곡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는 상황이다.
방송장악 후 '역사전쟁' 나선 보수정부
보수정부 때마다 KBS가 맞는 큰 변화 중 하나가 '역사전쟁'의 도구로 쓰인다는 점이다. 임시정부 수립 시점이 아닌 1948년을 건국으로 보는 '건국절' 논란을 촉발시켰던 이명박 정부에서 문제가 본격화됐다.
2010년 12월24일 KBS는 개편설명회에서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제1공화국>(가제) 제작을 발표한다. 건국 60주년이 지난 만큼 건국의 중심인물을 객관적으로 다룰 때가 됐다는 취지였다. 이명박 정부가 광복절이 아닌 건국 60주년을 강조해 논란이 되던 시점이다. 2011년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띄우고 독재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는다.
2011년 KBS는 6월24일과 25일 이틀간 백선엽 장군을 재평가하는 2부작 다큐멘터리 <전쟁과 군인>을 제작해 방영해 또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6·25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대신 친일파로 규정된 백선엽 장군의 전쟁 영웅으로서 면모를 부각했다. 당시 광복회는 “국민의 방송이라는 KBS가 국민 의견을 무시하고, 백선엽 찬양 다큐멘터리 방송을 굳이 송출하겠다는 행태는 아무리 봐도 설득력이 없다”며 비판했다. KBS는 “6·25 전쟁에서 그의 공은 (친일 행적과는) 별개의 사안”이라는 입장을 냈다.
박근혜 정부 때 KBS는 대통령의 부친이기도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미화해 논란이 됐다. 이례적으로 외주제작으로 제작한 현대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다큐극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미화하는 내용으로 여러 편수를 채워 논란이 됐다. 당시 언론노조 KBS본부가 공개한 방송기획안에는 “화학공업 육성을 위해 강압적인 자원분배가 필요했고 철권이 요구되었다”며 유신 독재 체제를 합리화한 내용이 포함돼 논란이 됐다.
친일파 조명하고 이승만에 비판적인 다큐는 '수모'
친일파 문제를 다루거나 이승만 전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2015년 KBS는 4부작 <뿌리깊은 미래> 다큐멘터리를 통해 미군정 시기와 6·25전쟁 참상을 다뤘다. 그러나 방영 직후 뉴라이트 학자인 이인호 KBS 이사장이 이사회에서 해당 방송을 비판적으로 언급했고, 절반인 2부만 방영된 채 폐지됐다.
이인호 이사장의 편성 개입은 이뿐이 아니다. 2015년 KBS가 한국전쟁 초기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일본으로 망명을 타진했다고 보도하자 이인호 이사장이 해당 보도가 문제가 있다며 임시이사회를 소집했다. 이후 일주일 만에 해당 보도는 삭제됐고 보도 책임자들이 교체돼 '징계성 인사'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3년 가까이 공들여 제작한 탐사보도물인 '시사기획 창'의 <훈장> 시리즈는 초유의 불방 파문이 이어졌다. 기약 없이 방송 편성이 미뤄졌고 제작진은 돌연 전보 조치를 받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룬 내용은 삭제하라는 윗선의 지시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8개월 만에 1편인 '간첩과 훈장'은 방영됐지만 친일파들이 이승만·박정희 시절 훈장을 많이 받았다는 내용의 '친일과 훈장'편은 끝내 방영되지 못했다.
제작 자율성 침해·제재 주도한 '뉴라이트'
박근혜 정부 때는 뉴라이트 학자들이 미디어 기구의 수장을 맡아 제작자율성 침해를 주도했다는 점이 특징이기도 하다. 2014년 방통위는 78세의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를 신임 KBS 이사로 추천했다. 이사장을 호선으로 정하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이사장으로 내정한 셈이었고, 이인호 이사는 KBS이사장이 된다.
그는 임명 당시부터 논란이 됐다. 친일사관·독재정권 미화로 논란이 된 근현대사 대안교과서 감수를 맡았고, 뉴라이트 학자들이 주축이 된 한국현대사학회 고문을 지낸 이력 때문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 당시 광복절 대신 건국절을 제정해야 한다는 건국60주년기념사업준비위원회 공동준비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런 이력을 가진 이인호 이사장이 이승만 망명설 KBS 보도와 <뿌리 깊은 미래>에 개입한 것이다.
두 방송은 모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중징계에 해당하는 법정제재를 받았는데 당시 방심위원장은 뉴라이트 학자 출신인 박효종 위원장이었다. 박효종 위원장은 대표적인 우익 사학자로 뉴라이트 시민단체 연합인 자유민주국민연합 상임대표를 지냈다. 이후 2017년 방심위 감사 결과 방심위 팀장이 <뿌리깊은 미래> 1편에 두 차례나 심의 민원을 조작해 제기한 사실이 드러났다. 윗선의 '청부심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시 이승만 띄우기… 돌아온 논란의 인사들
윤석열 정부 들어 다시 KBS의 '이승만 띄우기'가 시작됐다. 영화 <건국전쟁>이 화제가 되자 KBS는 메인뉴스인 '뉴스9'에서 <영화 '건국전쟁' 80만 돌파…이승만 공과 재평가 점화> 리포트를 냈다. KBS 시사프로그램에선 <감독이 말하는 '건국전쟁'>을 주제로 감독 인터뷰를 했다. 영화 프로그램인 '영화가 좋다'는 '요주의 픽'으로 <건국전쟁>을 꼽아 소개했다. 이제는 광복절을 앞두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미화하고 독재 행각을 부인하는 다큐멘터리 <기적의 시작> 방영을 앞둔 상황이다.
과거 논란이 된 인사들도 돌아왔다. 2011년 이승만 다큐 3부작을 제작한 김정수 당시 KBS PD는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 추천 방송통신심의위원으로 위촉됐다. 그는 지난 3월 한 토론회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적이었기 때문에 부정선거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며 “(미디어가) 선택적 왜곡을 통해 이승만에 대한 평가를 왜곡시키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류희림 방심위원장 체제에서 임명된 이현주 방심위 사무총장은 '친일과 훈장' 불방 당시 시사제작국장을 지내며 불방을 주도한 인사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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