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의 이제는 국가유산] [8] 팔월의 군산 풍경
군산 동국사에 무궁화가 피었다. 꽃무늬 스카프를 맨 소녀상은 오늘도 담담한데, 팔월의 태양 아래 매미 소리만 요란하다. 덥고 습한 여름 바람이 월명산 자락에 불면 대숲이 일렁이고 경사 심한 대웅전 지붕에 변주곡을 울린다.
동국사는 개항과 함께 들어온 일본 불교의 흔적이다. 1909년 군산에 정착한 일본인과 조선인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세운 일본 조동종 사찰이었다. 당시에는 작은 포교소로 인근에 흐르는 금강의 이름을 딴 금강선사(錦江禪寺)였다. 이후, 금강사로 이름을 바꾸었고 현재의 자리에 사찰을 지으며 일본에서 자재를 가져왔다. 종각의 작은 범종도 교토에서 제작해 왔다.
일본 무사 투구 같아 보이기도 한 대웅전은, 지붕의 기울기인 물매가 급경사를 이루며 일본 에도시대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스님의 거처인 요사가 복도식 회랑으로 대웅전과 연결되어 있다. 광복 후엔 대웅전 뒤에 자리한 납골당을 없앴고, ‘동국사(東國寺)’로 사찰명을 바꾸었다. 이젠 종각 옆에 평화의 소녀상도 자리했다.
소녀상 뒤에는 일본 불교계에서 침략을 정당화하고 미화했던 잘못을 인정하며 참회의 글을 새긴 ‘참사문비’가 있다. 그래서인지 소담한 무궁화와 어우러진 소녀상과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가 팔월에 더욱 특별하다. 군산에는 국가등록 문화유산인 동국사 대웅전을 비롯하여, 일제 강점기 흔적을 지닌 근대 유산이 골목골목 즐비하다.
군산에서의 시간 여행은 역사의 흔적과 더불어 영화와 소설의 배경 그리고 유명 빵집까지 즐기는 방식이 다양하다. 특히, 이즈음에는 군산을 찾는 이가 많다. 영화 ‘팔월의 크리스마스’의 영향도 있다. 촬영 장소를 재현한 ‘초원사진관’ 주변이 북적인다. 영화 속 장면과 대사를 음미하며, 많은 이들이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만드는 모습이 즐거워 보인다.
초원사진관에서 웃음 머문 여주인공 다림(심은하)을 보면, 앞을 응시하는 소녀의 눈도 떠오른다.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 했지만, 역사 안에서 잊지 말아야 할 흔적이 있다. 그 모든 기억을 마음에 담고, 사소한 일상을 지나며 여름 바람이 부는 날 군산을 다시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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