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민의 코트인] 인헌고 농구부에 새로운 역사가 쓰인 날

양구/정병민 2024. 8. 1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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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1? 아니, 10대0?”

“아마 저희가 이길 확률은 0대10도 아니라 0대11일 거예요” 1%도, 0.1% 확률도 존재하지 않는, 승리 가능성을 그 정도로 희박하게 바라봤던 코치. 바로 인헌고를 이끄는 신종석 코치가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저희뿐만 아니라 대개 많은 분들이 우승은 경복고라고 점찍어두고 왕중왕전에 참가했을 거예요. 사실상 여기까지 올라온 이상 목표는 준우승이죠”

신종석 코치의 말대로 현재 경복고는 최정상 전력으로 맞붙어도 좀처럼 넘기 쉽지 않은 팀, 현 고교 최강 보스다. U-18 국가대표 차출로 각 팀 에이스들이 자리를 비운 가운데, 어쩌면 전력 누수가 크게 없었던 경복고는 트로피에 무혈입성까지 가능했던 팀이자 어벤저스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팀이었다.

반대로 신종석 코치가 이끄는 인헌고는 농구부 창단 이래로 단 한 번 결승은커녕, 준결승도 밟아보지 못했던 변방의 학교였다. 연맹회장기에선 예선 전패를 기록, 항상 대회에서 들러리 역할을 도맡았던 팀이다.

허나, 이번 주말리그 왕중왕전은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권역별 대회와는 달리 선수들이 예선부터 패배 의식을 지우고 자신감을 장착하더니 김해가야고와 계성고, 광신예고를 차례대로 격파했다. 눈빛도 예사롭지 않았다.

강력한 1옵션으로 내세울 선수는 없지만, 로스터 전원이 함께 뛰며 소나기 3점슛을 퍼부은 게 주효했다. 인헌고는 예선 3경기에서 총 33개의 3점슛, 경기당 평균 11개 3점슛을 터뜨렸다. 이는 배재고, 무룡고 다음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신바람을 탄 인헌고는 결선에 올라와 마산고와 휘문고를 제압하며 4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마주한 상대는 본인들과 유사한 팀 컬러, 수비와 3점슛을 무기로 최고조 분위기에 이르른 배재고였다.

“아마 (배재고와의) 경기 당일 컨디션이 승패를 좌우할 것 같아요”

신종석 코치의 말대로 3점슛 성공 개수는 밀렸지만, 분위기와 제공권 장악 또 고비에서 터져준 외곽슛 한방으로 농구부 창단 첫 결승 진출에 성공한 인헌고였다. 현장에 위치했던 많은 이들이 이 역시도 기적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대망의 결승전, 다윗이었던 인헌고와 골리앗 경복고.

인헌고는 결승전 경기 초반, 높은 에너지 레벨과 투지를 앞세워 거세게 몰아붙였다. 흐름을 쥐어잡는 데 성공했지만, 인헌고의 분위기는 썩 오래가지 못했다. 경복고 윤지원이 연속 3점슛을 터뜨리자 우위였던 인헌고의 위치는 눈 깜짝할 새 열세로 변하고 말았다.

“당장 코트에서 뛰는 저도 인헌고가 약세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근데 계속 경기를 하다 보니까 격차가 좁혀지고, 좁혀지고, 포기하지 않고 싶더라고요...” 전승윤이 말했다.

마치 사냥개를 연상케하는 활동량과 예선에서 본인들의 주무기 3점슛으로 끈덕지게 따라붙었다. 엎어지고 넘어지고, 부딪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진짜 처절하다’라는 말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인헌고의 끊임없는 잽펀치에 경복고는 찰나 당황했으나 기세를 빼앗기지 않았다. 오히려 추격자 입장이었던 인헌고 신종석 코치가 여기서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그나마 팀 내에서 경기 경험이 풍부한 3학년 선수들, 전부 교체 아웃.

본인들이 예선부터 결승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원동력, 자신감 있는 행동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 자신감을 행동이 아닌 말로만 하면 경기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경각심을 부여했다.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경기장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그리고 전승윤이 말을 이어갔다.

“코치님 덕분에 정신 차리고 다시 경기에 임했어요. 들어가자마자 박스아웃을 가장 신경 썼고, 지더라도 끝까지 기분 좋게 해보자라고 마음먹었죠”

경복고를 상대로 13점까지 밀렸던 인헌고는 전승윤과 오벨레존을 축으로 추격에 나섰다. 오벨레존은 영리하게 높이가 있는 윤현성을 외곽으로 끌어내며 꾸준히 3점슛을 시도, 추격의 선봉장으로 나섰다. 앞선 자원들도 몸을 사리지 않고 골밑 전쟁터로 참전했다.

응원단의 힘을 등에 업은 인헌고는 4쿼터 종료 1분여를 남겨두고 김민국 3점슛이 림을 가르며 끝끝내 경기의 균형을 맞춰냈다. 이후, 김민국은 기습적인 압박으로 경복고의 턴오버를 이끌어냈다.

경기 종료 14.5초 전, 인헌고 신종석 코치가 작전 타임을 불렀다. 어쩌면 올 시즌 인헌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작전 타임.

신종석 코치는 김민국이 공을 잡은 후, 오벨레존과 투맨 게임으로 경기를 풀어갈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윤지훈의 압박 수비에 김민국은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순간적인 골밑 돌파 쇄도 역시 패스 타이밍이 맞지 않아 무산됐다.

“(김)민국이가 잡았어야 했는데... 못 잡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잡았고 시간을 좀 흘려보낸 뒤 존과 2대2 플레이 이후 킥아웃 패스를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3점보다는 2점이 더 쉬우니까, 최대한 2점으로 득점하라고 했죠”

전승윤의 말대로 전승윤의 킥아웃 패스를 받은 하범수가 노련하게 수비수를 제친 뒤, 왼쪽 코너에서 45도로 올라오는 최주연을 포착했고 순간적으로 기회가 발생했다. 수비수를 페이크로 허공으로 날려버린 최주연은 미드-레인지 점퍼를 시도했고 이는 가볍게 날아가 그물을 통과했다.

올 시즌에만 결승전에서 벌써 버저비터로 2번이나 패한 경복고 선수들은 허탈함에 그 자리에서 굳고 말았다.

반대로 인헌고 선수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에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곧바로 유니폼을 들어 올리며 왼쪽 가슴에 새긴 #3을 치켜세웠던 선수들.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3학년 김동우와 함께 뛴다는 선수들의 따듯한 생각이었다.

신종석 코치 역시 김동우와 함께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현장에는 없지만 김동우를 경기 출전 명단에 넣기도 했다.

“모든 선수들에게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마지막 대회를 이렇게 짜릿하게 장식하니까, 곧바로 울음이 터지더라고요. 결승에 올라온 것 자체가 우승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운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냥 말이 안 나와요. 선수단 모두에게 고맙다 전하고 싶어요” MVP를 수상한 전승윤이 말했다.

농구에 인생을 건 인헌고 선수들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인헌고 교장 선생님, 간절한 마음으로 선수들과 함께 뛴 학부모들.

“영광이네요, 우리에게도 이런 날이 오네요”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는 치열했던 2024 주말리그 왕중왕전 승부의 현장

“2024년 8월 14일, 인헌고등학교 농구부 창단 이래로 첫 결승 진출, 그리고 무패 우승 달성”

#사진_점프볼 DB(배승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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