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줬다 뺏는 기초연금’ 10년
생계급여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형편이 어려운 분들을 위한 최저보장이다. 2022년 기준 157만명이 생계급여를 받고 있다. 이 중 65세 이상 노인이 71만명으로 45%에 이르니, 수급자 거의 절반이 노인이다. 이분들은 가난하면서 노인이기에 매달 20일에 생계급여를, 25일에는 기초연금을 받는다.
그래서 기초생활수급 노인은 두 급여를 누릴까? 아니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 때문이다. 매달 25일 기초연금 33만5000원이 통장 계좌에 입금되지만, 다음달 20일 생계급여 산정에서 지난달 기초연금 금액만큼 삭감된다. 먼저 기초연금을 줬다가 다시 생계급여에서 뺏는 방식이다. 보건복지부 안에서 기초연금과는 33만5000원을 지급하고 기초생활보장과는 그 금액을 생계급여에서 빼는 행정이다.
이 문제가 세상에 본격 알려진 지 10년이다. 2014년 7월, 기초연금이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올랐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따른 결과로, 당시 노인들에게 상당한 희소식이었다. 그런데 기초연금 시행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황당한 사실이 알려졌다. 생계급여를 산정할 때 기초연금을 전액 소득으로 계산하므로 기초연금이 10만원 오르면, 다음달 생계급여에서 인상분 10만원도 삭감되는 것이다. 이러면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은 기초연금이 아무리 올라도 혜택을 받지 못한다.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차상위 이상 노인들은 기초연금 인상 효과를 누리는 데 반해, 생계급여 수급 노인은 그렇지 못하니 기초연금이 오를수록 기초생활수급 노인과 차상위 이상 노인 사이에 가처분소득의 격차가 커지는 형평성 문제마저 생긴다.
정부는 복지급여에서 ‘보충성’ 원리에 따라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생계급여는 개별 가구가 얻는 소득을 모두 합산한 후 그 금액이 일정 기준선(2024년 기준중위소득 32%)에 미달하면 부족액을 ‘보충’해 주는 현금복지이므로, 기초연금이 올라 소득이 늘면 기초연금 인상분도 생계급여에서 깎아야 한다는 논리다.
선별적으로 운영되는 현금급여에서 보충성이 기본 원리인 건 맞다. 하지만 그것이 늘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절대 원칙은 아니다. 양육수당, 장애인연금, 중고대학생 장학금, 국가유공자 수당 등은 가구특성을 감안해 생계급여에서 삭감되지 않는다. 근로·사업소득도 노동 동기를 존중해 30%는 소득산정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처럼 보충성 원리 안에서도 가구특성, 근로동기 등을 감안해 다양한 예외가 인정된다. 기초연금 역시 그래야 한다. 한국의 노인 빈곤과 턱없이 낮은 생계급여 현실에서 기초생활수급 노인에게 기초연금 혜택이 배제되는 상황은 개선돼야 한다.
해법은 간단하다. 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의 소득인정액 예외 급여 사례에 ‘기초연금’을 추가하면 된다.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바로 시행할 수 있는 민생이다. 그래서 빈곤노인들과 복지단체들은 2014년 박근혜 정부부터 지금까지 시행령을 개정해 ‘줬다 뺏는 기초연금’을 해결하라고 요구해 왔다. 만약 기초연금 전액을 제외하는 게 곤란하다면, 근로소득의 일부를 소득인정액 산정에서 제외하듯, 기초연금에도 공제율을 도입하자는 절충안까지 제시했다.
그러나 10년째 그대로다. 빈곤 노인들이 청와대 앞에 가서 기초연금을 줬다 뺏을 거면 차라리 ‘저희 목을 치라’는 도끼상소를 수차례 올렸으나 박근혜, 문재인 정부는 응답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는 대선 공약으로 “심각한 노인빈곤 문제 완화를 위해 기초연금을 현행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인상”하고, “기초생활수급자 노인에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내에서 10만원 추가급여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지금껏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이달 20일에도 기초생활수급 노인에게 기초연금액만큼 줄어든 생계급여가 지급될 것이다. 이제는 해결하자. 빈곤노인 당사자 요구만이 아니다. 기초연금법에 따라 5년마다 기초연금 제도를 평가하는 ‘기초연금적정성위원회’는 작년에 기초생활수급 노인의 기초연금 보장을 위해 생계급여 소득인정액 산정에서 기초연금을 부분 공제할 것으로 제안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기초생활보장 급여 산정 시 기초연금 수급액을 소득으로 산입함에 따라 극빈층 노인이 기초연금제도를 향유하지 못하는 불합리를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
윤석열 정부, 약자복지를 주창하고 있지 않는가, 어차피 받아도 빼앗길 거, 아예 기초연금을 신청하지 않는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이 점점 늘어나 이제 9만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가. 더 이상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의 설움을 외면해선 안 된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 10년을 넘기지는 말자.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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