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날씨 아저씨

기자 2024. 8. 14.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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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짜리 애들은 또래를 만나면 금세 친구가 된다. “우리가 어디 한두 살짜리도 아닌데…” 하면서. 어른들은 술이나 한잔 걸치고 나야 비로소 서먹함이 풀리는데, 아예 말 한마디 붙이지 못하고 꿍한 소심쟁이도 있다. 우린 보통 처음 말을 붙일 때 날씨 얘기를 꺼내. “밖이 넘넘 덥죠?” 아니면 “아침저녁으론 바람이 살짝 달라졌대요” 그러면서.

정찬의 장편소설 <유랑자>엔 서울에서 걸려온 전화, 낳아준 어머니의 부음을 들은 순간, 그 잠깐에도 날씨 얘기를 꺼낸다. “내 입에서 처음 새어 나온 말은 서울 날씨가 어떠냐는 것이었다. 내 귀에도 겨우 들리는 목소리였다. 안개 저 너머에 있는 강희에게는 들릴 턱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강희는 비가 오는 것 같다고 웅얼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루살렘은 날씨가 맑다고 나 역시 웅얼거리듯 말했다.” 당혹스러울 때 모면하는 방법.

김씨 이씨 박씨 말고 날씨. 요즘 방송에선 기상캐스터 여인들이 날씨 예보를 하는데, 과거엔 김동완 기상예보관이라고 그 양반이 요쪽엔 전설이었다. 날씨 아저씨는 MBC를 통해 오랜 날 일기예보를 도맡았다. 매직펜으로 칠판에 구름을 좍좍 그려가면서 소상하게 설명을 하는데, 그가 출근하면서 우산을 들고 나가면 하다못해 에어컨 물이라도 아래로 똑똑 떨어졌다고 해. 전엔 같은 강줄기를 댄 북한 날씨도 곧잘 설명해 주던데, 요샌 아랫녘에서 태풍도 올라오지 않는데도 일본 열도의 날씨며 지진 비상 소식까지 염려가 참말 극진하여라. 이번에 큰 물난리를 겪은 북녘 피붙이들이 섭섭할 지경으로…. 나무에 매달린 참매미, 말매미가 울고, 쓰름매미는 ‘쓰름쓰름’ 시름을 안고서 운다. 그래 ‘쓰르라미’라고도 해. 물이나 한 컵 마시면 ‘쓰르람 쓰르람’ 길게 울기도 하고. 비 오기 전 매미는 더 세차게 운다. 소나기라도 내릴 모양이야.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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