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숨의 위대한 이웃]밀양의 풀 뽑는 미스 차
“‘너는 오늘 누구를 만나라’ 그렇게 미리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너는 오늘 네가 만나는 사람을 네 집에서 하룻밤 재워주어라’ 그것 역시 미리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그녀는 생각한다. ‘오늘 내가 팽나무 아래서 왜 풀을 뽑았을까? 오늘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풀을 뽑았던 게 아닐까? 내 집에 초대할 손님, 하룻밤 재워 보낼 생면부지의 손님을 만나려고 풀을 뽑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녀는 오늘 오후 3시경 350년 된 팽나무 밑에서 풀을 뽑고 있었다. 3년 전부터 그녀는 낙동강 하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성지에서 ‘풀 뽑는 봉사’를 하고 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그곳에 우연히 갔다가 멋진 팽나무를 만났다. 그곳 정원의 꽃에 물을 주고 계신 분께 다가가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풀 뽑아 드릴까요?”
그녀에게는 놀고 있는 작지만 흙 묻히는 걸 싫어하지 않는 손이 있었다. 그렇게 그녀의 풀 뽑는 봉사는 시작됐다. 처음에는 풀인지 꽃인지 모르고 뽑았다. 풀을 뽑다보니 무념무상에 잠겼다. 텅 빈 그릇처럼 아무 욕심도, 집착도 없는 시간 속에 머무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그녀는 시간이 나면 성지로 가 풀을 뽑았다.
풀을 뽑다 보면 풀에서 잔잔한 아주 작은 꽃들이 올라오는 게 보인다. 자신을 향해 꽃을 가만가만 흔들고 있는 풀을 뽑을 때는 마음이 조금 아프다. 그래서 “미안해, 다음에는 예쁜 꽃으로 피어나라” 하고 속삭인다. 뽑히지 않으려 버티는 풀과 씨름할 때는 전투적이 돼 말한다. “너 오늘 나한테 죽었다!” 모기에 물려가며 풀을 뽑고 집에 돌아와 씻고 대자로 거실에 누워 있으면 세상이 내 세상이 된 것 같다. 그녀는 간혹 혼자 가는 식당에 밥 먹으러 가서도 풀을 뽑아준다.
오늘 풀을 뽑다 만난 여행객들에게 그녀는 무심히, 그러나 진심을 다해 말했다. “자고 갈 숙소 예약했어요? 안 했으면 내 집에서 자고 가요. 내가 재워줄게.” 그녀는 그리고 마저 풀을 뽑고 집으로 돌아가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고 여행객들을 맞았다.
“내 집에 온 손님은 귀한 인연”이지만 그 인연과의 첫 만남이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정말 마지막으로 끝나기도 한다. 까맣게 잊고 있다 어느 날 불현듯 그 여행객이 떠오른다. 그 불현듯 찾아드는 기억. 들판에서 만난 바람처럼 지나가버릴 그 기억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족하다.
재워주는 여자이기도 한 그녀의 이름은 미스(Miss) 차. 1956년생인 그녀는 30세에 조선소와 관련된 회사에 입사,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세계 여러 곳을 다니고 다양한 친구를 사귀었다. 자유롭고 싶고, 여행을 맘껏 다니고 싶어서 ‘20대부터 결혼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그런데 만 60세에 퇴직을 앞두고 병이 왔다. 어지러워서 움직이지 못하고 일어나지 못했다. 10개월 동안 병원과 집만 오갔다. 어지럼증이 올까봐 집에서 멀리 가지 못했다. 원망스럽던 병과 친구가 되고 그녀는 살던 곳을 떠나 연고 하나 없는 낙동강변에 새 집을 장만, 과감히 이주했다. 훼손되지 않은 자연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낙동강을 보며 살기 위해서였다. 일흔을 앞둔 그녀는 신체, 장기기증 신청을 해뒀다. 내 몸, 내 재산을 아낌없이 남김없이 나눠주고 갈 생각을 하면 그녀는 마음이 가볍다. 죽음을 피하고 싶지 않다. 내일 죽는다고 해도 아무런 아쉬움이 없다. 그녀는 이 순간에도 자신의 삶이 계속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집 거실에는 오래전 외국 친구에게서 받은 액자가 있다. ‘울타리 속 나귀가 울타리 안의 무성히 자란 풀은 보지 못하고 울타리 밖 풀을 먹으며 혀를 길게 내밀고 있는’ 그림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다. “The grass is always greener on the other side.”
저 문장을 그녀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내게 있는 소중한 것을 못 보고 멀리 있는 것을 쫓는(탐하는) 어리석음.’
“있는 모습 그대로 있고 싶어” 하는 그녀는 어리석고 싶지 않다. 그녀는 자신에게 있는 소중한 것에 집중한다. 이를테면 풀 뽑는 봉사를 더없이 만족스러워하는 자신의 손에, 그리고 오늘 밤 자신의 집에서 묵고 갈 손님에게.
김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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