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품는 갯벌 염생식물도 말라죽어···“이런 광경은 처음”
예년 30% 정도만 발아 ‘듬성’
모래지치·수송나물도 시들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
해양·육상 생태계 위기 불러
“작년 칠면초 면적의 30%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기온 상승이 칠면초 식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칠면초는 전북 고창 곰소만 갯벌을 붉게 물들이던 식물이었다. 지난 13일 이곳을 찾았을 때 칠면초는 갯벌 위로 듬성듬성 보였다. 한해살이 염생식물로 대규모 군락을 이루는 특성을 지닌 칠면초가 광범위한 면적을 붉게 덮은 예년과 달리 흑갈색빛 갯벌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 지역에 서식하던 흰발농게도 매우 작은 개체들만 확인됐다. 동행한 한동욱 에코코리아 PGA생태연구소 소장은 “칠면초가 자라난 면적이 이렇게 작은 것에는 발아기인 5월 기온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기온이 높아지면서 건조해진 탓이 아닌가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염생식물은 바닷가 갯벌이나 사구 등 염분이 있는 땅에 사는 식물을 말한다.
고창 갯벌은 국내 갯벌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곳이다. 람사르습지이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다양한 염생식물을 포함해 많은 동식물이 산다. 멸종위기 저어새 등 조류의 서식지이자 도요·물떼새 등 수많은 철새의 중간기착지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전북 고창 심원면의 최고체감온도가 36.5도까지 치솟은 이날 돌아본 고창 명사십리 해변 등 연안 곳곳에서는 본디 싱싱한 초록빛을 자랑하고 있어야 할 염생식물들 중 일부가 마치 폭염에 그을린 듯 갈색빛을 띤 모습도 눈에 띄었다. 모래지치, 수송나물 등 바닷가 사구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말라죽거나 시들어갔다. 한 소장은 “6년째 전국 연안에서 염생식물들을 포함해 생태계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말라죽은 광경은 처음”이라면서 “올해 데이터를 분석해봐야겠지만 전체적인 염생식물 식생량이 감소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천 장봉도갯벌의 경우도 역시 예년에는 초록빛 염생식물인 새섬매자기가 갯벌을 덮은 면적이 넓었는데 올해 7~8월 고온, 고염분 등으로 크게 줄어들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사상 최악이라는 악명이 붙은 1994년이나 2018년과 비견되는 올해 폭염이 연안 생태계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해양수산부와 해양환경공단(KOEM)이 10년째 실시하는 장기생태모니터링 결과도 폭염 영향을 증명한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결과를 담은 국가해양생태계 종합조사 보고서를 보면 연 평균기온과 5월 평균기온과 염생식물의 식생량은 음의 상관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기온이 높을수록 식생량은 줄어든다.
5월 평균기온은 염생식물 다수가 발아해 갯벌 및 사구 등에 정착하는 시기라 중요하다. 이때 기온이 높아지면 제대로 발아되지 않거나 더 빨리 발아해버리는 등의 효과가 일어날 수도 있다. 이날 고창 갯벌에서도 개화가 예년보다 빨리 이뤄진 염생식물들이 확인됐다. 염생식물은 해양생태계가 온실가스를 저장하는 기능, 즉 ‘블루카본(Blue Carbon)’ 측면에서 주목받는 식물인데 이 식물 자체가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염생식물의 감소는 이 식물을 먹이원으로 하는 저서무척추생물과 어류, 조류 등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식물들이 줄면 이들을 분해하는 초식성 저서생물이 줄고, 초식성 저서생물을 먹이로 삼는 육식성 저서생물과 상위 포식자까지 연쇄적으로 악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아직까지 한반도의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연안 생태계 변화가 닥쳐올 수 있다.
기후변화는 생태계 전체에 다양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오징어 어획량 급감, 명태 서식지 북상, 아열대 어종의 근해 발견 같은 현상이 모두 기후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 영향을 받은 것이다. 독성을 지닌 노무라입깃해파리나 파란고리문어 등 직접적으로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생물들이 연안에서 자주 확인되는 것도 기후변화 영향이다. 올해는 폭염으로 인한 수온 상승 때문에 곳곳의 양식장에서 대량 폐사 사태가 속출하기도 했다.
생태계 변화는 해상의 일만은 아니다. 육상 생태계도 기후변화로 처음 겪는 위기에 직면했다. 온실가스를 많이 줄이며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과 지금처럼 배출하는 것 가운데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한국 생태계가 맞이할 상황은 딴판으로 달라진다.
국립생태원이 2020년 10월 펴낸 ‘생태계에 대한 기후변화 리스크 평가’ 보고서를 보면 현재 추세대로 기후변화가 진행될 때를 의미하는 RCP8.5(Representative Concentration Pathways, 대표농도경로) 시나리오의 경우 국내 산림생태계에 사는 동식물 전체 4477종 가운데 약 237종이 위기를 맞게 된다. 반면 온실가스를 상당히 감축하는 것을 의미하는 RCP4.5 시나리오의 경우 위기에 처하는 종은 4분의 1 미만인 57종으로 줄어든다.
RCP8.5 시나리오가 실현되면 국내 전체 산림면적 약 6만7000㎢의 53%가 건조화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된다. RCP4.5 시나리오에서도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의 33% 정도로 줄어들게 된다. 국내 전체 2500여곳에 달하는 내륙 습지 가운데서도 RCP8.5 시나리오가 실현되면 120곳의 습지가 큰 피해를 당할 것으로 보이지만 RCP4.5 시나리오에선 32곳 정도만 위험에 처하게 된다.
다만 갯벌은 두 시나리오에서 모두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162곳 중 RCP8.5 시나리오에서는 94곳, RCP4.5 시나리오에선 80곳이 위험해진다고 생태원 연구진은 예측했다.
기후변화로 나타날 생태계 영향을 알아채려면 장기간의 모니터링이 필수적이다. 의미 있는 분석 결과를 얻으려면 30~40년의 자료를 축적해야 하지만 아직 국내의 장기생태모니터링은 걸음마 단계다. 길게는 100년 넘는 데이터가 존재하는 선진국과 달리 국내의 국가 단위 장기생태모니터링은 2010년대에야 시작됐다. 해양수산부, 해양환경공단 등과 국립생태원의 조사 데이터가 10년 정도씩 축적된 상태다. 그외에는 일부 지역들에 대해 개별 대학의 연구진이 수십년치 데이터를 가진 정도가 전부다.
10년은 장기생태모니터링 치고는 짧은 기간이지만 이마저도 자료가 축적돼 있지 않았다면 염생식물 군락의 축소 현황과 원인 파악도 불가능했을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과학적 자료를 꾸준히 축적해온 것이 폭염의 염생식물 영향 파악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더 꾸준히, 더 확대해서 장기생태모니터링을 실시해야 하는 이유다. 유영한 공주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국내의 장기생태 연구는 아주 초기 단계이고, 특히 필드(현장) 연구는 더 취약한 상태”라면서 “앞으로 흩어져 있는 데이터들을 연결하고,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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