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균의 초속 11.2㎞]안세영과 기타구치 하루카

이용균 기자 2024. 8. 14.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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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성 선수 첫 올림픽 ‘필드’ 금
기타구치, 배드민턴 하다 창던지기
한국 ‘대표팀 집중 관리’ 의존 여전
다양한 도전 위한 가능성 열어줘야

장재근 진천선수촌장은 “어제(10일) 우상혁의 경기를 본 곳이 창던지기 바로 뒤쪽이었는데, 일본 여자 선수가 금메달을 땄다. 정말 부러웠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현지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결산 기자회견에서였다.

장 선수촌장이 부러워했던 주인공은 기타구치 하루카(26)다. 파리 올림픽 창던지기 여자 결승에서 1차 시기 65m80을 던져 금메달을 땄다. 일본 여자 선수 올림픽 육상 필드 종목 첫 금메달이었다.

기타구치가 투창 선수로 성공한 과정은 ‘일반론’과 다르다. ‘어린 시절 일찌감치 재능을 발견해 자원을 집중 투입해 성공하는’ 보통의 ‘스포츠 스타 신화’ 트랙을 따르지 않는다.

호텔 파티시에 출신의 아버지와 실업농구 선수였던 어머니를 둔 기타구치는 3세 때부터 수영을 시작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수영과 함께 배드민턴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전국배드민턴대회 초등학생 부문에서 단체전 우승 멤버였다. 과거 안세영의 천적이었던 전 세계랭킹 1위 야마구치 아카네와 배드민턴 전국대회에서 맞대결을 펼친 적도 있다.

중학교에 가서도 수영과 배드민턴을 함께 했다. 창던지기를 만난 것은 고교 입학 뒤였다. 1m80의 큰 키에 주목한 학교 육상클럽 고문의 권유로 창을 처음 잡았다. 어릴 때부터 해온 수영과 배드민턴의 스윙 덕분에 어깨와 팔꿈치 관절의 가동 범위가 컸던 것이 투창과 딱 맞아떨어졌다. 창던지기 입문 2개월 만에 홋카이도 지역대회에서 우승했고 2학년 때는 전국고교육상대회에서 우승했다. 그래도 1학년까지는 수영과 투창을 병행했다.

기타구치가 본격적으로 창던지기 선수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이 2학년이었다.

출발이 늦었지만 수영과 배드민턴으로 다진 기초가 탄탄했다. 세계 제일을 위해 기타구치는 핀란드에서 열린 ‘투창 세미나’에 참석했고, 그곳에서 투창 강국 체코의 데이비드 세케라크 코치를 만났다. “세계 제일이 되겠다”는 꿈으로 세케라크 설득에 성공한 기타구치는 혈혈단신 체코로 날아가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했다. 상체를 젖혔다가 튕겨내는 기존 스타일이 아니라 체코가 발전시킨, 상체의 꼬임을 만들어 원심력으로 던지는 기술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기록을 끌어올렸다. 근력과 유연성도 필요하지만 회전운동을 직선운동으로 바꾸는 타이밍이 중요한 기술이다. 국내에 들어왔을 때는 기술 완성을 위해 해부학, 역학 전문가들로부터 조언을 받았다.

기타구치는 2021년 열린 도쿄 올림픽에서 결선 직전 부상으로 12위에 머물렀지만 파리 올림픽에서는 세계 제일에 올랐다. NHK 등에 따르면 기타구치는 금메달을 딴 소감으로 “기쁘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정말 말할 수 없는 기분”이라면서도 “선수촌에 들어와서는 매일 꿈속에서 70m를 던졌다. 그래서 조금 분한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안세영은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땄다. 결승 직후 믹스트존에서 작심 발언을 했다. 내용은 거칠었고 의도는 모호했지만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

한국 스포츠는 ‘대표팀’과 ‘선수촌’으로 대표되는 ‘집중 관리형’에 여전히 의존한다. 재능을 골라 선발해 대표팀을 만들고 이들을 국제대회에 집중 출전시켜 효율성을 높인다. 대표팀이 아니라면 국제대회에 못 나간다는 점에서 배드민턴과 양궁이 크게 다르지 않다. 효율성은 뛰어나지만 다양성은 제한된다. 외부 자극이 제한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기타구치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배드민턴을 계속했을 가능성이 높다.

장 선수촌장은 “기초종목을 육성하는 데는 많은 관심도 필요하지만 정부와 관계 기관의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선수 개인이 할 수 있는 역량이 다는 아니다”라며 “우상혁은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다시 도전해 결과를 만들 수 있도록 지금부터 철저하게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육상 전설의 안타까운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지금은 특별한 재능에 더 많은 집중 투자를 고민할 때가 아니라 더 폭넓은 다양성에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을 열 때다.

이용균 스포츠부장

이용균 스포츠부장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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