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우리는 모두 같은 사랑을 하고 있어
지난 6월18일 대법원은 동성 동반자에 대해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한국에서 동성 부부의 법적 권리를 최초로 인정한, 65쪽에 달하는 역사적인 판결문의 쟁점 중 하나는 동성 커플과 이성 커플의 ‘본질적인 동일성’이었다. 대법관 13명 중 9명의 다수의견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자의적으로 취급함을 금지”하는 헌법상 평등원칙에 따라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한 동성 동반자를 차별할 수 없다고 보았다. 반면 나머지 4명은 현행법상 혼인으로 인정되어 법적인 부양의무를 부담하는지 여부가 “두 집단의 공통점을 압도할 만큼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차이점”이라는 별개의견을 제출했다. 치열한 보충의견이 덧붙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본질적인 동일성’이 인정된 셈이다. 2012년 워싱턴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 투표를 앞두고 널리 울려 퍼진 매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의 노래 ‘same love’의 가사처럼.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랑을 하고 있어(it’s all the same love).”
그런데 모두 같은 사랑이라니? 이 노래가 누군가에게는 감동적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미국의 영문학자이자 에세이스트 메기 넬슨은 아름다운 자전적 에세이 <아르고호의 선원들>에서 그 ‘같음’의 의미를 묻는다. 넬슨은 파트너인 ‘해리’가 트랜지션을 위해 호르몬을 맞는 동안 ‘이기’라는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한다. 표면적으로는 점차 남성에 가까워지는 해리, 모성을 지닌 여성이 되어가는 넬슨, 그리고 갓난아이 이기로 이루어진 가족은 이성애 가족과 본질적으로 동일한가? 아니면 보수적인 결혼 제도를 모방하고 아이를 재생산하는 이성애 규범을 답습하긴 하지만 여전히 트랜스, 부치, 펨이라는 정체성과 엮여있으니 이성애 가족과 본질적으로 다른가? 이들은 퀴어하고 래디컬한가, 아니면 규범적이고 순응적인가?
이 책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까닭은 이러한 이분법을 작동시키는 정체성 정치를 몸소 뚫고 나가는 살아있는 질문들 덕분이다. 진실한 삶의 순간으로부터 나온 이런 질문을 읽고도 우리는 어떻게 임신과 출산이 이성애 규범적이라고 쉽게 단정할 수 있을까. “배태도 자체적으로 퀴어한 면을 품은 건 아닐까? 한 사람의 ‘정상’ 상태를 깊숙이부터 변동시키고 (…) 낯설고 거침없는 야생성을 띠며 사람을 탈바꿈하는 경험이 어떻게 그와 동시에 궁극적 순응을 상징하고 실행할 수 있는 거지?” 기꺼이 휩쓸리고 흐트러지며 스스로를 세상에 열어젖히는 구체적인 순간들은 래디컬이라는 진영, 퀴어라는 정체성, 동일성이라는 구획을 재정의한다.
그러니 우리가 모두 같은 사랑을 하고 있다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는 변호사도 판사도 아니니 인간의 ‘본질적인 동일성’에 대해 법리적으로 해석을 다툴 여지를 모두 알지 못한다. 그러나 넬슨이 존경한 퀴어 이론가 세즈윅이 <벽장의 인식론>에서 제시한 명제 “사람들은 서로 다르다”의 의미는 조금 알고 있다. 계급, 인종, 국적, 젠더, 성적 지향으로 우리를 나누는 정체성의 범주는 너무 거칠어서 개개인이 각기 어떻게 다른 행복과 고통을 경험하는지 우리는 쉽게 망각하곤 한다. 그러나 공론장에서 정체성이라는 이름 아래 너무 쉽게 엉기고 뭉개지는 이 다름들, 개개인의 이상하고 희한한 차이를 탐구하고 그 무수한 욕망을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서로를 속단하지 않게 하며 우리의 삶을 갱신한다. 우리는 저마다 각기 다른 욕망과 지향을 가지고, 각기 다른 쾌락과 고통을 경험한다. 우리가 이토록 다르다는 바로 그 이유로 인해 우리는 본질적으로 같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아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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