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다시 논란의 중심에 선 광화문 현판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5월 세종대왕탄신기념일에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쓰는 것을 고려해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가유산청은 이런 제안에 대한 국회 답변에서 국가유산의 원형 복원이라는 원칙을 내세우며 실질적으로 반대했다.
광화문 현판 문제는 2005년부터 논란이 됐다. 처음에는 경복궁 복원의 한 부분으로 정조의 글씨를 모아 쓴 현판을 달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것은 곧 한글 현판이 원형이 아니며 글씨 쓴 사람이 독재자 박정희라는 점에서 정당한 것처럼 보였다. 이런 결정에는 한글과 한자에 대한 가치평가가 들어 있었다. 한글 현판을 한자 현판으로 갈아치우기여서 한글단체들은 이런 조처의 부당성을 그때부터 지적해왔다. 그럼에도 2010년 8월15일에 한자 광화문 현판을 달았으나 석 달도 지나지 않아 현판을 이루는 나무에 금이 갔다. 오랜 조사와 논의 끝에 새 현판으로 고종 때 경복궁 중건 당시 훈련대장이었던 임태영이 쓴 글씨를 검은색 바탕에 금빛 글자로 제작해 2023년 10월15일에 달았다.
먼저 생각해볼 게 원형 복원 문제다. 2008년 숭례문 화재 때, 불길 속에서 현판을 어렵사리 구해냈다. 숭례문은 물론 그때 훼손된 현판도 복원을 마쳤다. 현판은 복원 전과 후가 물질적 연속성이 있어 원형 복원의 가치가 빛났다. 그렇지만 이미지를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복원한 광화문 현판도 원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재현품, 복제품으로 봐야 한다. 현판을 이루는 재료(목재)의 시간적 연속성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생각할 것은 국가유산(문화재)의 원형을 보존한다는 게 무엇일까라는 물음이다. 한글 광화문 현판이 국가유산의 원형 보존 원칙을 깨뜨리는가. 한자 현판은 원형을 보존하는가. 한글 현판이 새 현판의 창조이고 따라서 원형 보존은 아니지만 한자 현판도 재현일 뿐 본디 모습 되찾기가 아니다. 한자로 쓰면 원형 복원이라는 생각은 복제한 글자의 유사함에만 관심을 두었을 때 생긴다. 국가유산의 보존에서 원형 유지는 깨뜨릴 수 없는 원칙이다. 한글 광화문 현판은 국가유산의 원형 보존이라는 원칙을 부정하지 않는다.
애초에 이 문제는 긁어 부스럼 성격이 짙었다. 한글로 쓰인 현판을 한자 현판으로 바꾼다는 것은 앞서 언급했듯 한글과 한자에 대한 평가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한글은 상하귀천이 두루 쓰는 민주적인 글자이고 한자는 지배층의 정보 독점을 가능하게 만든 글자라는 점은 한자 현판을 달기로 한 결정에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박정희가 독재자임은 사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가 쓴 현판을 내려야 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의 잣대로 과거를 마름질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임태영도 대원군 시절 천주교 박해에 앞장선 인물로 알려져 있다.
1968년의 광화문 한글 현판을 걸 때도 현판이 본디 한자로 쓰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원형은 없었다. 그렇기에 1968년 한글 현판도 지금으로선 또 하나의 원형이 될 수 있다. 일본 같은 나라도 한자를 쓰는데 너무 속좁게 한글 현판을 내세우는 것 아닌가 하는 시선도 있을 것이다. 일본은 한자에 대한 태도가 조선과 전혀 달랐다.
한글 광화문 현판에 대한 반대는 합리적인 근거 위에 서 있다고 할 수 없다. 한글 광화문 현판은 원형 보존이나 복원이라는 원칙을 저버리지도 않는다. 한자 현판이 원형 복원도 아니다. 1968년 현판을 다시 걸면 현실정치에 휘말릴 수도 있다. 정치가 끼어드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한글 새 현판을 만들 수도 있다. 원형 보존을 내세우며 한글 현판을 반대하는 국가유산청은 지난해에 단 한자 현판은 원형 복원이라기보다는 재현품이며 복제품이 아니냐는 물음에 답해야 한다. 광화문 한글 현판 문제는 지금의 한자 현판에 난데없이 딴지를 걸고 나선 게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 국가유산청과 차분한 대화와 토론을 기대해본다.
김영환 한글철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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