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1751년, 흥해군수의 ‘고발 사주’
1751년 음력 7월,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권력형 범죄가 발생했다. 이 사건을 조사했던 경상감사 조재호는 직권으로 흥해군수 이우평을 파직하고, 그의 죄상을 조정에 보고했다. 그의 범죄행위를 감안할 때, 잠시라도 그를 공적 지위에 머물게 할 수 없었다.
이 사건 발단은 전해인 1750년 음력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음력 10월은 한 해 결실을 거두는 시기이다. 당연히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봄에 빌렸던 곡식을 갚아야 하는 시기, 즉 환곡의 계절이기도 했다. 물론 곡식을 갚을 수 있을 정도로 수확이 좋으면야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늘 상황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1750년 역시 예약된 흉년이었고, 백성들 입장에서는 그 어느 해보다 환곡의 부담이 컸다. 관아에서는 주어진 권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곡식을 받아내야 했고, 결국 미납자들은 속속 관아에 잡혀 올 수밖에 없었다. 서원석의 아내 잉질낭도 미납 책임을 지고 흥해군 관아에 잡혀 왔었다.
잉질낭은 흥해군수 이우평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을 만큼 용모가 뛰어났던 듯하다. 그러나 아무리 잉질낭이 양민이라 해도 유부녀를 함부로 어찌할 수는 없었다. 남편이 자리를 비우길 기다려야 했다. 해를 넘긴 1751년 음력 4월, 드디어 잉질낭의 남편이 멀리 출타할 일이 생겼다. 그러자 이 때에 맞춰 이우평은 다시 환곡 미납 가구들을 잡아들였고, 잉질낭 역시 같은 이유로 끌려왔다. 이우평은 그를 옥이 아닌 동헌 옆 창고에 가두고, 밤을 틈타 강제로 그를 범했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욕망을 채운 최악의 범죄였다.
당연히 하루 이틀 사이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공권력을 이용해 자기 욕망을 채운 흥해군수는 도덕적 지탄의 대상이 되었고, 지역 여론 역시 군수의 편이 아니었다. 특히 도덕적 판단이 사족의 명예와 직결되는 조선 사회에서 이 소문은 이우평에게 치명적이었다.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읍내에 사는 이우평의 심복으로, 지역사회를 잘 아는 의원 김억세를 부른 이유였다.
이우평의 명예회복을 위한 교묘한 계획이 실행되었다. 김억세는 잉질낭의 이웃인 맹인 여성 정소사를 포섭했다. 그러고는 정소사가 잉질낭이 음란한 행위를 했다며 관아에 고발하도록 사주했다. 고발이 들어오면 이우평은 잉질낭을 음란한 여자로 처벌하고, 자기 행동은 감추려 했다. 이우평은 잉질낭을 동헌 옆 곳간에 계속 가둬둔 채, 그를 공노비로 만들겠다 위협하면서 고발 내용을 인정하라고 압박했다.
그러나 이때도 문제는 소문이었다. 흥해군수의 파렴치한 행동이 다시 흥해군민들의 입과 귀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아내를 빼앗긴 서원석의 억울함까지 보태져, 이 소문은 경상감사 조재호의 귀에까지 닿았다. 조재호는 지방관의 이러한 행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서원석과 잉질낭, 그리고 여기에 연루된 사람들을 불러 직접 조사했다. 사건 정황은 명백히 드러났고, 결국 흥해군수 이우평의 죄상은 낱낱이 밝혀졌다. (출전: 조재호 <영영일기>)
조재호는 특히 자기 범죄를 감추려 고발을 사주한 이우평의 행동에 분노했다. 흥해군수의 권력은 공적으로 작동해야 하는 ‘공권력’이다. 비록 권력자 본인을 위한 것이라 해도, 공적 권력은 사적 이익을 위해 봉사하면 안 된다. 이 때문에 공권력은 객관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행사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며, 동시에 그것이 항상 공적으로 작동되고 있다는 사실도 보여줘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흥해군수의 고발 사주는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공적 권력을 사용하면서 그 권력이 마치 투명한 절차에 의해 행사되는 것처럼 위장하려 했던 범죄이다. 공적 권력의 정당성 자체를 무너뜨린 일이었다는 말이다. 단 한 순간도 이우평을 공적 지위에 둘 수 없었던 이유였다.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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