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의 옆집물리학]멈춰야 구르는 바퀴
길가에 서서 빠르게 움직이는 자동차를 본다. 직접 눈으로 보기는 어려워 믿기지 않겠지만, 빠르게 내 앞을 스쳐 지나가며 구르는 둥근 바퀴에는 매 순간 정지해 있는 딱 한 점이 존재한다. 느긋하게 굴러가는 소달구지, 빠른 자전거, 질주하는 경주용 자동차 모두 마찬가지다. 굴러가는 모든 것에는 멈춘 곳이 있다.
2차원 평면에서 가장 신기하고 독특한 도형이 바로 둥근 원이다. 원 한가운데 중심에서 바라보면 원의 둥근 곡선을 이루는 모든 점은 같은 거리에 있다. 평면 위 한 점에서 도형의 어디를 봐도 모든 점이 같은 거리인 도형은 딱 원 하나뿐이다. 정삼각형은 다르다. 중심에서 바라보면 꼭짓점이 변보다 멀다. 만약 바퀴를 정삼각형 모양으로 만들면 어떨까?
정삼각형 나무판 한가운데에 구멍을 뚫고 회전축을 연결해 땅 위에서 굴려보자. 정삼각형의 한 변이 지면 위에 있을 때 회전축은 낮은 위치에 있다. 삼각형 바퀴가 굴러서 지면 위에 꼭짓점이 놓여 회전하기 시작하면 회전축은 점점 더 높이 올라간다. 만약 바퀴가 삼각형이라면 회전할 때마다 자동차가 위아래로 덜컹덜컹 요동치게 된다. 승차감이 엉망일 수밖에. 쿵쾅쿵쾅하는 승차감을 이 악물고 참는다 해도 삼각형 바퀴는 에너지 효율의 입장에서 나쁜 선택이다. 지면에 평행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자동차의 당연한 목적인데, 삼각형 바퀴가 회전하면서 차체가 중력을 이기고 위로 움직이게 된다. 앞으로 그냥 가면 될 것을 위아래의 쓸데없는 움직임으로 큰 에너지를 소비한다.
정사각형, 정오각형, 정육각형의 방식으로 점점 변의 개수를 늘려가면 중심에서 꼭짓점까지의 거리가 중심에서 변까지의 거리와 점점 비슷해진다. 결국 변의 개수가 무한대인 정다각형의 형태로 만들면 드디어 바퀴는 위아래 방향의 아무런 움직임 없이 전혀 덜컹거리지 않고 부드럽게 굴러가게 된다. 그리고 이때 바퀴의 모습이 바로 원이다. 앞으로 굴러가도 전혀 덜컹거리지 않는 바퀴의 유일한 모습이 바로 둥근 원이다.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자동차 바퀴는 구르지 않고 끽 소리를 내면서 미끄러진다. 이런 미끄러짐이 전혀 없이 앞으로 부드럽게 굴러가는 둥근 바퀴를 바라보는 두 사람 영희와 철수가 있다. 영희는 땅 위에 가만히 정지해 있고, 철수는 둥근 바퀴의 회전축과 나란히 바퀴와 함께 같은 속도로 걸어가는 상황이다. 철수가 걸어가면서 옆눈으로 바라보면 바퀴는 그냥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회전하는 것으로 보여, 바퀴의 가장 높은 곳은 앞으로 움직이고 바퀴가 땅에 닿는 접점은 같은 속도로 뒤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영희가 본 바퀴 접점의 속도는 바퀴 전체가 앞으로 움직이는 속도에 철수가 본 접점이 뒤로 움직이는 속도를 더한 속도가 된다. 결국 영희가 본 바퀴의 접점은 정지해 있게 된다.
다르게 생각해도 답은 같다. 정N각형의 바퀴가 굴러가며 한 꼭짓점이 바닥에 있을 때 바퀴는 이 점을 기준으로 회전하지만 이 점 자체는 지면에 대해 그 순간 정지해 있다. N이 무한대로 늘어나는 극한에서의 N각형이 바로 원이어서 원의 모든 점은 정N각형의 꼭짓점이라 할 수 있다. 지면에 닿는 접점을 회전의 중심으로 바퀴가 회전하는 무한히 짧은 순간, 원의 접점은 지면에 대해 정지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굴러가는 바퀴가 지면에 닿는 접점은 항상 정지해 있다. 계속 앞으로 굴러 나아가기 위해 바퀴는 늘 한 점을 땅에 딱 붙여 회전한다.
둥근 바퀴가 미끄러지지 않고 굴러가려면 바퀴와 지면 사이에 어느 정도의 마찰이 필요하다. 바퀴가 굴러가려면 마찰력이 필요하지만, 이 마찰력이 작용하는 접점은 언제나 정지해 있어서 마찰력이 바퀴의 운동에너지를 줄이지 않는다. 둥근 바퀴는 정말 놀라운 발명품이다. 위아래로 덜컹거리는 쓸데없는 움직임 없이 앞으로만 움직일 뿐 아니라, 높은 에너지 효율로 짐을 나를 수도 있다.
바퀴의 놀라운 효율성을 생각하면, 진화의 과정에서 바퀴를 몸 구조의 일부로 활용한 생명체가 등장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진다. 계속 회전하려면 바퀴와 회전축이 직접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야 하는데 이런 방식의 구조가 출현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재밌는 이유가 있다. 철도가 없다면 기차가 무용지물이듯, 울퉁불퉁한 땅에서는 바퀴가 효율적이지 않고 바퀴가 없다면 평평한 도로를 만들 필요도 없다. 결국 바퀴를 만든 생명이 도로를 만든 생명일 수밖에. 바퀴는 도로와 공진화했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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