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소통…‘금일’을 모른다면 ‘오늘’을 쓰면 된다[한성우의 말과글의 풍경]
어휘력 문제 드러난 사례 들어
‘요즘 것들·못 배운 것들’ 공격
조롱하기보다 배경 이해해야
자주 안 쓰면 모르는 게 당연
글보다 영상에 친숙한 환경도
괜히 어렵게 쓰려 들지 말고
독자 기준서 쉬운 말 사용을
4흘 전에 시작돼 金일 끝난 행사에 우천市를 念頭하고 中食을 따로 준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주체측은 심심한 사과를 해야 한다. ‘사흘’이 3일이 아닌 4일로, ‘今日’이 오늘이 아닌 ‘금욜’로, ‘중식’이 ‘점심밥’이 아닌 ‘중국 음식’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것에 대한 반성은 없다. ‘비가 올 때’라고 하면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을 텐데 굳이 100년 전에나 쓰였을 법한 국한문 혼용문을 그대로 베껴 쓴 이유에 대한 이해나 비판도 없다. 발음이 바뀌어 ‘주최’는 ‘주체’로 들리고, ‘염두에 두다’는 ‘염두해 두다’로 들릴 수 있는데 한자에 대한 지식은 점점 얕아지는 현실에 관한 냉철한 판단은 보이지 않는다. 말과 글을 잘못 쓰고 이해하는 것을 둘러싼 풍경은 삭막하기만 하다.
문해력인지 독해력인지, 아니면 어휘력인지 모를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맞춤법 문제까지 불거져 어려운 맞춤법을 정한 국어학자나 이것을 밀고 나가는 관계자에 대한 비난이 넘쳐난다. 부족한 국어교육에 대한 질타, 한자교육을 강화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주장, 더 알고 많이 배운 자들의 비아냥거림도 들린다. 그러나 이것은 어느 한쪽을 비난하거나 조롱할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경험하고 있는 소통의 문제다. 이 문구를 쓴 이, 아무런 문제도 느끼지 못하고 읽은 이, 이러한 엉터리 문구가 넘쳐나도록 방치한 이, 그리고 이것을 남의 문제인 양 떠넘기며 조롱을 일삼는 이 모두가 반성해야 할 문제다.
어휘력, 독해력, 그리고 문해력
‘문해력’이란 말은 없었다. 한자로는 ‘文解力’이라 쓰고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정의되는 이 단어는 2020년 이후에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독해력’이라 했는데 사전에서는 이를 ‘글을 읽고 뜻을 이해하는 능력’이라 풀이하고 있으니 문해력과 독해력의 사전적 의미는 같다. 그런데 굳이 ‘문해력’이란 용어를 쓰며 ‘사흘, 금일, 중식, 심심한 사과’ 등을 엉뚱하게 이해하는 사례를 들고 있다. 황당하지만 재미있기도 하니 언론에서는 이 사례와 용어를 퍼 나르기 바쁘다. 이 사례가 과연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의 문제인지 곱씹어 생각하기보다는 그렇게 오해하는 이를 조롱하는 데 모두가 동참하고 있다.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인 줄 모르면서.
문해력의 문제가 아니다. 문해력과 독해력의 사전적인 뜻은 거의 같으니 독해력의 문제도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어휘력의 문제이다. 사전에서는 ‘어휘력’을 ‘어휘를 마음대로 부리어 쓸 수 있는 능력’이라 하여 ‘사용’ 면에 대해서만 정의하고 있는데 당연히 ‘이해’까지 포함해야 한다. ‘사흘’이 고유어로서 ‘세 날’을 가리키는 것인지 모르는, ‘금일’이 한자어로서 ‘오늘’에 해당하는 것인지 모르는 게 문제이니 어휘력의 문제이다. 어휘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글에 대한 이해도 가능하니 어휘력이 독해력 또는 문해력의 기초이기는 하다. 그러나 ‘행사가 3일 전에 시작돼 오늘 끝났다’고 쓴 문장을 엉뚱하게 이해할 이는 없으니 단어 이해의 문제이지 문장 이해의 문제가 아니다.
고유어와 한자어의 문제도 아니다. ‘금일(今日), 심심(甚深)한, 우천시(雨天時)’ 등은 한자어이지만 ‘사흘’은 고유어이니 단어 종류가 문제는 아니다. 그저 요즘은 잘 안 쓰는 단어, 과거 한자와 한자어가 많이 쓰였을 때 사용된 단어를 잘 모르는 문제이다. ‘중식(中食)’은 같은 한자를 쓴 것이 ‘점심’과 ‘중국 음식’을 가리킬 수 있으니 이는 맥락에 대한 이해의 문제여서 독해력 또는 문해력 문제일 수 있다. ‘염두(念頭)’에 쓰인 한자가 ‘생각’과 ‘머리’이니 ‘염두하다’란 말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한자 및 한자어에 대한 이해의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이 모든 단어가 잘 안 쓰는 말, 또는 더 알아듣기 쉽게 쓸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니 굳이 한자교육 강화를 주장하기 위한 사례로 삼을 이유는 없다.
언어 약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필요성
쉽고도 꼭 알아야 하는 단어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누군가는 아예 모르거나 잘못 사용하고 있는 문제이다. 그 ‘누군가’는 은연중에 ‘요즘 젊은 것들’ 그리고 ‘못 배운 것들’을 가리킬 때가 많다. 나이가 좀 든 세대에게 ‘사흘’과 ‘금일’은 익숙한 말이니 이 말을 모르는 세대를 비웃기 딱 좋은 사례이다. 많이 배운 사람들은 ‘우천시’가 도시 이름이 아니고 ‘비가 내릴 때’라는 것을 알 수 있고, 귀로는 ‘염두해 두다’로 들리더라도 책에는 ‘염두에 두다’로 쓰여 있는 것을 떠올릴 수 있다. 좀 더 배울 기회를 가진 이들은 그렇지 못한 이들을 조롱하기 딱 좋은 사례이다. 나이가 벼슬이고 더 배운 것이 권력이니 그렇지 못한 사회적 약자이자 ‘언어 약자’를 먹잇감으로 삼아 공격한다.
그러나 ‘요즘 젊은 것들’이 왜 이런 단어들을 잘 모르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말은 문법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고, 단어는 사전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다. 말을 배울 무렵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문장구조에 대해 강의하고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일러준 적이 있는가? 아이는 주변의 말을 듣고 스스로의 능력으로 문법을 구축하고 단어의 뜻과 용법을 익힌다. 주변의 언어환경에 의해 아이의 타고난 능력이 깨어나 비로소 말을 완성해가기 시작한다. 토양과 기후가 좋으면 아이의 언어능력은 더 커진다. 많은 단어의 다양한 용법을 들려주고, 정확하고 올바른 문장을 구사해주면 아이의 언어능력은 더 완벽해진다.
그러나 ‘사흘’과 ‘금일’을 잘 들려주지 않았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뭔가 구닥다리 같고 학교 다닐 때 싫어한 한자가 들어간 말이어서 잘 안 쓰게 되니 아이들은 자주 듣고 그 뜻과 용법을 익힐 기회가 없었다. ‘심심한 사과’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고 가끔 쓰기도 했지만 그것이 ‘매우 깊다’는 뜻의 ‘甚深’인지 몰랐고 ‘지루하다’는 뜻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어서 쓰기를 주저하기도 했었다. 젊은 세대는 자주 듣지 못했으니 잘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못 배운 것들’이 왜 어휘력이 떨어지는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가르침이 있어야 배움이 있다. 가르치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할 수 있다면야 아무런 걱정이 없겠지만 그런 이들은 극소수이니 어떻게든 가르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국어 교사들은 할 말이 없거나, 있어도 삼가야 한다. 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잘 못 가르친 탓은 분명히 있으니 잘 못 가르쳐 못 배운 이들을 비난하거나 조롱해서는 안 된다. 다만 이것이 어휘력 문제인지 문해력 문제인지는 명확하게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국어 시간을 늘리거나 한자교육을 강화하거나 하는 게 능사가 아니니 이것을 기회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책을 읽지 않아서, 수동적인 영상만 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빠져 있어서 등의 하나 마나 한 진단도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거의 모든 사람이 책 읽기보다는 마냥 지켜보기만 해도 되는 영상을 좋아한다. 인터넷 없이는 살 수 없는 시대이고 모두가 인터넷을 잘 활용하기를 원한다. 자신들도 SNS를 열심히 이용하고 있고 할 수만 있다면 더 잘하고 싶다. 이미 이런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 그런 시대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었으면서도 젊은 세대는 그런 시대에서 뒤떨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전혀 먹히지 않는다. 책은 잘 안 읽어도 영상은 잘 이해하고, 책은 못 써도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는 영상 콘텐츠는 잘 만드는 세대이니 부러워할망정 비난할 일은 아니다.
바보야, 문제는 소통이야
어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모두가 만들어왔다. 책을 안 읽고 영상을 소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잘 안 쓰는 고유어, 어려운 한자어는 점점 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사람들의 머릿속 사전은 점점 더 얄팍해지고 문장은 단순해질 것이다. 이것이 문제라 여기고 되돌리려는 시도는 이루어지겠지만 큰 흐름은 바꾸지 못할 것이다. 사마귀 홀몸으로 거대한 수레를 감당하기 어려울 테니 수레에 올라타서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 방법은 분명하면서도 간단하다. 어휘력과 문장력 모두가 부족하더라도 소통은 해야 할 터, 그 소통에서 해답을 찾으면 된다.
‘심심한 사과’ 사건을 둘러싼 관심과 논쟁은 모두 틀렸다. 사건의 전말을 살펴보면 그저 심심풀이로 한 농담을 불쏘시개 삼아 문해력을 둘러싼 전면전으로 확대시킨 것으로 보인다. 공지문 작성자는 진심이었다. 문제를 일으켰으니 사과를 해야겠고, 사과문은 정중하게 쓰는 것이 좋으니 이전의 사과문을 검색해서 찾아봤을 것이다. 어려운 한자어가 더 있어 보이니 ‘심심한 사과’를 썼다. 그것을 읽은 이들도 문맥상 무슨 뜻인지는 알지만 재미 삼아 시비조로 댓글을 달았다. 그렇게 심심하게 끝날 일을 언론에서 대서특필하고 입이 있는 이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면서 결국 문해력 논쟁으로 번져나갔다.
공지문 담당자가 잘못했다. 고객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으면 그들이 알아듣기 쉬운 말로 사과문을 썼어야 했다. 나이가 어린 고객들이 볼 글이면 ‘진심으로 죄송한 말씀’을 ‘심심한 사과’라 표현하지 말았어야 했다. ‘금일 우천시 중식 미정’을 읽는 이 중에 젊거나 많이 배우지 못한 이들도 있을 테니 ‘오늘 비가 올 경우 점심 메뉴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음’이라고 썼어야 했다. 말은 쉽게 하면서 글을 쓸 때는 괜히 어렵게 쓰려는, 혹은 남들이 오래전에 쓴 것을 베끼는 습관을 버렸어야 했다. 읽는 이들을 기준으로 내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어떻게 하면 분명하게 전달될까를 고민했어야 한다.
바늘을 방망이로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심심한 사과’는 문맥이 아닌 이 구절만 보면 오해의 소지가 분명히 있다. ‘하나, 이틀, 사흘’을 ‘1나, 2틀, 4흘’로 쓰는 것은 장난이든 실수이든 이전에도 있었다. ‘금요일’을 ‘금욜’로 말하는 세대에게 ‘금일’이 ‘금요일’로 들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사소한 말실수는 늘 있게 마련인데 이런 것들을 굳이 들춰내 그리 크게 떠들 일은 아니다.
과잉 진료와 엉터리 처방도 하지 말아야 한다. ‘요즘 젊은 것들’에 대한 비난은 함무라비 시대 훨씬 이전,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그 비난의 중요한 한 대상이 말이었고, 그 전형적인 대사는 “요즘 애들은 말을 너무 몰라”나 “요즘 애들 말은 이상해”였다. ‘사흘’과 ‘금일’로 누군가를 비난하는 이들도 올챙이 적에는 고유어든 한자어든 잘 모른다고 야단을 맞았다. 한자가 영어보다 훨씬 더 어려워졌고 말은 글보다 귀로 먼저 배우니 ‘주최(主催)’가 ‘주체’로 들리고 ‘염두(念頭)에 두다’가 ‘염두해 두다’로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자를 가르치면 해결될 문제이나 배우기 싫어하고 가르치기 어려운 그것에 얼마나 투자해야 할지 셈을 정확하게 하지 않고 무작정 한자교육을 주장해서도 안 된다. 물론 재미없는 책을 수없이 만들면서 무조건 읽으라고 강요해서도 안 된다.
사막에서 살아남는 법
‘요즘 젊은 것들’에 대한 비난, ‘요즘의 엉터리 말’에 대한 한탄의 세월과 정도를 헤아려보면 세상은 진작에 망했을 듯하고 지금의 말은 원숭이의 말보다 못했을 듯하다. 이전 세대가 진단하는 말과 글의 풍경은 늘 그렇듯이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대비는 늘 해야 하지만 암담한 미래를 예견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사흘’과 ‘금일’을 모르는 세대, ‘주체’와 ‘염두하다’를 쓰는 이들과 함께 소통하며 미래도 개척해나가야 한다. 사막화를 막는 법과 사막에서 살아남는 법을 동시에 모색해야 할 때다.
‘사흘’과 ‘금일’을 모르는 이들과는 ‘삼일’과 ‘오늘’로 소통하면 된다. ‘심심한 사과’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진심 어린 사과’를 하면 되고 더 어린 아이에게는 “진짜진짜 미안해”라고 말하면 된다. 이들이 좀 더 나이가 들면, 좀 더 배우면 ‘사흘, 금일, 심심한 사과’를 다 알게 된다. 지금도 그들은 성장하며 더 배우고 있으니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말을 하면서 소통하면 된다. 그렇게 애정 어린 시각으로 보면 말과 글의 요즘 풍경은 삭막하지만은 않다.
■필자 한성우
한국어의 방언과 말소리를 연구하는 국어학자이다. 삶 속의 말과 글을 쉽게 이해하고 깊게 생각하도록 돕는다. 첼로를 사랑하는 목수로서 또 하나의 삶을 살고 있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해 박사까지 마쳤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어규범정비위원회 위원이며, 한국방언학회 수석부회장이다. 문화방송(MBC) 우리말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방언정담> <우리 음식의 언어> <노래의 언어> <문화어 수업> <말의 주인이 되는 시간> <꿈을 찍는 공방> <방언, 이 땅의 모든 말> 등의 책을 썼다.
한성우 국어학자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프고 계속 커지는 켈로이드 흉터··· 구멍내고 얼리면 더 빨리 치료된다
- “남잔데 숙대 지원했다”···교수님이 재워주는 ‘숙면여대’ 대박 비결은
- [스경X이슈] 반성문 소용無, ‘3아웃’ 박상민도 집유인데 김호중은 실형··· ‘괘씸죄’ 통했다
- ‘해를 품은 달’ 배우 송재림 숨진 채 발견
- 윤 대통령 골프 라운딩 논란…“트럼프 외교 준비” 대 “그 시간에 공부를”
- ‘검찰개혁 선봉’ 박은정, 혁신당 탄핵추진위 사임···왜?
- 한동훈 대표와 가족 명의로 수백건…윤 대통령 부부 비판 글의 정체는?
- “그는 사실상 대통령이 아니다” 1인 시국선언한 장학사…교육청은 “법률 위반 검토”
- 3200억대 가상자산 투자리딩 사기조직 체포… 역대 최대 규모
- 머스크가 이끌 ‘정부효율부’는 무엇…정부 부처 아닌 자문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