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선 한물간 이슈…‘금투세 악재’ 공포는 과장됐다[세금은 죄가 없다]

윤지원·김경민 기자 2024. 8. 1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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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금융투자세, 오해와 편견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14일 딜러들이 코스피지수와 환율 등이 표시된 전광판 앞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정효진 기자 hoho@kyunghyang.com
새로운 세제 영향 미치는 시점
일반적으로 시행 아닌 확정일
금투세 도입 발표 때 잠시 하락
국회 통과 땐 종가 역대 최고점
미국 기준금리 인하 앞둔 상태
개인 채권 보유액 55조원 육박
차익 기대가 세제 영향보다 커
‘단타 조장’ 주장도 근거 불충분

주식·펀드·채권 등 금융투자상품에서 실현된 일정 규모 이상의 소득에 부과하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의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정부와 정치권, 증권업계, 투자자들 사이에서 폐지·유예론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금투세가 시행되면 세금을 피하기 위해 국내 증시에서 대거 자금이 빠져나가고 가뜩이나 취약한 증시가 더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조세가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시점은 시행일이 아니라, 세제가 확정된 직후라는 게 기존 연구와 해외 사례에서 증명된 바다. 금투세 역시 2020년 정부가 도입을 발표한 시점에 시장에 선반영됐고, 그 영향은 투자자들이 체감하지 못할 만큼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대만에선 상장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가 발표된 1988년 9월 증시가 크게 하락했다. 국내 파생상품에 대한 양도소득세 세율 인상 정책도 2017년 발표 직후 6개월간 거래량이 27% 줄어드는 식으로 시장에 반영됐다. 두 사례 모두 정작 과세가 시행된 이후에는 증시와 거래량이 크게 반등하며, 세제 발표 직후 나타났던 부정적 영향을 상쇄했다.

이를 감안하면 금투세 역시 기획재정부가 처음 도입 방침을 발표한 2020년 6월25일, 이를 담은 세법이 국회를 통과해 확정된 그해 12월 증시에 단기적 영향이 나타났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시 금투세의 ‘흔적’은 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키움증권 등 일부 증권주가 6월 세제 발표 후 이례적인 하락폭을 기록하긴 했지만 일주일 만에 낙폭을 만회했다. 당시 업계는 과세에 따른 투자심리 위축은 단기적이고, 거래대금은 국내외 경기 전망과 시중 유동성에 좌우된다며 증권주 매수의견을 유지했는데 이 예측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해 증시는 2분기 이후 무서운 기세로 상승해 12월30일 종가 기준 역대 최고점을 찍었다. 시중에 풀린 유동성을 본 시장이 증시 상승에 더 큰 베팅을 하면서 세제 변수는 사실상 상쇄된 것으로 풀이된다. 금투세 제정 태스크포스(TF)에 수년간 참여한 A박사는 “주식시장의 기본적인 성격은 ‘지금 나온 정보를 즉시 주가에 반영한다’는 것”이라며 “2020년 6~12월 금투세로 거래량이 떨어지거나 주가가 하락하는 영향이 없었는데, 그때 시장의 금투세에 대한 판단은 끝났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차익을 내려는 투자자의 기본 심리가 세제 변수보다 더 크게 작용하는 일도 많다. 금투세로 대규모 매도 가능성이 높아진 채권시장은 시행일을 5개월 앞둔 지금까지 ‘본드런’(채권 대량 매도)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기존에 비과세였던 채권 매매차익은 금투세 도입 이후 250만원을 넘으면 최대 27.5%의 세금이 부과된다. 세금만 보면 금투세 시행일 전에 채권을 처분하고, 시행일 후 채권시장 참여가 크게 위축되어야 하는데 실제 현장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개인투자자의 채권 보유 총액은 2020년 10조9500억원에서 올 상반기 54조9000억원으로 5배 올랐다. 미국 기준금리 인하를 앞둔 현시점에서 투자자들은 금투세와 별개로 더 큰 시세차익을 노리고 채권 투자 비중을 늘리고 있다. 강승원 NH투자증권 FICC리서치부 연구원은 “현장에서 금투세에 대한 불안감을 토로하는 투자자도 볼 수 있고, 금투세가 두 번 유예되면서 관망심리도 공존한다”면서도 “현재 채권시장의 화두는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큰 상황이라 개인 매도세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하반기에 개인들이 채권을 팔아치울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세금이 투자 결정을 내릴 때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조세정책에 정통한 기재부 관료는 “세금은 결국 벌고 난 뒤 수익에 관한 사후 문제”라며 “세금을 내고도 가져올 이익이 크다면 매도 결정은 미룰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용원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도 “개인들의 매수·매도 판단은 투자상품의 내재가치, 대외여건, 투자 포트폴리오를 종합해 나올 수밖에 없다”며 “대만 사례에서 보듯 과세 영향은 단기적으로 그친다”고 했다.

그럼에도 정부와 정치권은 ‘큰손 투자자 이탈→주가 하락→증시 침체→개인투자자 1400만명 피해’라는 주장을 거두지 않는다.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금투세 시행 직후 ‘큰손’들이 이탈하더라도 그게 주가 하락, 증시 침체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개별 종목과 국내 증시 펀더멘털이 달라지지 않는 한, 슈퍼 개미가 던진 물량을 기관과 외국인들이 매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년 12월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보통 12월은 슈퍼 개미들이 대주주 명부에 올라 양도세가 부과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보유 물량을 팔아치우는 시기다. 지난해 12월에도 개인투자자가 코스피에서 한 달 동안 7조원 규모의 주식을 순매도했는데 이는 그해 1~11월 전체 순매도(3조8780억원) 규모를 크게 웃돌았다. 그럼에도 12월 증시는 4.73% 올랐다. 외국인과 기관투자가가 7조원 넘게 순매수하며 증시 하방 압력을 떠받쳤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금투세가 단타를 부추겨 주식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절세 방식으론 가능한 논리지만, 과세를 피하기 위해 차익 실현을 뒤로 미루는 ‘동결효과’가 일어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게 여러 연구들의 결론이다. 오히려 장기 투자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A박사는 “1억원을 벌 수 있는 사람들이 단지 세금 때문에 5000만원 단위로 끊어 매도, 재매수한다는 것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정부가 내세운 자금 이탈, 증시 침체 주장은 조세 저항심리에 기댄 ‘우기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 분야 교수도 “당국은 해외로 자금이 유출될 것이라면서 그 규모도 특정하지 못한다”며 “근거 없는 선동으로 조세 형평성에 어긋난 현 과세 제도가 유지된다면 그것이 사회적 손실”이라고 밝혔다.

윤지원·김경민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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