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대응댐’ 용어 자체가 모순”…전문가 한목소리 비판
“기후대응 ‘적응’·‘완화’ 측면에서 댐 역할 못해
신규댐 건설보다 기존 시설 최적화로 대응해야”
환경부가 추진하는 ‘기후대응댐’을 주제로 14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기후대응댐이 실제 기후대응과는 무관하며 추진할 필요성도 없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쏟아졌다.
환경부는 지난달 30일 기후위기로 인한 극한 홍수와 가뭄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국가 전략산업의 미래 용수 수요 등을 뒷받침하기 위해 기후대응댐을 짓겠다며 14곳의 후보지를 발표했다.
박창근 대한하천학회 회장은 “정부가 홍수와 가뭄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물정책에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4대강 사업의 어두운 그림자가 묻어난다”며 “이명박 정부가 4대강을 죽이는 사업을 ‘살리기’라는 눈속임 레토릭(수사법)으로 포장했듯이 (윤 정부도) 기후대응댐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홍수 예방은 하천제방 높이기, 하천 폭 넓히기, 저류지 설치, 빗물 저류조와 펌프장 설치, 방수로 건설, 준설 등과 같이 여러가지 방법으로 하천마다 다르고 지역마다 다르다”며 “치수 예산이 국민의 혈세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정 녹색정치랩 그레 소장은 “기후위기 대응의 두 축인 변화하는 기후에 대한 ‘적응’과 탄소배출을 줄이는 ‘완화’라는 두 측면에서 모두 댐이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외국에서는 이미 많이 하고 있고, 그래서 오히려 있는 댐도 철거하는 추세”라며 “기후대응댐이라는 말 자체가 형용모순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상헌 한신대 평화교양대학 교수도 댐이 건설 과정에 많은 에너지가 투입되면서 온실가스를 대량 발생시키고, 건설된 뒤에는 담수된 물 속에서 이뤄지는 유기물 분해를 통해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을 방출하는 점 등을 근거로 들며 “기후대응댐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적인 용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극단적으로 변화하는 기후패턴으로 설계 범위를 넘어서 발생하는 홍수를 어떻게 고정적인 댐 건설로 통제할 수 있느냐”며 “설계범위를 넘어서는 홍수가 발생할 경우 댐은 그대로 물폭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경오 국립한경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환경부가 추진하는 14개 기후대응댐 가운데 최대 규모인 양구 수입천댐(저수량 1억톤)을 지목해 “화천댐을 용수공급용으로 활용하면 되는데 쓸데없는 댐을 만들고 있다”며 “북한강 수계에는 이미 다수의 댐들이 존재하고 있어 신규댐을 만드는 구조적 대책 대신 발전용댐을 용수 공급에 사용하는 것 같은 비구조적 대책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백 교수는 또 환경부가 용수공급용으로 건설하려는 섬진강 동복천댐에 대해서도 “2023년 봄 가뭄 당시 광주에서 제한급수까지 가기 직전인 상황에도 영산강에는 물이 많이 있었지만 더러워서 취수를 못했을 뿐”이라며 “더 이상 섬진강에 댐을 짓지 말고 영산강 수계 수질을 개선하는 정책을 추진해 영산강물을 취수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는 “기후위기 시대에 댐 건설은 100년 전에나 할 법한 대책”이라고 말했다.
제1기 국가물관리위원회 위원으로 물관리기본계획 수립에 참여한 염형철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대표는 환경부가 기후대응댐을 통해 2.5억톤의 용수를 확보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제1차 물관리기본계획을 보면 삼성반도체 투자 등을 염두에 둔 2.5억톤 공급계획을 다 수용하고도 2030년에 물이 4억톤 정도 남는다”며 “이 계획은 산업계의 물 공급 요구를 100% 수용하고, 계산 가능한 최대 가뭄이 발생했을 때도 수요 관리를 안하고 그대로 물을 다 공급해주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환경부가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물이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며 “물 정책을 정쟁화해서 국민을 편가르기 하려는데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을 지낸 박재현 인제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홍수조절용 7개 댐들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이 2200만톤 규모의 회야강 회야댐 재개발”이라며 “이 정도 규모의 댐들을 이용해 극한홍수를 방어할 수 있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극한홍수 방어 관점에서는 디지털 전환을 통해 지금 가지고 있는 시설들을 최적화하고, 홍수 저류지를 확보하고, 유역별 홍수 총량을 설정해 관리하는 홍수총량제를 도입하고, 풍수해보험을 확대해 피해를 빨리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방법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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