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러 영토 점령에도 "미끼 안 물었다"…러, 동부 공격 강화
우크라이나가 8일째 러시아 남서부 쿠르스크 지역에서 공세를 벌이고 있지만 러시아는 오히려 격전지 우크라이나 동부 공격을 강화했다. 전문가들은 작전 장기화 땐 전선이 확대돼 병력이 부족한 우크라이나군에 불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로이터>, <AP> 통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소셜미디어(SNS)를 종합하면 13일(이하 현지시간)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은 지난 24시간 동안 쿠르스크에서 우크라이나군이 1~3km를 더 진격해 이 지역 40㎢를 추가로 장악했고 점령된 정착지가 74곳에 달한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어렵고 격렬한 전투에도 우리 군이 쿠르스크 지역에서 계속해서 전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미 수백 명의 러시아군이 항복해 "교환 자원이 확대됐다"며 러시아 영토 점령이 포로 교환을 포함해 협상 전략의 일부일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는 구체적 언급 없이 작전의 "다음 단계"가 준비 중이라고도 했다.
반면 러시아 쪽은 쿠르스크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진격을 차단했다고 밝혔다. 러 국영 <타스> 통신과 <로이터>를 보면 13일 압티 알라우디노프 체첸공화국 아흐마트 특수부대 사령관은 쿠르스크 지역에서 "적의 통제 불능의 질주는 이미 중단됐다"며 우크라이나 인력과 장비에 막대한 손실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러 국방부는 지난 하루 동안 우크라이나군이 쿠르스크에서 군인 420명과 장갑차 55대를 잃었으며 국경에서 26~28km 떨어진 마을들에서 격퇴됐다고 밝혔다.
양쪽의 주장을 즉시 검증할 순 없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군을 국경 밖으로 밀어내지 못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6일 쿠르스크 진격을 시작한 우크라이나 쪽은 전날 이 지역 1000㎢ 면적을 통제 중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같은 날 알렉세이 스미르노프 쿠르스크 주지사 대행은 우크라이나가 이 지역에서 28개 정착촌을 통제 중이고 국경 내 12km 깊이로 전진했으며 폭은 40km에 달한다고 밝혔다.
13일 미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지리적 위치 확인이 가능한 영상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군이 쿠르스크 내 약 41개 정착촌에서 활동하는 것을 관찰했고 매우 작은 정착촌의 경우 계산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공세로 인한 러시아 피난민은 거의 20만 명에 달했다. <로이터> 통신을 보면 스미르노프 주지사 대행은 쿠르스크 지역에서 약 18만 명이 대피했거나 대피 준비 중이라고 밝혔고 인근 벨고로드 지역의 뱌체슬라프 글래드코프 주지사도 이 지역에서 1만1000명이 대피했다고 했다.
러시아 영토 점령으로 우크라이나군의 사기는 크게 올랐지만 주요 목적으로 추정되는 동부 도네츠크 전선에서 러시아군 분산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3일 <AP> 통신, <로이터>를 보면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24시간 동안 러시아군이 도네츠크 포크로우스크 전선에서 52회 공격을 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주 하루 28~42회 공격에 비해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AP>는 "포크로우스크 인근 압박이 늘어난 것은 러시아가 미끼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러시아 쪽은 주요 전장 군사를 재배치하기보다 우크라이나의 본토 침입을 "테러"로 규정하고 국가방위군과 연방보안국(FSB)에 대응을 명령한 상태다. 전쟁연구소는 13일 분석에서 이에 더해 남부 헤르손 등 덜 중요한 전선에서 차출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13일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의 이번 공세가 "큰 도박"이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내 점령지를 유지할 수 있다면 러시아군 병력을 분산하고 푸틴 대통령을 당황하게 해 협상에서 유리한 카드를 얻을 수 있지만 러시아가 쿠르스크에서 우크라이나군을 밀어내고 동부로 진격한다면 결국 전력을 분산해 러시아에 도네츠크 영토 확보의 기회를 줬다는 비난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도 이번 공세에 대한 판단에 조심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미 당국자들이 지금까지 작전이 잘 진행돼 놀랐지만 우크라이나가 점령지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라고 밝혔다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들은 침공으로 전선이 늘어남에 따라 우크라이나의 새로운 취약점이 형성됐다고 우려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비해 병력이 부족해 전선이 확장될 경우 결과적으로 불리해질 수 있다. 러시아 영토로 더 깊게 들어갈 경우 보급선과 더 멀어진다는 위험도 있다.
독일 도이체벨레(DW) 방송은 범유럽 싱크탱크 유럽외교협회(ECFR) 구스타프 그레셀 선임 연구원도 쿠르스크 공세가 "사기 진작엔 도움이 되지만 전쟁에선 중요하지 않다"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진격을 막기 위해 동부에서 군사를 이동시고 있다는 징후는 없다"고 분석했다고 전했다.
미국은 이번 공세에 대해 사전에 통보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13일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언론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가 사전에 미국에 쿠르스크 침공을 알렸냐는 질문을 받고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미국이 이 공세에 "관여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미 당국자들도 우크라이나로부 공식적 사전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우크라이나가 작전 계획 유출 및 미국이 작전을 취소하라고 설득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우크라이나는 통제 중인 러시아 영토를 병합할 예정이 없다고 밝혔다. 헤오르히 티크히 우크라이나 외무부 대변인은 13일 언론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는 쿠르스크 지역 영토 점령에 관심이 없고 자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여름에만 쿠르스크 지역으로부터 우크라이나로 2000건 이상의 공습이 이뤄졌다"며 공격이 방어적 성격이라고 주장했다. 또 쿠르스크 공격이 "도네츠크 지역으로 러시아군이 추가로 이동하는 것을 막고 병참을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에 최전선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침공이 우크라이나 전략 변경 신호라는 관측도 있다. 13일 도이체벨레는 미 뉴햄프셔대 젠 스핀델 정치학 교수가 인력과 무기 부족으로 "우크라이나가 지난 2년간과 같은 방식으로 전투를 계속할 수 없다"며 "분쟁을 러시아 내부로 가져와야 전장에 남을 수 있는 희망이 있다"고 분석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작전을 우크라이나가 전략을 약간 바꾸려는 시도로 본다"며 "이런 작전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전현희 "살인자" 발언에 대통령실 "고인 죽음 이르게 한 건 민주당"
- 우크라 러 영토 점령에도 "미끼 안 물었다"…러, 동부 공격 강화
- 검사탄핵 청문회, 주요 증인 불출석에 '권익위 논쟁' 파행까지
- '한동훈 컬러' 더 짙어졌다…대폭 교체로 당직인선 마무리
- 사이버 렉카 '구제역·카라큘라' 등 줄줄이 구속된 채로 재판행
- 윤석열과 11번 만났던 단짝 기시다, 지지율 10% 전전하다 연임 포기
- 尹대통령 "자유민주 정부 수립 영웅들, 한강의 기적 이끈 지도자 있었다"
- 한동훈에 '견제구' 던진 오세훈 "韓은 평생 수사, 나는 서울시장직 경험"
- 야권·시민단체, 광복절 맞아 "뉴라이트 독립기념관장 사퇴"
- 與김성태 "독립기념관장, '일본 국적' 발언 부적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