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미미 선수와 슬픈 광복절 [크리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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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파리 올림픽이 있었기에 기록적인 무더위를 조금이라도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희귀병으로 오랜 세월 투병 중임에도 혼신의 열창을 선보인 셀린 디옹의 '사랑의 찬가', 이제는 가본 지 10년이 가까운 파리 곳곳의 정경, 인간 육체의 찬란한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참가 선수들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무더위를 잊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내게는 허미미의 존재 못지않게 일본에 뿌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던 독립투사 허석의 후손에 대한 생각이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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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우 | 숙명여대 교수·문학평론가
그나마 파리 올림픽이 있었기에 기록적인 무더위를 조금이라도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희귀병으로 오랜 세월 투병 중임에도 혼신의 열창을 선보인 셀린 디옹의 ‘사랑의 찬가’, 이제는 가본 지 10년이 가까운 파리 곳곳의 정경, 인간 육체의 찬란한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참가 선수들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무더위를 잊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몇몇 한국 선수들의 모습도 너무나 인상적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유도 허미미 선수의 환한 미소가 뇌리에 계속 아른거렸다. 허미미는 아버지가 한국 국적, 어머니가 일본 국적이기에 선천적인 이중국적자였다. 학창 시절 일본 유도의 최고 유망주였던 그녀는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연고가 없는 한국행을 선택한다. 와세다대학 신입생이었던 2021년에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일본 국적을 포기하는 과정을 통해 2022년 결국 한국 국가대표로 선발된다.
그녀의 이런 선택에는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올림픽에 나갔으면 좋겠다는 할머니의 유언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소속팀 경북체육회의 수소문을 통해, 허미미가 항일 독립운동가 허석(1857~1920)의 5대손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마침내 허미미는 이번 올림픽에서 개인전 은메달과 단체전 동메달을 획득한 후, 대구 군위군에 있는 허석의 추모비를 찾아 메달을 바쳤다.
이 모든 행보가 한 편의 영화로 만들만한 스토리가 아닌가 싶다. 내게는 허미미의 존재 못지않게 일본에 뿌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던 독립투사 허석의 후손에 대한 생각이 미쳤다. 그들에게 어떤 사연과 곡절이 있었던 것인가, 그들은 일본에서 어떻게 살아갔을까. 이런 생각을 곰곰이 하며 최근에 개봉된 영화 ‘조선인 여공의 노래’를 보았다. 100석 남짓 영화관에 관객은 나를 포함해 단 두 명이었다.
영화는 오사카 한인 타운에 이르는 관문인 쓰루하시역 인근과 히라노 운하를 비추면서 시작한다. 히라노 운하는 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건설했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조선인들이 모이며 정착했다. 1930년 무렵 일본 기시와다 방적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던 조선인 여공들의 삶과 죽음, 일상과 애환, 투쟁과 의기가 ‘조선인 여공의 노래’의 주된 스토리다. 그녀들은 자신을 ‘조선 돼지’로 부르며 멸시하는 시선과 노골적인 차별에 맞서 강인한 삶을 영위한다. 고국의 가족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이국 일본에서 조선어를 배우는 먹먹한 모습은 민족교육의 기원을 묘사하는 장면일 테다. 일본에 정착한 허석의 후손 중에서도 이 조선인 여공들과 비슷한 삶을 영위한 경우가 있었으리라.
이 영화는 오래전 재일 한인 김찬정이 쓴 일본어책 ‘조선인 여공의 노래’(이와나미신서, 1982)에서 제목과 내용을 가져왔다. 영화 ‘조선인 여공의 노래’는 아직 온전히 알려지지 않았기에 미처 영화화되지 못한 역사의 상흔은 얼마나 많을까, 라는 쓰디쓴 각성을 불러일으킨다. 책 ‘조선인 여공의 노래’의 1부 1절의 제목은 ‘고향은 슬프고’이다. 하지만 조선인 여공들은 그 슬픔을 딛고 정당한 권리와 민족적 자존을 찾기 위한 투쟁에 나선다.
백여 년 전에 이국 일본에서 ‘슬픈 고향’을 그리워했던 여성 노동자들과 허미미의 5대 조부인 항일 독립운동가 허석의 존재를 생각하면, 오늘 독립기념관이 주관할 예정이던 광복절 경축식이 개관 이후 처음으로 취소되고 천안시가 자체적으로 열기로 한 건 참담한 사건이다. 슬프고 모욕적인 광복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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