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위안부 기림의 날
“아무한테도 말 안 할 거야. 방직공장 다녀왔다 그래야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두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눈길>에서 영애는 종분에게 참혹한 과거를 알리는 대신 침묵하겠다고 한다. 혼자 살아남은 종분 역시 이 사실을 숨기고 사는 건 마찬가지다. 성폭력 사실을 수치스럽게 여기던 한국 문화에서 실제로 많은 생존 피해자들이 소리를 내지 못했다.
강고한 침묵의 벽을 부순 건 김학순 인권활동가의 고백이었다. “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입니다.” 1991년 8월14일, 그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개 증언했다. 그의 회견은 위안부 생존 피해자 존재를 부정해 온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해 ‘내가 증거다’라는 절규였다.
그의 용기는 ‘순결 잃은 여자’라는 낙인에 몸을 숨겼던 많은 김학순들을 깨웠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각국의 피해 생존자들도 잇따라 증언했다. 그 이듬해인 1992년부터 수요시위가 시작됐고 세계 각국 의회의 결의 채택까지 그의 증언은 수많은 변화를 이끌어 냈다. 결국 일본은 1993년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 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
김 활동가가 증언한 날은 ‘세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제정됐다. 2017년 국가 기념일이 됐다. 14일 기림의 날을 맞아 서울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세계연대집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일본 정부는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에게 공식사죄하라”는 팻말을 들었다.
아직 피해 생존자들은 사과 한마디를 못 들었다. “미안합니다”가 그리 어려운가. 아무래도 일본 정부는 시간이 자신들 편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피해자가 사라지면, 잘못도 사라진다는 착각 말이다.
올해는 광복절마저 두 쪽으로 쪼개졌다. 광복회가 뉴라이트 성향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의 임명 철회를 요구하며 처음으로 기념식 불참을 선언했다. 일본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로 굴욕외교 도마에 오른 윤석열 정부가 ‘역사 뒤집기’엔 잰걸음을 하고 있다. 일본과의 과거사 청산에 이런 리더십을 발휘했다면 시민들이 무더위에 손팻말을 들고, 나라를 걱정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광복절을 맞는 마음이 무겁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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