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분열 자초, 귀 닫은 윤…이준석 “정상 아니다”
민주당 “친일 매국 정권”
정부와 광복회가 제79주년 광복절 기념식을 따로 연다. 광복절을 채 열흘도 남겨두지 않은 지난 6일 윤석열 대통령이 ‘친일’ 시비에 휘말린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강행한 게 발단이었다. 김 관장 임명을 철회하라는 광복회와 독립운동 유관단체, 역사학계 등의 요구에 윤 대통령이 귀를 틀어막으면서 우려했던 ‘반쪽 기념식’은 현실화되고 말았다. 김 관장 임명 철회에 뜻을 같이해온 야당도 정부 주관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윤 대통령은 14일 청와대 영빈관으로 독립유공자 후손 100여명을 초청해 오찬을 하며 “독립의 정신과 유산이 영원히 기억되고, 유공자와 후손들이 합당한 예우를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이동일 순국선열유족회 회장, 명노승 매헌윤봉길기념사업회 이사장, 김재실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회장, 이미애 백초월스님선양회 대표, 정수용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회장 등 독립운동 유관단체 대표들이 참석했으나, 독립유공자 및 유족들의 모임인 광복회의 이종찬 회장은 불참했다. 대통령실은 이 회장에게 전광삼 시민사회수석을 보내고 정진석 비서실장이 전화해 참석을 설득했으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이 회장과 광복회는 김형석 관장 임명 직후부터 ‘뉴라이트 성향으로 친일파를 두둔하고 친일적 역사 인식을 보여왔기 때문에 독립기념관장 자격이 없다’며 윤 대통령의 임명 철회와 김 관장의 자진 사퇴를 강하게 압박해왔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이날도 “윤 대통령은 김 관장과 일면식도 없다. 절차대로 임명했을 뿐”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김 관장도 이날 오후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퇴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안팎의 거취 결단 요구를 일축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김 관장은 광복회가 문제 제기한 건국절에 반대한다고 밝혔고, 우리도 건국절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메시지를 이 회장에게도 전했다”고 했다.
대통령실로선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했으니 공은 광복회로 넘어갔다는 뜻이다. 이런 대통령실 분위기에선 ‘김 관장에게 결격 사유가 없는데도 임명을 철회하라는 건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불쾌감도 감지된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이날도 시비에스(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최근 윤석열 정부의 인사를 보면) 완전히 ‘친일파들의 판’을 만들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고 했다.
광복회를 비롯한 37개 독립운동 관련 단체가 결성한 ‘독립운동단체연합’은 이날 광복절 자체 기념식을 15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 백범기념관에서 따로 개최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다만 광복회는 정부 경축식에 불참하는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로 기념식에 정당, 정치권 인사를 일절 초청하지 않기로 했다. 같은 시각 정부가 주관하는 공식 경축식은 백범기념관에서 3.5㎞ 떨어진 태평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김 관장 임명을 강하게 비판해온 우원식 국회의장은 정부가 주최하는 광복절 경축식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새로운미래, 사회민주당, 기본소득당 등 야 6당도 당 차원에서 불참한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도 “정부 여당의 기조가 정상이 아니다”라며 정부 경축식 불참을 선언했다. 민주당은 지도부를 중심으로 백범기념관이 있는 효창공원의 독립운동가 묘역을 참배할 계획이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광복 79주년 국회-시민사회 1000인 선언’ 규탄대회를 열어 정부의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강행과 일본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졸속 협상,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 추진,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 등 윤석열 정부 출범 뒤 ‘비대칭적’ 한-일 관계를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앞서 박찬대 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아침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올해 광복절은 우리 역사의 오점으로 기록될 것 같다. 윤석열 정권은 사실상 정신적 내선 일체 단계에 접어든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친일 매국 정권”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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