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헌병경찰에 빼앗긴 '의병의 기록' 110년 만에 귀환

2024. 8. 14.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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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보라 앵커>

110년 전 일본의 침략에 맞섰던 의병들의 흔적이 광복절을 앞두고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자주독립 국가를 향한 의지가 담긴 '한말 의병 관련 문서'와 '한일관계사료집', '조현묘각운 시판' 등 3점이 처음 공개됐는데요.

보도에 김찬규 기자입니다.

김찬규 기자>

길게 늘어진 두루마리 위에 한자가 빼곡히 적힌 문서.

일제 헌병경찰이었던 '개천장치'가 탈취한 자료를 모아 1939년 8월 제작한 두루마리입니다.

길이가 각각 4m, 6m에 가까운 두루마리에는 1851년부터 1909년까지 작성된 한말 의병 관련 문서 13건이 담겨있습니다.

1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본에 있었던 의병들의 기록이 광복절을 앞두고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녹취> 최응천 / 국가유산청장

"(국외소재)문화유산을 국내로 되찾아온 물리적 회복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우리 선조들이 조국을 지켜왔던 정신을 오롯이 회복하는 값진 성과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개천장치가 각 두루마리에 남긴 제목에는 일제가 의병을 탄압하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최익현 등 항일 의병장의 편지 옆에는 개천장치가 직접 써 내려간 주석도 달려있습니다.

13도 창의군 총대장 허위가 붙잡힌 당일 작성한 공문서도 두루마리에 표장돼 있습니다.

의병들의 활동과 체포 과정이 생생하게 기록된 최초의 자료입니다.

인터뷰> 박민영 /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

"(개천장치가) 헌병경찰로서 한국 독립운동을 탄압했던 그 실증할 수 있는 자료가 오늘 우리 눈앞에 나타난 게 가장 큰 의미가 있지 않나..."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제연맹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요구하기 위해 유일하게 편찬한 역사서, '한일관계사료집'도 함께 돌아왔습니다.

한일 관계사를 중심으로 삼국시대부터 연대별로 일본의 침략성을 실증하고, 식민 탄압의 잔혹함과 3.1 운동의 원인부터 전개 과정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편찬 당시 100질이 제작됐지만 완전한 형태로 전하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인 데다 집필자인 독립운동가 김병조의 인장이 날인돼 있어 그 가치가 높다고 국가유산청은 설명했습니다.

이와 함께 브나로드 운동과 항일 언론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송진우의 아버지가 직접 쓴 '조현묘각운' 시판도 환수됐습니다.

(영상취재: 유병덕 이수경 / 영상편집: 정성헌 / 영상그래픽: 김지영)

국가유산청은 이번 환수 유물을 대중에 공개할 수 있도록 검토하는 한편 국외소재문화유산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환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KTV 김찬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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