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전생각에 갇힌 디폴트옵션 … 90%가 초저위험 상품 집중
시행 1년 적립금 33조 중
29.3조가 '원리금 보장형'
전체상품 年수익률 11%인데
초저위험 고작 3%대에 그쳐
"가입자가 위험도 사전 지정
제도 목적에 정면으로 배치"
◆ 퇴직연금 이젠 투자로 ◆
30대 투자자 A씨는 올해 초 퇴직연금 주거래 은행을 바꾸면서 고민 없이 투자성향 분석을 했다가 크게 후회했다. 투자성향이 초저위험으로 판정되면서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A씨는 올해 초 시장이 좋다 보니 비슷한 금액을 S&P500과 같은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했으면 훨씬 수익률이 높다는 것을 알았다. 수익 기회를 놓쳐 버린 A씨는 이번에 디폴트옵션을 공격적인 상품으로 모두 바꿨다.
디폴트옵션 시행 1년이 넘었지만 지난 2분기 말 기준으로 예금 수준의 수익률을 내는 '초저위험' 상품에 전체 디폴트옵션 적립금액의 90% 가까이가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디폴트옵션이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만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1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분기 말 디폴트옵션 총 적립금 32조9095억원 가운데 89.17%인 29조3478억원이 초저위험 상품에 몰렸다.
디폴트옵션 적립금액이 가장 많은 은행은 6조778억원이 몰린 KB국민은행이다. 신한은행도 5조8268억원이 몰렸고 IBK기업은행이 4조8845억원, 하나은행이 3조4184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디폴트옵션은 근로자 개인이 운용 책임을 지는 확정기여(DC)형 혹은 개인형 퇴직연금(IRP)에서 투자 상품의 만기가 도래했는데도 가입자가 적립금 운용 방법을 지시하지 않으면 가입자가 사전에 정해둔 방법으로 민간 금융회사(퇴직연금사업자)가 적립금을 자동으로 운용하는 제도다.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취지로 2022년 7월 12일 도입된 뒤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해 7월 12일부터 전면 시행됐다.
디폴트옵션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디폴트옵션 적립금액은 12조5520억원이었는데 한 분기 만에 13조원 증가해 2배가 됐고, 올해 2분기에도 디폴트옵션은 7조원 이상 증가했다. 올 상반기 동안 20조원 이상 증가한 셈이다.
그러나 '초저위험' 적립금액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체의 89.9%에 해당하는 11조2879억원이고, 올해 상반기 말엔 29조3478억원으로 18조원 증가했다는 걸 감안하면 상반기 늘어난 금액의 대부분이 초저위험 상품으로 흘러간 것이다.
당연히 수익률도 아쉽다. 디폴트옵션 전체 수익률은 10.82%이지만 초저위험 상품만 놓고 보면 수익률이 3.47%로 저조했다. 대부분의 자금이 초저위험에 쏠렸는데도 전체 수익률이 10.82%라는 것은 보다 공격적인 상품을 택한 가입자의 수익률이 월등하게 나타나 전체 평균값을 끌어올렸다는 얘기다.
금융업계에서는 디폴트옵션의 취지가 빛이 바랬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장 큰 원인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이다. 한국은 미국, 영국, 호주 등 퇴직연금이 발달한 주요 선진국의 디폴트옵션 제도를 벤치마킹해 만들었다. 하지만 이들 국가 중 원리금 보장형 디폴트옵션 상품을 판매하는 곳은 없다. 한국과 일본만이 원리금 보장형 디폴트옵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한국의 디폴트옵션 상품이 위험 등급별로 나뉘어 가입자가 사전 지정할 수 있다는 점도 수익률 개선을 어렵게 한다. 위험 등급은 '초저위험-저위험-중위험-고위험'으로 매겨지며 가입자는 이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가입자가 위험 등급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체제에서 다수의 가입자는 위험이 낮은 대신 수익을 내기도 어려운 위험 회피적 선택을 하게 된다.
국민연금연구원은 '퇴직연금의 노후 소득 보장 기능 강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디폴트옵션 제도를 도입한 이후에도 의무적으로 근로자 개인이 다시 상품을 지정해야 한다는 것은 디폴트 제도의 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디폴트옵션
확정기여(DC)형 혹은 개인형 퇴직연금(IRP) 가입자가 적립금 운용 방법을 따로 지시하지 않으면 사전에 정해둔 방법으로 자동 운용하는 제도. 지난해 7월부터 본격 실행됐다.
[최근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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