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현의 금융과 경제] 티메프 사태가 남긴 과제
상품권·충전카드 등 이용해
이커머스도 자체 자금 조달
은행처럼 실질적 금융 기능
금융사 준하는 감시·규제 필요
최근 터진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의 본질은 큐텐 경영진의 자금 운용, 그리고 디지털 혁신에 따른 산업과 금융 간 경계가 약화되는 생태계 변화, 이렇게 두 가지 요인을 들 수 있다.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기업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금 조달을 하고자 한다. 과거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 전 유동성 위기에 처한 리먼이 ELS를 집중적으로 발행해 자금 조달을 한 것이 대표적 예다. 그러나 리먼과 달리 비금융회사의 경우 이러한 자체적 자본 조달 기능이 없기 때문에 과거에는 곧바로 파산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근 디지털 금융의 발달로 비금융회사도 일정 부분 자체적으로 자본 조달 기능을 갖추게 되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비금융회사로서 자금 조달 기능을 갖추게 되었지만 금융회사와 동일한 감독 및 규제가 적용되지 않다 보니 파산 때까지 일종의 폰지 스킴을 통한 추가 자금 조달이 가능해진 것이다. 즉 상기한 리먼의 사기성 자금 조달과 신산업 부상으로 인한 규제 틈새가 결합돼 티메프 사태가 터진 것이다.
사실 e커머스뿐 아니라 오프라인 유통회사, 더 나아가 제조업의 원청회사 등도 일종의 자체적 자금 조달 기능을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납품점에 대한 대금 정산을 장기화할 경우 그 기간 동안 납품점이 유통회사에 자금을 대여한 것과 같은 효과가 생긴다. 이렇다 보니 대형 유통회사의 납품점은 거래 규모가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역설적으로 자금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고, 그러다 보니 계속 을의 위치에서 유통사의 갑질에 당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여기에 상품권이나 충전식 카드를 발행할 경우 소비자로부터도 자금 조달이 가능하게 된다. 이를 활용한 임베디드 금융은 스타벅스의 'Deep Brew'가 대표적인데, 충전 후 기프티콘을 보내 실제 소비가 완료될 때까지 동 자금은 스타벅스에 쌓이게 된다. 작년 기준으로 이렇게 쌓인 미사용액 규모는 16억달러에 달하며, 여기서 얻게 되는 이자 수익만 1억2000만달러에 이른다.
미국 은행 중 85%가 자산 규모가 10억달러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감안하면 스타벅스를 왜 '커피를 파는 은행'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스타벅스 카드는 발행자와 가맹점이 일치하는 폐쇄형(closed loop card)이지만, 궁극적으로 동 카드를 이용해 스타벅스 외 다른 가맹점에서 사용이 가능한 오픈형(open loop card)으로 전환하는 것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기존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업체들은 이제 임베디드 금융을 통해 고객 충성도를 제고하고, 이러한 고객 충성도를 기반으로 실질적 금융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즉 금융과 산업 간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는데, 아직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도 이에 대한 규제책을 완비하지 못했다. 신산업의 육성과 소비자 및 납품업체 보호라는 두 가지 축에서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자금융거래법을 통해 이를 규제하고 있지만 이번 사태에서 보듯 e커머스 업체들의 모럴 해저드가 높은 데다 e커머스 업체, 소비자, 납품점 간 바게닝 파워에 불균형이 존재하는 만큼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가 나서서 소비자 및 납품점을 보호하는 쪽으로 무게 추를 움직일 필요가 있다. 한 가지 방법은 일정 이상의 거래 규모를 가진 대형 유통회사의 경우 준금융회사로 인식해 금융회사에 준하는 규제 및 감시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변경하고, 그 이하의 상거래 업체의 경우에도 상품권 판매를 자기자본비율에 비례해 허용하거나 판매대금과 운영자금의 분리, 그리고 정산대금 결제 주기 단축 등을 통해 소비자와 납품점을 동시에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사태는 본질적으로 이러한 규제 공백을 악용한 것이 문제의 핵심인 만큼 이를 위반할 경우 처벌을 민형사적으로 대폭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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