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 오면 40명만 현장에"···일용직 일자리 코로나때보다 줄어
◆ 경기 바로미터 인력소개소 가보니
건축주 일감 줄어들자 일당 깎아
일용직 월평균 임금 182만원 그쳐
정부, 고용보험 가입·생계비 지원
공사비 안정화·부실PF 퇴출 추진
“예전에는 일용직 일자리를 구하러 100명이 오면 건설 현장에 모두 나갈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40명 정도만 간신히 일을 구하는 상황입니다.” (서울 종로 K 인력소개소 사장)
“나이든 분들이 걱정입니다. 같은 인건비라면 현장에서는 비교적 젊은 사람을 원하거든요. 지난해부터는 인건비도 못 올리고 있습니다.” (서울 중구 B 인력소개소 사장)
지난해부터 이어진 건설 경기 침체로 건설 현장 일자리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일자리를 구하려는 수요가 줄면서 폐업을 하거나 폐업을 고민하는 인력소개소마저 늘고 있는 분위기다. 우려되는 것은 이들 근로자 대부분이 생계를 위해 건설 현장을 찾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급기야 건설 일자리 활성화를 위한 카드를 꺼내 들면서 위축된 일자리가 증가세로 돌아설지 관심이 쏠린다.
14일 서울경제신문이 서울과 경기에 있는 8곳의 인력소개소를 찾아본 결과 7곳이 건설 경기 침체로 일자리가 크게 줄었다고 답했다. 서울 혜화동에 있는 D 인력소개소 사장은 “13년 동안 인력사무소를 운영했는데 올 5월이 제일 ‘바닥’이었다”며 “코로나19 사태와 비교하면 현재 일자리가 50~60% 줄었다”고 말했다. 일자리가 감소하니 소개 수수료 역시 줄면서 폐업에 이른 소개소 또한 늘고 있다. 수익이 악화된 업체끼리 출혈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빚은 결과다. 서울 구로동에 있는 J 인력소개소 사장은 “남구로 쪽 인력사무소들 사이에서 몇 군데 망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돈다”며 “월세와 인건비 부담에 건설사에 묶은 미수금도 있어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문제는 저임금에 빠진 건설업 근로자의 임금이 늘지 않으면서 인력난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7월 건설 기업 경기실사지수는 72.2다. 이 지수는 100 이하면 경기를 부정적으로 본다는 기업이 더 많다는 뜻이다. 신규 수주 지수도 66.3에 그쳤다. 건설업 근로자가 상당수인 임시 일용직 근로자의 임금 상황은 더 열악하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5월 평균임금은 182만 9000원으로 전체 근로자 평균인 382만 3000원의 절반 수준이다. 경기 포천시에 있는 인력소개소 사장은 “일이 없다 보니 건축주가 인건비를 아끼려고 일당을 깎고 있다”며 “예전보다 5000원에서 1만 원가량 일당을 낮춰야 현장을 나갈 수 있다”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젊은 층이 떠난 건설 현장을 고령층이 메우고 있는데 이들의 구직이 더 어렵다는 점이다. 현장에서는 고령층이 일당을 더 낮춰서라도 현장에 나가려는 수요가 늘어난 상황이다. 서울 금천구에 있는 C 인력소개소 사장은 “인부들 연령대는 평균적으로 65~70세”라며 “젊은 친구들은 더우면 그냥 돌아간다. 일하려는 고령층만 많다 보니 일당이 계속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최근 주택 경기가 고금리, 공사 원가 상승 등으로 침체돼 단기간에 좋아지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건설업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공공주택 등 공공 발주를 늘리거나 토목 사업 등 인프라를 확충하면 건설 업체에 수주 물량을 제공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악화 일로에 빠진 건설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는 ‘4종 대책’을 예고했다. 현장 수주를 늘려 건설사와 구인난에 빠진 근로자를 보호하는 게 첫 단계다. 공사비를 낮추고 부실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을 퇴출하는 등 금융 관점에서 건설 시장의 구조적 문제에까지 메스를 댈 방침이다.
고용부와 기획재정부는 이날 정례 일자리전담반(TF) 회의를 열고 건설업 일자리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우선 8일 발표된 일자리 확대 정책은 하반기 공공기관 투자를 2조 원 규모로 확대하고 상반기 지방공기업 투자 등 8조 6000억 원 규모의 미집행액을 신속하게 집행해 유동성을 늘린다. 서울과 수도권에 42만 7000가구 등 주택공급 확대 방안 또한 마련된다.
이날 발표된 대책은 당장 일자리를 잃었거나 잃을 수 있는 건설업 근로자를 위한 지원 방안이다. 근로자 지원 부처인 고용부는 일용직 특성상 사회안전망 밖에 있던 건설업 근로자를 안으로 끌어올 방침이다. 대표적인 사회보험제도인 고용보험 가입을 늘리고 구직 정보를 확대하며 전직과 숙련을 위한 취업 교육을 강화한다.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를 위한 생계 지원도 이번 대책에 담겼다.
정부는 나머지 2종 대책을 통해 건설 시장의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방침이다. 다음 달 기재부를 비롯해 관계부처는 공사비 안정화 대책을 내놓는다. 자재비가 올라 공사 지연이 발생하고 민간기업이 자금난에 빠지는 악순환을 막겠다는 의도다. 대책에는 건설업 근로 환경 개선 등 건설 근로자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과 공사 자재 조달 제도에 대한 개선안도 담긴다.
마지막 대책은 PF 부실 사업장 퇴출이다. 올해 하반기에 발표될 부동산 PF 제도 개선 방안에는 정상 사업장의 경우 적시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사업성이 부족한 사업장은 정부가 흡수하는 안을 담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방식을 쓰기 위해 정부가 사업장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퇴출 사업장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김범석 기재부 1차관은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신속하게 추진하고 공사비 안정화 대책을 마련해 건설 일자리 수요를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양종곤 기자 ggm11@sedaily.com박민주 기자 mj@sedaily.com이승령 기자 yigija94@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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