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창시자→부메랑 맞은 정봉주…이재명 지도부 갈등 ‘트리거’ 될까
“열린민주당 욕설 사태 재현 가능” vs “자기 목소리 내면 민주당에도 플러스”
(시사저널=변문우 기자)
"'수박(겉은 더불어민주당 속은 국민의힘 표현하는 은어)'이라는 표현을 최초로 쓴 게 저입니다. (2020년 총선 당시) 금태섭 의원이 있는 자리에 경선 하러 가면서 제가 '수박' 의원들을 잡겠습니다. 겉은 파랗고 속은 빨간…" (정봉주 민주당 최고위원 후보의 2022년 5월4일 JTBC 《썰전라이브》 인터뷰 발언)
자칭 '수박' 창시자였던 정봉주 민주당 최고위원 후보가 최근 당내 지지자들로부터 '수박' 부메랑을 역으로 맞으며 고립무원 상태가 된 모습이다. 이재명 당대표 후보에 대한 '불만 토로' 논란 해명 과정에서 당내 일부 세력을 겨냥한 '이재명팔이' 발언으로 주류층의 역린까지 건드리면서다. 정치권에선 정 후보가 실제로 '이재명 2기' 지도부에 입성할 경우 새로운 '당내 갈등' 기폭제가 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돌풍'에서 '역풍'으로 바뀐 정봉주…'이재명팔이' 발언에 곤욕
정봉주 후보를 둘러싼 분위기는 최고위원 경선 초반 1위 '돌풍'에서 막판 '역풍'으로 기류가 바뀐 모습이다. 당초 정 후보는 강력한 팬덤을 바탕으로 지난 7월20~21일 진행된 제주·인천·강원·경북·대구 지역 권리당원 온라인 투표에서 최고위원 후보 8명 중 유일하게 누적 득표율 20%를 넘겼다. 이에 이재명 후보는 김민석 최고위원 후보 등을 간접 지원하며 의중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후 김 후보는 나머지 지역 경선에서 정 후보를 누르고 단숨에 누적 득표율 1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이 과정에서 정 후보는 이 후보가 최고위원 경선에 개입했다며 일부 '불만'을 토로했다는 전언이 들리기도 했다. 정 후보와 가까운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은 8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최근 정봉주 후보와 통화를 했다. (그는) 지금 이재명 전 대표의 최고위원 개입에 대해 상당히 열 받아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최고위원회는 만장일치제다. 두고 봐, 내가 들어가면 어떻게 하는지(라고 말했다)"라고 덧붙였다.
해당 내용이 논란이 되자 정 후보는 곧바로 12일 국회 기자회견을 잡았다. 하지만 정 후보는 이 자리에서 해명보다 '이재명팔이' 세력 척결에 방점을 찍으며 더욱 격앙된 태도를 보였다. 그는 "당내 최대의 걸림돌이 우리 내부에 있다. 이재명 후보를 팔아 권력 실세 놀이하는 무리들"이라며 "당의 단합을 위해 이들을 뿌리 뽑겠다"고 밝혔다. 그는 해당 무리에 대해 '민주당의 암 덩어리'라고도 수위 높게 표현했다.
이에 민주당 내부에선 '반(反)정봉주' 기류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일단 최고위원 후보들부터 "이재명 대표 공격에만 몰두하는 자야 말로 '이재명 대표를 파는 자' 아닌가"(김병주) "(이재명 후보를) 더 팔겠다. 저는 이재명의 억강부약 대동세상, 이재명의 기본사회, 이재명의 먹사니즘을 판 것"(강선우) "당원들이 상처받았다"(이언주) "단 한 번도 총구를 내부로 돌리지 않았다"(전현희)라며 날을 세우고 있다.
정 후보가 지칭한 '이재명팔이' 세력으로 지목된 친명(親이재명)계 대표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도 14일 입장문을 내고 "정 후보가 말한 '명팔이'가 혁신회의가 맞는지 공개적으로 밝히라"며 "실체도 알 수 없는 '명팔이' 발언으로 혁신회의는 호가호위를 한다고 지목당했고, 주체적인 선택을 했던 당원들도 보수 언론에 의해 모욕을 당했다. 당원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딸(개혁의 딸)'로 불리는 당내 강성 지지층도 정 후보에게 온갖 야유를 보내고 있다. 이들은 12일 국회 기자회견 현장에 등장한데 이어 이날엔 독자적으로 '정봉주 후보 사퇴 촉구' 집회까지 열었다. 이들은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서 '분탕질하는 정봉주 아웃', '봉다리는 할복하라', '정봉주는 폭탄이다' 등의 손팻말을 들고 정 후보의 사과와 후보직 사퇴를 요구했다. 집회에선 정 후보를 향해 "알고 보니 썩은 수박" "해당행위자"라는 발언까지 나왔다.
'정봉주 입성'이 이재명 2기 지도부에 미칠 영향은?
정치권에선 정 후보의 지도부 입성이 유력한 상황에서 거침없는 정 후보의 입이 '리스크'가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앞서 정 후보는 지난 21대 총선 정국이었던 2020년 4월12일 민주당의 비례정당이었던 열린민주당 최고위원 신분으로 민주당 지도부를 겨냥해 "나를 개쓰레기 취급했다"며 "이씨, 윤씨, 양씨, 너네 나 누군지 잘 몰라?"라고 말했다. 또 본인에 대한 비난 댓글에 "개××"라고 욕설을 했다가 하루 만에 '긴급 방송'을 통해 사죄한 바 있다.
22대 총선에서 서울 강북을 공천이 취소된 이유도 '막말 발언' 때문이었다. 그는 과거 팟캐스트에서 한 '목발 경품' 발언으로 장병을 비하했다는 의혹이 뒤늦게 구설에 올랐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정 후보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발언이 거침없어 언제나 폭탄을 안고 있다"며 "이재명 후보와도 지난 2007년 대선 과정에서 '차떼기 논란'으로 충돌하는 등 껄끄러운 관계다. 이 후보에게 언제 비수를 꽂을지 모른다"고 전했다.
반면 일각에선 오히려 정 후보의 '마이웨이' 전략이 민주당의 다양성 이미지를 보여주는 차원에서 '플러스'라는 시각도 있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는 이날 YTN 라디오 《뉴스파이팅, 배승희입니다》에 출연해 "(정 후보는) 경선이 끝나면 자기 목소리를 낼 것"이라며 "민주당을 위해서라도 당대표를 위해서라도 정 후보 같은 사람이 최고위원으로 들어 있는 게 좋다"고 평가했다.
친명계 좌장인 정성호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정 후보가) 이 후보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들, '본인이 소위 레드팀 역할을 할 수 있다'며 당의 민주성과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역할을 하겠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의도를 갖고 발언하는 과정에서 '이재명팔이'라고 하는 부적절한 발언이 나온 것 같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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