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과 시간 표준 [똑똑! 한국사회]
이승미 |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반도체물리학 박사)
무더운 여름을 또 다른 열기로 뜨겁게 달궜던 파리 여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고대 그리스 문화유산을 계승하고자 1896년 그리스에서 개최된 근대 올림픽은 4년마다 찾아오는 인류의 스포츠 축제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올해 파리는 1900년과 1924년에 이어 올림픽을 세번이나 개최한 도시가 되었으며, 정확히 100년 만에 다시 올림픽을 개최하는 영광을 안았다.
올림픽은 스포츠에 인생을 바친 각국의 대표 선수가 모여 치르는 경기인 만큼 메달을 눈앞에 두고 맞겨루는 선수들 사이의 실력 차이는 크지 않다. 눈곱만한, 아니, 눈곱보다도 훨씬 작은 차이로 메달은 결정된다. 전 세계인이 정밀하고 정확한 측정에 관해 가장 관심이 커지는 시점이 바로 올림픽이리라. 특히 달리기나 수영 같은 정통 육상 종목에서는 정밀 측정의 중요성이 더욱 도드라진다. 일상생활에서는 수십초 정도야 빠르거나 늦는다 해서 크게 문제 되지는 않지만, 올림픽 경기라면 ‘눈 깜짝할 사이’보다 훨씬 짧은 시간인 0.001초로도 승패가 갈리곤 한다. 선수들이나 관중 모두가 측정에, 특히 시간 측정에 매우 엄격해진다. 어느 나라의 어느 도시이든, 몇회째의 올림픽이든, 이 점은 변함없다.
올림픽에서 시간은 어떻게 쟀을까?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5분의 1초까지 잴 수 있는 스위스 업체 론진이 올림픽 공식 시간기록자(타임키퍼)였다. 5분의 1초, 즉 0.2초는 당대 측정 기술의 한계였다. 타임키퍼 경쟁은 치열했다. 시간 측정의 기술 진보가 크게 이뤄졌을 때는 1932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서이다. 0.01초까지 측정할 수 있는 스위스 업체 오메가가 타임키퍼로 선정되어 무려 17개의 세계 신기록 측정에 성공한다. 그 뒤에도 수영 선수가 직접 도착점 벽을 누르면 시간기록을 자동으로 나타내는 터치패드, 결승선 통과 사진을 찍고 1등 선수가 결승점 통과 때 전자 방식으로 시계를 멈추는 방법 등을 개발하여 올림픽에 직접 도입해오곤 했다. 측정 기술의 발전은 논란을 잠재우고 기록의 신빙성을 더했다. 비록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일본 업체 세이코가,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는 독일 업체 융한스가 타임키퍼를 맡은 적이 있기는 하나, 올해에도 공식 타임키퍼는 오메가였다. 필요 기술을 적시에 공급함으로써 올림픽의 역사를 함께 써 내려간 셈이다.
타임키퍼는 올림픽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우리의 일상과 첨단과학에 타임키퍼는 늘 존재해왔다. 대한민국 표준시를 제공하는 타임키퍼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다. 각국의 표준시는 세계협정시를 기준으로 각국의 경도상 위치에 따라 시간을 더하거나 빼서 표시한다. 전 세계가 공통의 시간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동기화된 과학적 시간 표준을 세계협정시(coordinated universal time: UTC)라 부르며, 세상의 모든 나라는 세계협정시를 이용하여 시각을 맞추고 통신이나 전자상거래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협정시보다 9시간 빠른 UTC+9로 표기한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한국의 타임키퍼만이 아니라 세계의 타임키퍼로도 활동하고 있다. 자체 기술로 제작한 이터븀 광시계 KRISS-Yb1로 2021년부터 대한민국은 프랑스, 일본, 미국,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광시계를 활용하여 세계협정시 생성에 이바지하는 나라로 등극했다. 앞으로도 시간의 단위는 재정의될 수 있다. 서로 다른 표준기관 세곳에서 제작한 광시계가 모두 100경분의 1초인 10의 -18승 수준의 불확도를 가지면서 상호비교 때 차이가 5×(10의 -18승) 미만에 도달할 때, 시간 단위 초는 현재의 원자시계로부터 광시계를 사용한 정의로 재정의될 예정이다. 100경분의 1초의 불확도는 우주의 나이만큼에서 1초도 틀리지 않는 정도이다. 과학자들은 2030년 시간 표준 재정의를 목표로 광시계 개발과 개선에 힘쓰고 있다. 더 정확한 시간 표준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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